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따라가는 언론중재법

입력
2021.08.25 18:00
26면

失政 비판 덮으려는 막무가내 정책?
내부 고발 위축되면 失政피해? 확대?
초라한 트럼프에서 언론 자유 되새겨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재임 기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언론 조롱 행태를 비판한 워싱턴포스트(WP) 온라인 기사. WP 온라인 캡처

재임 기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언론 조롱 행태를 비판한 워싱턴포스트(WP) 온라인 기사. WP 온라인 캡처

“북한. 지구에서 신문이나 TV 뉴스를 보고 머리가 맑아지는 유일한 곳이다. 로동신문, 조선중앙TV만 보면 영락없는 지상낙원이었다.” 최근 고위직 공무원으로 승진한 지인이 거의 20년 전 들려준 북한 체류 경험담이다. 그는 북핵 합의 이행을 위한 경수로 건설 때문에 북한에 머물렀는데, 권력형 비리나 온갖 경제문제로 도배된 신문을 본 뒤 한국에 돌아온 걸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은 언론의 나라다. 시골 군소 매체도 자유롭게 대통령을 공격할 수 있다. 주류 언론의 영향력은 더욱 크다. 그런 주류 언론에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각을 세운 인물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내가 욕먹는 건 내 잘못이 아니라 반대 세력과 주류언론의 모함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런 행태는 다른 쪽에서도 이어졌다.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 법치주의를 말하다가,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사법개혁을 외쳤다. 변명조차 하기 힘들 때는 ‘오바마 정부’도 그랬다고 우겼다. 트럼프에게 반대하는 무리에게 ‘친중파’ 낙인을 찍기도 했다. 그가 내세운 국정과제 ‘아메리카 퍼스트’는 무슨 짓을 해도 면죄되는 절대선으로 군림했다.

김정은ㆍ트럼프의 중재자를 자처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여당이 트럼프를 연상케 하는 언론정책을 몰아붙이고 있다. 권력을 비판하기 힘든 여건을 조성하고, 언론의 비판을 당파적 트집 잡기로 전락시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법안이 시행되면 어떻게 될까. 기자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1997년 산업은행의 미국사무소 설치 무산을 다뤄 외환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던 특종기사는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 여름 환경부 장관 집무실에서 터진 소동을 다룬 칼럼도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언론이 취재원을 밝혀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면, 내부자들의 제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짓말하는 당국자도 늘어날 게 뻔하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불공정 거래를 조사한다더니, 관련 기사가 나가자 부인한 뒤 사석에서는 ‘미안하다’고 사과했던 2003년 공정위 A 국장은 그나마 양심적 사례다. 국가 이익에 앞서 사리를 챙기고도 언론에 증거를 대라고 오리발 내밀 인물이 급증하게 될 것이다. 새 법 아래 숨으면 정체가 들통날 가능성이 확연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여당은 언론이 사회 불신을 조장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작금의 불신은 이 정권 내내 이어진 주먹구구식 정책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의 ‘8대 거짓말’이란 게 나돌 정도다. 부동산은 자신 있다더니 역대급 폭등을 했고, 증세 없는 복지라더니 세금폭탄을 맞았다. 4대강 22조면 일자리 100만 개라더니 수십조 원 쓰고도 좋은 일자리는 부족하고, 원전 없애도 전기료 인상 없다더니 한전은 적자에 허덕인다. 일자리 게시판 챙기겠다더니 하루 행사로 끝났고, (대통령) 취임 후 광화문 출퇴근 약속은 지켜지지도 않았다. 중국에 미세먼지 따지겠다더니 아무 소리 없고, 백신 확보 자신했지만 접종률은 주요국 중 최하위다.

이 정권의 정책 실패는 부동산 벼락거지, 자영업 위기, 세금폭탄으로 귀결됐다. 그러나 언론 감시가 사라진다면 실정의 피해 반경은 훨씬 커진다. 언론의 비판 수위가 낮았을 때마다 외환위기와 카드위기가 닥친 건 우연이 아니다. 지금도 예산당국이 돈을 더 풀라는 청와대와 여당의 성화에 그나마 맞설 수 있는 건 ‘빚으로 위기를 막는 미봉책은 안 된다’는 언론 지적 때문이다.

권력자와 고위 당국자들에게 언론은 귀찮은 존재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경우라면 특히 그렇다. 그럴 때마다 언론의 견제를 조롱했던 트럼프의 초라한 치적을 떠올려보라. 사회의 목탁, 무관의 제왕이라는 영예는 먼 얘기가 됐고 기레기라는 조롱이 횡행하지만, 그래도 언론 자유가 필요한 이유다.

조철환 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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