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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짜장·떡볶이 제품에 트레이가 필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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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15>즉석조리식품 트레이
기후위기와 쓰레기산에 신음하면서도 왜 우리 사회는 쓸모없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생산하도록 내버려 두는 걸까요.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은 그동안 주로 소비자들에게 전가해온 재활용 문제를 생산자 및 정부의 책임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편리성 때문에 널리 애용되는 즉석조리식품을 뜯다 보면 플라스틱 트레이를 쉽게 볼 수 있다. CJ제일제당의 ‘간짜장’에서 트레이를 발견하고는 업체에 트레이를 쓰는 이유를 문의했다. "제품 파손을 막기 위해 트레이가 필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비슷한 제품인 오뚜기의 '유니짜장'엔 트레이가 없다. 트레이가 없어도 파손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지난 2월 홈런볼·카스타드·조미김 등에 포함된 트레이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일부 업체들에서 변화가 있었다. 조미김 업체들이 트레이를 완전히 제거하고 있다.
그러나 시중에서는 전혀 파손될 가능성이 없는 제품에서도 여전히 플라스틱 트레이를 쓰고 있으며, 즉석조리식품이 대표적이다. 식품제조업체들에서는 “식품 안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많다. 하지만 같은 종류의 식품이라도 업체에 따라 트레이 사용 여부가 제각각일 정도로 업계 내부에서도 설득력을 잃고 있다.
처음 제품을 출시할 때 환경에 대한 경각심 없이 플라스틱 트레이를 사용하도록 공정을 설계했고, 공정 변경 비용을 부담하기 싫어서 엉뚱하게 '제품 안전성'을 거론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애초 트레이를 넣은 덴 "볼륨감이 좋다"는 이유도 있었다.
환경단체들은 “기업이 불필요한 플라스틱을 생산해 환경을 오염하면 그 비용은 결국 사회가 치르게 된다"며 "기업들은 잘못된 생산 방식을 되돌리려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냉면 즉석조리식품인 풀무원의 ‘동치미 냉면’과 CJ제일제당의 ‘동치미 물냉면’을 비교해봤다. 풀무원의 동치미 냉면은 플라스틱 트레이를 사용하지만, CJ제일제당의 동치미 물냉면은 트레이가 없다. 두 제품의 구성품은 냉장면과 동치미 육수로 동일하다. 풀무원 측은 “트레이는 포장할 때 내용물의 틀을 잡아주는 고정재 역할을 한다”며 “공정 설계상 트레이가 없으면 제품을 밀봉할 때 제품 모양이 흐트러져 불량품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짜장면. 오뚜기의 ‘유니짜장’과 CJ제일제당의 ‘간짜장’을 비교해봤다. 냉면 즉석조리식품에선 트레이를 사용하지 않는 CJ제일제당이 ‘간짜장’에 플라스틱 트레이를 사용한다. 하지만 오뚜기 유니짜장엔 트레이가 없다. CJ제일제당은 “신선식품 특성상 식품 안전과 품질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며 “제품 종류와 크기별로 품질 테스트를 진행해 트레이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제품은 트레이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기준이면 오뚜기 제품은 파손돼있어야 하지만, 마찬가지로 멀쩡하다.
그럼 오뚜기는 모든 제품이 플라스틱 트레이가 없을까. 떡볶이를 보자. 오뚜기의 ‘맛있는 라볶이’와 풀무원 ‘떡볶이 떡’을 골랐다. 오뚜기는 떡볶이 제품에는 플라스틱 트레이를 사용한다. 오뚜기는 “면류는 파손될 위험이 없다고 봐 트레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다만 떡볶이 제품에 한해 떡이 부서질 수 있다고 판단해 트레이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풀무원은 떡볶이 떡과 소스만 트레이 없이 따로 판매한다. 물론 파손된 제품은 없다.
업체별로 제품들을 보다 넓게 보면, 트레이 사용은 '식품 안전'이라는 명제보다는 업체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롯데마트의 PB제품(기획 개발상품)인 ‘요리하다’는 거의 모든 즉석조리식품에 트레이를 쓰는 반면, 홈플러스의 PB제품은 일부 제품을 제외하고 트레이를 쓰지 않는다. 풀무원도 거의 모든 즉석조리식품에 트레이를 쓰는데, 오뚜기는 떡볶이를 제외한 대부분 제품에 트레이를 쓰지 않는다.
식품 안전성을 이유로 들고 있는 업체들이 있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설비 변경 비용을 부담하기 싫어서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이 있다.
일반적으로 즉석조리식품의 포장 방식은 ‘필름 포장’이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평평한 비닐 포장(필름)을 돗자리처럼 깔아놓고, 그 위에 트레이와 제품을 순서대로 떨어뜨린다. 마지막에 돗자리처럼 펼쳐져 있는 필름의 네 모서리를 보자기처럼 접어 붙이면 포장이 끝난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내용물을 먼저 올린 후, 마지막에 필름으로 제품을 감싸는 방식도 있다.
이때 트레이가 없으면 면과 소스가 평평한 필름 바깥으로 흘러내릴 위험이 있고,
필름을 밀봉할 때 면·소스의 비닐이 필름의 접합부에 낄 수 있어 트레이가 필요하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이한영 한국포장기술사회장은 "필름 포장 설비로도 트레이 없이 자동화가 가능하도록 공정을 바꿀 수 있는 대안은 있다"며 "트레이를 사용하면 공정이 편하고 안정적이니 굳이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며 설비를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기계가 낡은 기종일 경우, 기계를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다.
