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쓰면...두부 3개월, 고추장 3년?

입력
2021.07.06 14:00


서울의 한 편의점에 진열된 음료·유제품에 유통기한이 표시돼 있다. 김현종 기자

2년이 된 고추장이 있다. 유통기한 날짜를 보니 진작에 지났다. 버려야 할까. 유통기한 때문에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정부와 국회가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꿔서 표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이르면 2023년부터는 이런 고민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냉장보관 원칙을 지키면 소비기한은 달걀이 70일, 두부는 104일 정도로 예상되며, 고추장과 참기름은 3년 6개월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두부, 유통기한 지나도 3달 더 먹어… "방부제 넣었나" 오해받기도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정리한 식품별 유통기한과 소비기한 차이. 소비기한은 '소비자가 먹어도 건강에 지장이 없는 기한'으로, 유통기한보다 길게 설정된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 제공

한국외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냉장보관을 잘하면 현행 유통기한보다 몇 배의 시간이 지나도 섭취가 가능한 식품들이 많다. 유통기한이 보통 14일인 우유는 기간 만료 후 45일이 지나도 괜찮다. 슬라이스 형태의 치즈는 유통기한 6개월보다 70일이나 더 먹을 수 있다. 액상 커피 등 우유가 포함된 음료도 약 11주인 유통기한보다 30일가량 더 섭취해도 되는 것으로 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냉동만두는 유통기한 만료 후 25일이 지나도 품질에 큰 변화가 없다.

유통기한이 2주인 두부는 90일이 지나도 섭취가 가능하다. 이런 내용이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두부 업체들은 소비자들로부터 "유통기한이 한참 지났는데 두부가 상하질 않는다. 방부제를 얼마나 많이 넣은 것이냐"는 오해 섞인 항의를 받기도 한다. 달걀은 보통 유통기한이 45일인데, 25일이 더 지나도 괜찮다.

장류·기름류·통조림류는 수년을 더 먹을 수 있다. 고추장은 유통기한이 약 18개월로 설정돼 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그 후 2년이 지나도 섭취에 큰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본다. 유통기한이 2년인 식용유는 그 후로 5년 동안, 1년인 참기름은 2년 6개월이나 더 지나도 된다. 참치캔·통조림은 유통기한이 5~7년인데, 업계 관계자들은 10년은 더 먹어도 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같은 식품군 내에서 차이가 있는 제품들도 있다. 식빵은 밀봉 후 냉장보관을 한다면 유통기한(3일)의 7배 수준인 20일까지 섭취할 수 있다. 다만 크림빵·케이크는 유통기한이 지나면 2, 3일 내에 변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건면은 유통기한 만료 후 50~90일까지 안전하지만, 생면은 제품에 따라 9일, 12일, 25일이 지나자 곰팡이균이 검출됐다.

다만 식약처 관계자는 "이는 섭씨 0~5℃ 냉장 등 통제된 조건 하에 진행한 실험이기 때문에 현실보다 품질이 유지되는 기간이 다소 길게 나타난 측면이 있다"며 "실제 소비기한제가 도입될 경우 엄밀한 과학적 판단을 거쳐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위 결과보다 보수적으로 날짜가 설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식약처에 따르면, 현행 유통기한제는 식품 품질 변화시점의 70% 선으로 설정하는데, 소비기한은 80~90% 선으로 설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구체적으로 식품별 소비기한 일수를 산정하는 기준이나 제조사ㆍ유통업체 간 책임분배 기준 등은 법안 통과 후 고시·시행규칙을 통해 정해질 예정이다.

국회 소위 통과, 이대로 의결 시 2023년부터 적용

지난 5월 30일 식약처는 ‘2021 P4G 서울 녹색 미래 정상회의’에서 소비기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으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달 17일 법안 소위를 열고 소비기한제 도입을 규정한 ‘식품 등 표시ㆍ광고에 관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소비기한제는 식품에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표시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소비자기후행동 등 환경단체들은 유통기한 제도 때문에 폐기되는 음식물 쓰레기 문제를 제기하며 그동안 소비기한 도입을 요구해왔다. (▶관련기사: 50일까지 멀쩡한 우유 '유통기한' 탓 버리는 일, 언제까지?)

법안이 그대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소비기한제는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다만 유제품 등 냉장식품에는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2026년부터 적용된다.

대다수 식품업체들은 제도 방향성에 맞추겠다는 입장이다. 한 음료 업체 관계자는 “음료제품은 유통기한도 1년으로 긴 편이라 소비기한제 도입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농심ㆍ오뚜기ㆍ대상ㆍ동원 등 식품 대기업들도 “소비기한을 설정하는 세부 규칙이 발표되는 대로 식품별 기한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낙농업계는 반발… 전문가들 “생산자 설득 필요”

CU편의점에서 한 소비자가 우유의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있다. CU는 지난해 6월부터 유통기한이 임박했지만 소비기한이 남은 제품에 '그린세이브' 스티커를 붙여 정상가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CU 제공

낙농업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지난달 3차례 보도자료를 내고 “현행 우유 유통현실에서는 섭씨 10도 이하 냉장유통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며 “우유만큼은 소비기한 도입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짧은 유통기한 탓에 그간 외국산 살균유가 들어오지 못했다”며 “소비기한제는 국내 시장의 마지막 빗장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보건복지위에 우유를 예외품목으로 검토하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최승철 건국대 식품유통공학과(축산경영학 전공) 교수는 “생산자 입장에서 제도 변화 등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도 “당장 예외 여부를 결정하기보다는 이미 냉장식품에 3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진 만큼 시장 영향을 지켜보며 생산자를 설득하고 절충안을 마련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현종 기자
최서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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