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화장실에서 웃고 있을까

입력
2021.09.01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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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원리주의vs中 핵심 이익 충돌
미국의 이이제이…전략적 철군? ‘무게’
중국, 서역 불안하면 한반도에 힘 못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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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시한 하루 전인 8월 30일 밤 미 육군 82공수사단 사령관 크리스 도나휴 소장이 카불 공항에서 철수작전을 지휘한 뒤 마지막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시한 하루 전인 8월 30일 밤 미 육군 82공수사단 사령관 크리스 도나휴 소장이 카불 공항에서 철수작전을 지휘한 뒤 마지막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아프간 전쟁이 총성을 멈췄다. 미국과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이 맞붙은 지 20년 만이다. 2차 대전 이후 최장이자, 미 역사상 가장 오래 끈 전쟁이다. 항복문서 조인 없이 미군이 철군함으로써 종전되는 모양새다. 아프간은 이로써 19세기 영국과 20세기 소련, 21세기 미국을 상대로 불패 신화와 ‘제국의 무덤’이라는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탈레반이 오롯이 전리품을 독차지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동상이몽 테러집단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 세력이 ‘지분’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비관론자들은 아프간이 테러단체의 온상이 될 것이라며 중국이 가장 먼저 ‘지옥 문’을 경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미국은 9·11테러 주범 오사마 빈 라덴과 이를 지원하는 탈레반을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2001년 아프간을 침공했다. 빈 라덴 제거와 탈레반 정권 붕괴 등 소기의 전과를 거뒀지만 지난해 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더 이상 남의 나라에서 피를 흘릴 수 없다”며 탈레반과 올해 5월 1일까지 최종 철군키로 협정을 맺었다. 따라서 철군 완료시점만 4개월 늦춘 후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온갖 비난을 뒤집어쓰는 건 억울한 측면이 있다. 다만 바이든은 미국이 손을 떼더라도 아프간 친미 정권이 최소 1년 정도 유지될 것이라는 정보를 과신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왕이(오른쪽)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7월 28일 톈진에서 자국을 방문한 아프가니스탄 무장 조직 탈레반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면담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왕이 부장은 이 자리에서 "미군 철수는 미국의 아프간 정책 실패를 상징하고, 아프간 국민들이 자국을 안정시키고 발전시킬 중요한 기회"라고 말했다. 톈진=AFP 신화 연합뉴스

왕이(오른쪽)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7월 28일 톈진에서 자국을 방문한 아프가니스탄 무장 조직 탈레반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면담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왕이 부장은 이 자리에서 "미군 철수는 미국의 아프간 정책 실패를 상징하고, 아프간 국민들이 자국을 안정시키고 발전시킬 중요한 기회"라고 말했다. 톈진=AFP 신화 연합뉴스

미군 철수 불똥은 중국으로 튀었다. 중국은 종전이 임박하자 탈레반과 관계 설정에 노심초사했다. 왕이 외교부장과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는 7월 말 톈진에서 상견례를 하고 모종의 가이드라인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와칸회랑 지역을 사이에 놓고 국경을 접하고 있다. 중국은 이 지역을 통해 신장위구르자치구 분리독립운동 불길이 재점화할까 우려하고 있다.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세력(ETIM)으로 불리는 신장위구르 분리독립세력은 종파적으로 탈레반과 같은 이슬람 수니파에 속하고, 인종적으로도 이들과 매우 가깝다. 그러나 중국 영토의 17%를 차지하는 신장위구르는 티베트·남중국해·대만과 함께 중국의 4대 핵심이익으로 꼽힌다. 타협 여지조차 없다는 베이징의 메시지다. 이슬람 원리주의와 중국 핵심 이익의 충돌, 바로 이 지점이 미국이 철수를 결정한 진짜 노림수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은 올해 초 미얀마 쿠데타 세력에 대한 방임조치와 아프간 철군으로 글로벌 리더십에 깊은 상처와 의구심을 남겼다. 대신 중국 옥죄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미·중 충돌지수가 급상승하는 와중에 중국은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탈레반과 맞닥뜨린 형국이다. 신장위구르를 지키려는 중국과 흔들려는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의 신경전이 향후 주요 관전포인트다.

마지막 종군기자인 한국일보 안병찬이 본 사이공 최후의 새벽 그후 40년. 한국일보 1975년 5월 6일 자 1면.

마지막 종군기자인 한국일보 안병찬이 본 사이공 최후의 새벽 그후 40년. 한국일보 1975년 5월 6일 자 1면.

아프간전의 승자는 ‘일단’ 탈레반이다. 미국을 상대했다는 점에서 1975년 종전된 베트남전을 연상케 한다. 호사가들은 사이공 미 대사관 헬기 탈출 장면과 카불 공항 피신행렬을 오버랩하면서 입방아를 찧고 있다. 하지만 아프간 종전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판단으로 해석할 대목이 적지 않다.

한때 ‘통일 한국’이 현실화하면 중국군이 평양으로 진입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그럴듯하게 나돌았다. 베이징 당국이 미군이 주둔하는 통일 한국과 국경선을 맞대는 일을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그러나 탈레반과 알카에다, IS 동태까지 살펴야 하는 중국 처지를 미뤄볼 때 이런 가설도 용도 폐기 시점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서역(西域)이 불안할 때 중국은 한반도에 힘을 쓰지 못했다. 대표적인 예가 한반도 최초의 통일 국가 대미를 찍은 나당(羅唐)전쟁이다.

최형철 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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