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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지역 테러의 뿌리

입력
2021.07.2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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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 킹 데이비드 호텔 테러

1946년 예루살렘 킹 데이비드호텔 폭탄테러 직후 모습. 위키피디아

1946년 예루살렘 킹 데이비드호텔 폭탄테러 직후 모습. 위키피디아

팔레스타인 지역 테러의 원조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나 근년의 하마스가 아니라 영국 위임통치 시절의 시오니스트 강경파 무장단체들이었다. 1931년 창설된 '이스라엘 민족군사기구' 즉 '이르군(Irgun)'이 대표적 집단이다. 유대인 국가 수립을 위한 무장 폭력을 긍정, 찬양하는 수정시오니즘의 신봉자였던 그들은 1948년 영국의 위임 통치가 끝날 때까지 다수의 테러를 주도하며 팔레스타인 지역을 공포의 땅으로 조성했다. 그들은 건국 후 1차 중동전쟁이 시작되면서 이스라엘 방위군(IDF)에 흡수됐고, 이르군의 정치조직은 우파 집권 정당인 리쿠드당의 뿌리 중 하나가 됐다.

1946년 7월 22일 정오 직후, 예루살렘의 지상 6층 최고급 호텔 '킹 데이비드 호텔' 지하에서 폭발물이 터져 빌딩 남서쪽 거의 전층이 무너졌다. 영국의 팔레스타인 총독부와 헌병사령부 등이 입주한 빌딩이었다. 그 테러로 총독부 관료 21명을 비롯한 영국인 28명과 아랍인 41명, 유대인 17명 등 91명이 숨졌고, 45명이 부상했다.

'이르군'의 소행이었다. 약 한 달 전 헌병사령부가 현지 유대인협회(Jewish Agency)를 급습해 지하 민병대 하가나(Haganah) 등 유대인 단체들의 반영(反英) 독립투쟁 자료를 대거 압수했다. 이른바 '아가타작전(Operation Agatha)이었다. 이르군이 저지른 테러의 표면적 목적은 이 작전에 대한 보복이었지만, 압수 문건을 폐기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물론 근원적으로는 이스라엘 독립국가 수립을 지원하기로 한 1917년 밸푸어 선언의 이행을 촉구한 거였다.

영국 총독 당국이 사전에 테러 음모를 파악하고도 시오니스트에 대한 여론 악화를 노려 사실상 테러를 방조했다는 설도 있지만, 그리 설득력은 없다. 다만 테러 직전 전화 경고 등을 받은 건 사실이고 총독 당국은 이르군의 음모를 경시했다. 당시 테러를 주도한 이르군 리더 메나힘 베긴(1913~1992)은 훗날 이스라엘 총리(1977~1983)가 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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