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최재형의 구시대 비전

입력
2021.08.05 18:00
수정
2021.08.05 18:0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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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말실수, 자유방임주의 신념의 반영
최 "규제 풀면 성장·일자리" 앙상한 철학
무엇을 위한 정권 교체인가 답 내놔야

최재형 국민의힘 예비후보 가족모임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모습. 최재형 캠프가 제공한 사진이다.

최재형 국민의힘 예비후보 가족모임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모습. 최재형 캠프가 제공한 사진이다.

이러려고 그 소동을 벌였던 건가. 검찰과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임기를 박차고 나와 만들겠다는 나라의 목표가 이거란 말인가. 가시화하고 있는 국민의힘 윤석열·최재형 대선 예비후보의 비전은 너무 오른쪽이어서 문제가 아니다. 놀랍도록 구시대적이라는 게 문제다.

‘주 120시간 노동’부터 ‘건강한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윤 후보가 일으킨 논란은 결국 말실수가 아닌 철학의 문제였다. 정부 개입은 악이고 자유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하리라고 본 시장근본주의자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을 윤 후보는 자기 신념에 가깝다고 밝혔다. 그러니 그에겐 장시간 노동도, 기준 이하의 식품도 선택일 뿐이고 삶의 질의 최저선을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은 없었을 것이다.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에 영향을 주었으나 더 이상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프리드먼이 여전히 그의 신념인 것이다.

최 후보가 4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밝힌 비전 또한 보수의 교과서다웠다. “규제를 제거해 기업이 마음껏 투자하게” 해서 “기업이 돈을 벌면 자연히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했다. “과도하게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중대재해처벌법”이나 “청년 취업을 가로막는 노조 중심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결하겠다고 했다. 구체적 현안에 대해선 “아직 공부가 덜 됐다”고 했다. 앙상한 원칙과 현실에 대한 부족한 이해가 ‘최저임금 인상은 범죄’ 발언 논란을 낳았을 터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시장의 실패를 온몸으로 겪은 지금, 정부 개입 없는 자유방임이 해법이라고 보는 이들은 없다. 이 시대의 도전은 성장해도 일자리는 늘지 않고 이익은 소수에게만 집중된다는 데에 있다. 심화하는 불평등은 미국에서 트럼피즘이라는 정치 퇴행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인데, 우리나라에선 여성혐오를 이용한 정치 퇴행이 등장했다. 메달과 무관하게 승부를 즐긴 올림픽 선수들에게 박수를 치고, 10만 명 시민이 서명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국회에 요구하는 시대다. 미래를 조금만 내다보면 기후변화에 당장 대처해야 함을 알게 된다. 한국은 급변하는 사회이고 또한 변화의 속도가 제각각인 이들이 병존해 부딪히는 상황이다. 윤 후보와 최 후보는 자유시장과 강한 안보라는 신념 외에 한국 사회의 현안과 시대의 과제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묻고 싶다. 복잡한 현실과 대중의 감수성을 따라잡고는 있는지 알고 싶다.

최재형 캠프가 공개한 후보 가족들의 국민의례 사진은 그의 시대 지체를 상징하는 한 예다. 캠프는 이를 후보의 뼛속 깊은 애국심의 증거로 제시했겠지만 사진을 본 많은 이들이 국가주의·전체주의 유산인 국민의례를 가족모임에서 수행한다는 것에 당혹감을 느꼈다. 2021년을 살고 있는 가족 구성원들이 국민의례에 자발적으로 동의했을지 의문이고 이들이 얼굴 공개에 동의했을지는 더더욱 의문이다. 나는 그의 가족이 사랑으로 충만할 것을 의심치 않지만 가부장의 권위로서 가족의 프라이버시를 희생시켜도 된다는 생각은 시대착오라고 할 수밖에 없다. 윤 후보가 6월 출마 선언 후 촬영한,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들로 가득 찬 사진도 비슷하다. 일말의 다양성도 허용하지 않는 이 사진은 과거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정치 신인으로서 두 사람의 한계는 뻔했지만 ‘반(反)문재인’ ‘정권 교체’라는 기치를 내걸어 지금의 지지를 끌어모았다. 이제 이들은 무엇을 위한 정권 교체인가, 권력을 잡아 국가를 운영할 자신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보다 구체적으로 답해야 한다. 국민의힘 경선이 시작하면 평가는 본격화할 것이다. 국민의힘 지지자들도 같은 질문을 놓고 고민하기를 바란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정권 교체인가.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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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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