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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

입력
2021.08.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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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 미나마타 협약

수은은 미와 영생, 초월의 상징적 물질로 황금 못지않게 인간의 욕망이 주목한 물질이다. 위키피디아

수은은 미와 영생, 초월의 상징적 물질로 황금 못지않게 인간의 욕망이 주목한 물질이다. 위키피디아

욕망을 비유, 상징하는 물질로 손쉽게 갖다 쓰는 게 황금이지만, 거기에는 몇 가지 불순물도 있다. 신화 시대부터 황금은 부귀와 영화 못지않게 불행과 파멸의 씨앗으로도 흔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북유럽 에다 신화나 중세 게르만의 서사시 '니벨룽의 노래'에서도 황금은 화려한 광채 속에 어두운 멸망의 전조를 품고 있다. J.R.R. 톨킨이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의 소재를 명기하진 않았고, '운명의 산' 분화구 용암 바다가 아니면 녹지도 파괴되지도 않는 걸로 봐서는 순수 원소 황금(Au, 원자번호 79)일 리는 없지만, 영화 소품 제작자인 덴마크 디자이너 젠스 한센(Jens Hansen)이 상품화한 절대반지의 소재는 대부분 금이다. 소설과 영화에서 절대반지는 소유자 개인뿐 아니라 세계를 불행과 멸망으로 이끄는 암흑의 상징이다.

욕망의 순수 상징으로 황금보다 더 그럴싸한 물질로 수은(Hg, 원자번호 80)이 있다. 자연상태의 진사(辰砂), 즉 황화수은을 녹여 추출하는 수은은 상온에서 액체상태인 유일한 금속으로, 유백색의 찬란한 색채 덕에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 고왕조 시대부터 극히 최근까지 진귀한 미용 재료로 쓰였고, 중세 연금술사들은 4원소(흙 공기 물 불)의 한계를 초월해 새로운 차원에 이르게 하는 '퀸테센스(제5원소)'의 비밀을 수은에서 찾았다. 고대 중국의 진시황은 영생을 위해 수은을 몸에 바르거나 음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무속인들은 진사를 빻은 붉은 물감으로 부적을 그려 삿된 기운을 물리치고자 했다.

수은의 치명적 독성은 1956년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 주민들이 인근 화학공장 폐수로 인해 메틸수은에 집단 중독(미나마타병)되면서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했다. 국제사회는 2017년 5월 전지와 조명기구, 온도계 등 계측기, 농약, 화장품 등 수은 첨가 제품의 제작과 판매(무역)를 관리, 규제하는 미나마타 협약을 채택, 그해 8월 16일 발효시켰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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