CJ제일제당은 올해 상반기 트레이 없이도 포장이 가능한 설비를 들여왔고, 설비를 유지한 채 공정만 바꾸는 방식으로 일부 즉석조리식품의 트레이를 없애기도 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공정상 어려움이 있는 것은 맞지만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며 "기업이 플라스틱 감축에 많은 자원을 투입할 의지가 있느냐는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조미김 포장에서 플라스틱 트레이를 제거한 동원F&B도 트레이 없이 김을 필름 포장할 수 있는 설비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동원F&B는 "트레이 없는 자동화 기술을 연구했다"며 "제품 안전이든 공정 설계든 트레이는 필수가 아니다"라고 했다.
식품기업으로부터 하청을 받아 즉석조리식품을 제조하는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간편조리식 시장 초기에 플라스틱 트레이를 넣으면 진열했을 때 '볼륨감'이 살아서 좋다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당시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던 기업들이 지금 시점에 트레이 없는 방식으로 제품을 다시 설계하려니 곤혹을 치루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들 중에서는 플라스틱 트레이 대신 종이 트레이를 도입하는 곳도 있지만 종이 포장재가 플라스틱보다 더 친환경적이라는 증거는 없다. 물론 종이가 플라스틱보다 탄소배출은 적지만, 다른 요소에서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있다.
앞서 농심ㆍ롯데제과ㆍ해태제과 등은 지난 2월 본보 지적 이후, 생생우동·카스타드·홈런볼의 플라스틱 트레이를 종이 등 다른 재질로 교체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환경운동연합·서울YMCA 등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플라스틱 트레이를 제거하라는 요구가 거세지자 '플라스틱' 감축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없애도 되는 포장재는 없애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 환경 전문가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종이를 사용해도 환경 오염은 발생한다.
2018년 스웨덴의 멸균팩 제조업체 ‘테트라팩’이 플라스틱 대신 종이 빨대 도입을 검토하며 진행한 조사가 대표적인 근거다. 테트라팩은 멸균팩 시장 80%를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당시 플라스틱 빨대가 해양 생태계를 망친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이에 호주의 환경 연구 기관인 ‘싱크스탭’에 종이 빨대와 플라스틱 빨대 사용의 환경 영향에 대한 전과정평가(LCAㆍLife-Cycle Assessment)를 의뢰했다.
전과정평가는 특정 제품의 원료 생산부터 폐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일으키는 환경 오염을 분석하는 기법이다. 탄소 배출, 산성화, 생태계 영향, 자원순환 등을 평가한다.
2019년 싱크스텝은 연구보고서를 발간하며 “(플라스틱과 종이 중) 어떤 물질이 더 좋은지 추천하기 어렵다. 각 선택지의 환경 영향이 상쇄된다”고 결론 내렸다. 플라스틱과 종이 모두 환경 영향이 있고, 각각 영향을 크게 미치는 영역이 달라 어느 하나가 절대적으로 낫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뜻이다.
플라스틱 빨대는 탄소배출ㆍ자원순환 측면에서 종이 빨대보다 악영향이 컸다. 반면, 종이 빨대는 산성화ㆍ부영양화ㆍ물 부족 측면에서 플라스틱 빨대보다 악영향이 컸다. 종이 빨대의 탄소배출 역시 플라스틱에 비해 적을 뿐 약 0.4㎏당 0.52㎏(플라스틱은 0.97㎏)의 탄소를 배출했다.
다만 싱크스텝은 “기후위기가 가장 심각한 환경 문제임을 고려할 때 종이 사용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테트라팩은 플라스틱과 종이 빨대를 모두 생산해 거래처가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정미란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여태껏 기업들이 식품 안전을 내세우며 편하지만 폐기물을 양산하는 방식으로 이윤을 얻었던 것"이라며 "여전히 비용 문제를 핑계로 불필요한 포장재는 그대로 유지한 채 ‘바른 먹거리’ ‘착한 포장재’ 등으로 마케팅을 하는 것은 위장환경주의(그린워싱)로 보인다"며 "내년 가정간편식 시장 규모가 5조 원대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불필요한 포장재 감축은 필수"라고 말했다. 2019년 가정간편식 시장은 4조 원대였다.
다행히 기업들은 변화를 약속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중장기적으로 모든 제품에서 플라스틱 트레이를 제거할 예정"이라며 "식품 안전에 지장이 없다는 점이 확인되는 대로 빠른 시일 내에 포장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풀무원은 "설비 공정상 플라스틱 트레이를 없앨 경우 포장 봉투가 제대로 밀봉되지 않아 불량품이 나올 수 있다"면서도 "줄일 수 있는 포장재는 최대한 줄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오뚜기는 "떡은 면과 달리 단단한 모양이어서 파손 위험 탓에 트레이를 쓰고 있다"며 "그 외 제품엔 트레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식자재가 손상이 되는 걸 막거나, 소비자들이 트레이를 접시 삼아 식품을 데워 먹는 용도로 쓰다 보니 트레이가 들어갔다"며 "최근 환경 소비가 트랜드가 되는 만큼 추세에 맞춰 개선해 나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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