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우는 중증 건선 환자

입력
2021.07.21 04:30
수정
2021.07.21 17:2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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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건선 환자들이 중증 건선의 산정 특례 기준이 다른 비슷한 피부 질환보다 불합리하다며 강원 원주시 반곡동 국민건강보험공단 건물 앞에서 시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국건선협회 제공

중증 건선 환자들이 중증 건선의 산정 특례 기준이 다른 비슷한 피부 질환보다 불합리하다며 강원 원주시 반곡동 국민건강보험공단 건물 앞에서 시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국건선협회 제공

얼마 전 우연히 한 중증 건선 환자의 사연을 접하고 몹시 안타까웠다. 열 살 때부터 이 병을 앓고 있는 회사원 A(42)씨는 온몸이 붉은색 발진으로 뒤덮여 있고 피부에 딱지가 앉아 움직일 때마다 갈라지고 찢어져 상처가 아물 날이 없다.

오랫동안 건선을 앓으면서 관절염까지 생겨 손가락 모양도 흉물스럽게 틀어졌다. 사회생활은커녕 일상생활도 힘들어 우울증으로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효과가 그리 좋지 않은 면역억제제를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실제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건선 환자의 44%가 우울증을, 35%가 불안장애로 고통을 받고 있다.

다행히 건선 원인인 T면역세포를 조절하는 획기적인 신약인 ‘생물학적 제제’가 나와 A씨 같은 중증 건선 환자에게 삶의 희망이 되고 있다. 생물학적 제제로 3~6개월 치료하면 피부 염증이나 하얀 각질(인설) 같은 주증상이 80~85% 줄어드는 등 효과가 매우 높다. 다만 생물학적 제제는 한 해 치료비가 1,000만 원 정도로 환자 부담이 매우 크다.

이에 따라 보건당국은 환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증 건선에도 ‘본인 일부 부담금 산정 특례 제도(이하 산정 특례)’ 혜택을 부여했다. 산정 특례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4조에 따라 의료비가 많이 드는 암 등 중증 질환과 희소 질환, 중증 난치 질환에 대해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5~10%로 크게 줄여주는 제도다.

하지만 중증 건선 환자인 A씨가 산정 특례 혜택을 받는다는 것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150만 명으로 추정되는 건선 환자 가운데 중증 건선 환자는 2만2,000명인데, 2017년 6월부터 시행된 산정 특례 혜택을 받는 중증 건선 환자는 20%(4,500명)에 그친다. 이는 중증 건선이 산정 특례 혜택을 받기 위한 조건이 너무 까다롭기 때문이다.

중증 건선 환자가 효과가 좋지만 ‘비싼’ 생물학적 제제에 대해 산정 특례 혜택을 받으려면 기존의 ‘저렴한’ 광선 치료와 면역억제제 치료를 각각 3개월씩 받아 치료 효과가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광선 치료는 1주일에 2~3일씩 받아야 하는 데다 치료 기기가 동네 병ㆍ의원에 거의 없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병원까지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므로 A씨처럼 직장을 다니는 중증 건선 환자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김성기 한국건선협회 대표는 “산정 특례 등록에 유독 중증 건선에만 차별적인 6개월간의 가혹한 요건과 등록 기준 충족을 위해 생물학적 제제라는 좋은 약을 끊고 실패한 기존 치료를 다시 받게 하는 건 너무 비인간적”이라고 지적했다.

산정 특례 혜택을 받으려 할 때 이처럼 다른 질환과 달리 엄격한 기준과 약물을 끊어야 하는 질환은 중증 건선밖에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전문가 자문을 거쳐 결정된 사항이고 불공평하지 않다”며 중증 건선의 산정 특례 등록 기준을 바꿀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피부 질환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가늠하기 어렵다. 중증 건선 환자들은 아토피 피부염ㆍ류머티즘 관절염 같은 산정 특례를 받는 다른 비슷한 질환보다 나은 대우가 아니라 그저 ‘동등한 대우’를 바라고 있다. 한여름에도 전염병으로 오해받기 싫어 긴소매ㆍ긴바지만 입는 중증 건선 환자를 두 번 울게 하지 말자.

권대익 한국일보 의학전문기자

권대익 한국일보 의학전문기자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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