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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건설한 숨은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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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가 2019년 미국 노예제 400주년 특집 '1619 프로젝트'를 펼치며, 건국 시점 논란에 불을 지폈다. 1619년은 아프리카 흑인 20여 명이 미국 동부 버지니아 주 포인트컴포트 해안에 처음 실려온 해다. 1619 프로젝트는 미국 건국에 노예들이 기여한 바, 즉 민주주의와 노예노동에 의한 현대 자본주의 발전에 주목해 그들의 등장을 건국의 기점으로 삼아야 마땅하다는 전복적 제안이었다.
트럼프를 겨냥한 의도적 도발이기도 했다. 이듬해 재선 캠페인과 조지 플로이드 사태에 이은 'Black Lives Matter' 시위 열기에 다수의 출판업체가 교양서적을 내고 학교들도 교재를 수정했다. 연방 정부는 공립학교 예산 지원을 끊겠다는 엄포로 진화에 나섰다. 미국사 재구성 제안은 하지만 조 바이든 신임 대통령의 '2026년 건국 250주년 선언'으로 공식적으로 또 한번 부정됐지만, 흑인의 위상과 자긍심을 제고하는 데 기여했다.
주류 미국사가 건국의 기점을 삼는 것은 흑인 노예의 1619년이나 메이 플라워호의 청교도가 상륙한 1620년이 아니라,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 13개 주가 필라델피아 인디펜던스홀에 모여 독립선언문을 채택한 1776년 7월 4일이다. 국제사회도 1783년 '파리조약'으로 미국 독립을 인정했다.
수도를 지금의 워싱턴D.C.로 정한 것은 1791년 9월 9일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1789~97 재임)이다. 연방 수도를 차지하려고 신경전을 벌이던 각 주는 연방의회의 1790년 '레지던스 법(Residence Act)', 즉 항구적이고 독립적인 연방정부 및 대통령의 거처를 마련한다는 법이 제정되면서 잠잠해졌고, 조지 워싱턴이 선택한 땅이 포토맥강 동쪽 정방형 100평방마일(259㎢)의 지금 수도다. 도시 설계자는 프랑스 출신 이민자 피에르 샤를 랑팡이었지만 1792년 해임됐고, 도시계획을 완성한 이는 측량사 앤드루 엘리컷(1733~1809)과 시계의 발명자로 더 유명한 해방 노예 출신 과학자 겸 수학자 베냐민 배네커(1731~1806)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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