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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러의 극동 군사 협력과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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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5월 15일, 소비에트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중국 베이징에서 덩샤오핑 중앙군사위 주석과 만났다. 1959년 흐루쇼프와 마오쩌둥의 회동 이후 만 30년, 1969년 중소국경분쟁 이후 20년 만의 양국 정상회담이었다. 냉전이 끝나자마자 시작된 사회주의 양대 정상의 악수는 미국에는 당연히 엄청난 위협이었다. 양국 정상이 만난 지 불과 나흘 뒤 중국 톈안먼 사태가 발발했고, 미국은 대중국 경제제재의 좋은 명분이 됐다. 자본주의 개혁정책 이후 경제 규모를 키워 온 중국은 당시에도 미국 패권의 잠재적, 실질적 위협이었고, 2000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미국 내 값싼 중국산 유입과 노동집약적 제조업 불황은 반중 감정을 냉전시대 소비에트의 핵위협 못지않게 악화했다.
그럴수록 중러관계는, 복잡한 이해관계의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개선됐다. 1990년대 말 해묵은 국경선 분쟁을 마무리 지었고, 2001년 경제 군사 과학 기술분야 협력을 골자로 한 중러 선린우호협력조약을 체결했다. 그 조약에 근거해 2005년 8월 19일 러시아 영해 내 극동지역과 중국 산둥반도 일원에서 양측 병력 1만여 명과 항공기 구축함 등이 참여한 사상 첫 합동군사훈련을 단행했다. 작전명은 '평화의 임무(Peace Mission)'였다.
합동훈련의 표면적 목적은 유사시 북한 사태에 대한 대응 등 지역 안정이었지만, 한국 및 미일 안보조약과 그에 따른 대규모 아태지역 군사훈련에 대한 대응이었다. 2005년 이후 중러 군사작전은 블라디보스토크와 칭다오 연안 등 동서 양국 영토를 오가며 규모와 협력 강도를 증강시켜왔고, 지난해 9월 러시아 카스피해 연안에서 치러진 '캅카스-2020' 땐 중국군이 러시아군 주력 탱크와 장갑차, 미사일 등의 장비로, 지난 8월 중국 닝샤의 회족자치구 합동전술훈련에서는 러시아군이 중국군 장비와 무기로 훈련에 임했다. 일부 외신은 양국 군사협력이 '준군사동맹'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불화를 염려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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