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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선택을 탓할 때인가

입력
2021.09.03 18:00
22면

지지율 하락하자 역선택 때리는 윤석열?
국힘 경선 룰은 영입한 외부인사에 유리?
?비전 없는 아웃사이더 인상부터 지워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일 서울 인사동 복합문화공간 KOTE에서 열린 공정개혁포럼 창립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일 서울 인사동 복합문화공간 KOTE에서 열린 공정개혁포럼 창립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 경선 판도에 변화가 생긴 것일까. ‘앵그리 버드’ 홍준표 의원이 선두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맹추격하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잇따르고 있다. 범야권 후보 선호도에서 국민의힘 지지층만 놓고 보면 윤 전 총장이 홍 의원을 두 배 이상 차로 따돌리고 있지만, 진보ㆍ중도층까지 포함하면 홍 의원이 오차범위에서 추격하는 양상이다. 윤석열 캠프는 “진보 진영 응답자들이 역선택을 한 결과”라고 짐짓 외면하면서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달 30일 ‘경선버스’가 출발하자마자 경선 룰에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자고 주장하는 걸 보면 캠프에서도 여론 추이는 심상치 않은 변수다.

경선 룰 샅바싸움은 윤석열ㆍ최재형 대 홍준표ㆍ유승민의 대결구도다. 영입인사 둘은 고의적인 여론조사 왜곡으로 ‘약체 후보’가 선출될 수 있다며 역선택 방지조항을 고집하지만, 정당 뿌리가 깊은 두 주자는 중도확장성이나 본선 경쟁력을 이유로 역선택 조항을 거부하고 있다. 대중적 지지도를 바탕으로 경선버스에 탄 영입인사들이 여론 대신 당심이 투영되는 지지층에 기대고, 반대로 보수정당 토박이 주자들이 당심에 가까운 지지층보다 왜곡 가능한 여론조사를 선호하는 국민의힘 현주소가 아이러니할 뿐이다.

들쭉날쭉인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애초 대통령 후보 선출에 여론조사를 도입한 자체가 문제라 할 수 있다. 역선택 논란을 포함한 조사의 부정확성만 보더라도 단순 선호도에 기반한 여론조사를 공직후보 선출 기준으로 활용하는 것은 사실 위험하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이 선거인투표와 여론조사를 반반씩 반영해 대선 후보자를 선출하는 방식을 선택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외부인사의 영입을 유도하기 위해 1차, 2차 컷오프 경선에는 여론조사 비율을 100%, 70%로 더 높였다.

이런 마당에 윤 전 총장이 역선택을 문제 삼아 룰 변경을 요구한다면 ‘굴러들어온 돌이 플레이어 역할을 한다’는 비난만 자초할 것이다. 국민의힘이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어 경선을 치른 적이 없다는 사실도 윤석열 캠프가 이의를 제기하기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더라도 ‘국민의힘 지지자’라고 거짓말하는 응답자까지 걸러낼 방법은 없다.

윤석열 캠프가 현명하다면 역선택을 탓할 게 아니라 여론조사 추이와 디테일에 주목하는 게 더 실리적일 것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최근 조사의 경우, 보수층에서 윤 전 총장은 35.4%, 홍 의원은 23.5%의 지지를 받았고 중도에서는 격차가 더 줄었다. 홍 의원은 20~40대에서 도리어 앞서고 부산ㆍ경남(PK)에서는 오차범위까지 따라붙은 것으로 나타났다. 윤 전 총장이 2040 젊은 세대와 PK를 포함한 영남지역, 그리고 중도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는 게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추이로 잡히고 있다.

윤 전 총장의 지지율 위기는 사실 남 탓이 아니다. ‘반문재인 정서’에 기댄 지지율은 출마선언 전후 반짝 상승하다가 내리막길을 걸었다. 중도 확장 요구에도 윤 전 총장은 집토끼를 잡는 데 급급했으며, 뚜렷한 비전은 제시하지 못한 채 경선버스 탑승을 두고 당 지도부와 괜한 신경전만 벌였다. 중도는 물론 보수층에서도 윤 전 총장의 자질과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한 게 그 즈음이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확인했듯이 여론과 민심은 순식간에 바뀐다. 부인이 연루된 검찰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여당인사 고발 사주 의혹은 또 한번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 후보자 토론회도 변수다. 토론회에서 정치 경험이 없는 아웃사이더라는 인상을 불식시키지 않으면 상당히 곤란해 질 수 있다.

김정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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