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배롱나무를 심자

입력
2021.08.27 18:00
22면

협잡과 권모술수, 탈ㆍ불법의 온상?
새벽 도둑 담 넘듯 법안 통과시키는?
희망은 없고 욕망만 있는 그곳에

박주민(왼쪽 뒷모습 두 번째) 법사위 위원장 직무대리가 25일 서울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박주민(왼쪽 뒷모습 두 번째) 법사위 위원장 직무대리가 25일 서울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매미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게 가을이 가까운 모양이다. 더위도 한풀 꺾인 참에 코로나19에 지친 마음이나 달래려 강원도 고성과 속초를 돌아다니며 몇몇 절을 둘러봤다. 이 지역 건봉사와 낙산사 모두 꽤 규모나 명성이 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가끔 절에 가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절마다 배롱나무가 곳곳에서 분홍 혹은 붉은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배롱나무는 백일홍나무, 목(木)백일홍 등으로 불린다. 7월부터 늦가을에 걸쳐 꽃이 핀다. 물론 백일홍과는 다르다.

왜 절에는 배롱나무가 많을까. 나름 사연이 있다. 배롱나무의 몸통을 자세히 보니 껍질이 벗겨져 미끈하게 보인다. 여기에 해답이 있다. 배롱나무가 껍질을 몽땅 벗어버리는 것처럼 스님들도 세속의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나무를 절 주변에 심는다고 한다.

경북 안동지역의 서원에 배롱나무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한다. 선비들이 거주하는 서원에 청렴을 상징하는 배롱나무를 많이 심었다는 것이다. 껍질이 홀딱 벗겨진 나무처럼 욕심과 흑심, 숨김이 없이 투명하고 청렴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우리 정치판은 지금 온갖 협잡과 권모술수가 판을 치고 있다. 상대방을 짓밟아야 살아남는 치열한 적자생존의 격전장이다. 심지어 한솥밥 먹던 같은 편에게도 총을 겨눈다. 비판적인 언론에는 재갈을 물리려 한다.

대통령 후보군 면면을 봐도 배롱나무처럼 깨끗하고 투명한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여야 선거캠프에 뛰어든 국회의원들도 상당수가 비릿한 냄새를 풍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여야 국회의원들의 부동산 거래 전수조사를 봐도 각종 투기 의혹이 심각한 수준이다.

부동산 명의신탁, 편법증여 등 세금탈루, 토지보상법 건축법 공공주택특별법 농지법 위반 등 동원할 수 있는 탈법은 모조리 동원해 재산을 불리는 방식이다. 그런데도 국회의원 신분으로 책임지거나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사권이 없는 국가기관이 여야의 눈치를 살피며 발표한 것이 이 정도다. 이들이 다시 대통령 선거에 힘을 보태고 중책을 차지하면 기득권을 지키는 데 힘을 쏟을 수밖에 없을 테다.

더욱이 새벽 도둑 담 넘듯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시킨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매달리는 것도 욕심과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한 탓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듯, 어느 정치세력이든 백일홍(百日紅)도 오감한 줄 알아야 한다.

구린 곳이 있으니 이를 감추고 내 편을 지키려 법과 제도까지 바꾸려 한다. 중앙정보부 등 권력기관을 동원했던 박정희 정권도 부러워할 일이다. 언론보도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시발점이라는 것이 이번 정권이 두려워하는 지점인 것 같다.

선택적으로 침묵하는 청와대, 언론 없는 정부를 모색하는 정권의 말로는 뻔하다. 대통령 퇴임 이후 안전장치 같은 것은 헛된 꿈이다.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언론자유의 가치는 민주주의의 장식이 아니다. 언론개혁의 미명 아래 ‘분란을 일으키고 편가르기를 통해 정파적 이득을 챙기려는’ 고전적 수법은 더 이상 안 통한다. 입바른 몇몇 여권 국회의원이 있지만 역부족이다. 결국 법원의 판단을 구할 것이다.

희망은 없고 욕망만 있는 곳. 타협은 없고 투쟁만 있는 곳. 국민은 없고 정파적 이익만 탐닉하는 그곳이 여의도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길을 잃었다.

여의도에 배롱나무를 심자. 정치를 하겠다면 배롱나무를 보면서 하루에 단 몇 초라도 스님과 선비 정신을 되새겨 보라는 것이다.

조재우 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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