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문구 몇 개 수정하고 심사 끝...與 '독소 조항' 손도 안 댔다

입력
2021.08.26 08:3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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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중과실서 '명백한' 표현 삭제
언론에 대한 처벌 가능성 더 높아져

더불어민주당은 25일 새벽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허위·조작 보도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지난달 27일), 안건조정위원회(8월 18일), 전체회의(8월 19일)에 이어 법사위까지 법안 심의의 모든 단계에서 야당을 배제한 채 입법 독주를 한 셈이다.

그 과정에서 심사는 부실했다. 민주당은 상임위 심의에서부터 야당과 언론계·법조계의 위헌 우려에 대해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당이 만든 수정안을 발표하고 야당 의견을 반영했다며 강변해 왔다. 이날 법사위에서는 논란이 된 일부 조항을 삭제했지만, 허위·조작보도 개념이나 고위·중과실을 판단하는 기준은 모호한 채였고 위헌 소지가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체계 및 자구 수정과 위헌성 심사를 담당하는 법사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셈이다.

박범계도 우려한 ‘독소’ 조항은 건들지도 않았다

박주민 법사위 위원장 직무대리가 25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박주민 법사위 위원장 직무대리가 25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법사위 심사에서는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이 4개에서 3개로 줄어들었다. 법사위에 상정된 수정안에는 ①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 ②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 ③정정보도된 기사를 복제·인용한 보도 ④제목·시각자료로 기사 내용을 왜곡한 경우에 대해 고의·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 중 ②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를 삭제했다. 결과만으로 고의·중과실을 추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①항에서도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라는 표현이 빠졌다.

그럼에도 대표적인 '독소 조항'으로 꼽히는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은 남아 있는 셈이다. 오히려 한 달 사이 6개였던 추정 조항이 4개로, 또다시 3개로 줄어든 것은 그만큼 법안 심의를 졸속으로 했다는 방증이다.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의 전제 조건으로 '언론 등의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을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문구에서도 '명백한'이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문체위가 지난 17일 고의·중과실의 입증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단서로 붙인 것인데, 이를 다시 없앤 것이다. 이에 고의·중과실로 추정할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해 결과적으로 언론에 대한 처벌 가능성을 높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극단적 사례로 ‘면책’ 조항 축소 시도까지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수정 과정. 한국일보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수정 과정. 한국일보

법사위에서는 "언론중재법 내용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개정안은 공익 침해 또는 김영란법(청탁금지법) 위반 행위 등에 관한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지 않는 면책 조항을 두고 있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성폭행 피해자 가족의 집주소를 노출시키고 피해 부모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기사를 썼으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면책 범위 축소를 주장했다. 일부 의원들이 "극단적 사례 아니냐"고 반박하면서 해당 조항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이러한 면책 조항 등을 근거로 "언론인이 걱정하는 남용 가능성은 없다"고 자신했다. 가령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권이 있는 고위 공직자의 가족 등이 특정 언론 보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도 '공익 목적'의 보도라면 면책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 법조인은 "보도의 공익성 여부는 법정에서 가려야 하는 문제"라며 "소송 제기에 따른 언론의 위축 효과를 예방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박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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