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에서 복지국가의 단초를 찾자

입력
2021.07.14 00:00
27면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23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23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2002년부터 정치학자들은 총선 때마다 언론사와 손잡고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 및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이념 성향과 다양한 정책에 대한 입장을 물어보는 설문조사를 실시해 왔다. 정책 입장의 경우 정치·경제·사회 세 영역에 걸쳐 전통적인 주요 정책과 함께 조사 당시 관심을 받는 이슈들을 포함한 4~5개 정책에 관한 생각을 물어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2016년 총선 당시 설문 문항을 설계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경제 영역의 정책 중 하나로 당시 유럽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던 기본소득 문제를 포함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에 대해 다른 학자들은 과연 한국 사회에서 기본소득 문제가 적실성이 있는지, 그리고 일반 유권자는 물론이고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고 당선된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기본소득 이슈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결과적으로 기본소득 문제는 설문에 포함되었지만, 꽤 긴 시간 동안 토론이 벌어졌기 때문에 아직까지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불과 5년이 흐른 2021년 기본소득은 한국 정치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로 떠올랐다. 여당의 대선후보를 뽑는 당내 경선에서는 기본소득을 넘어 기본주택이라는 정책까지 등장하여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불과 5년 만에 이러한 급격한 변화가 발생한 배경은 무엇일까? 5년 전에는 거의 논의되지 않던 정책이 어쩌다가 차기 대선의 핵심 의제로 논의될 정도로 익숙한 주제가 되었는가?

개인적으로 기본소득 정책이 익숙한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된 결정적인 계기는 코로나19로 인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전까지 복지 혜택은 나와 무관한 일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생각했던 많은 사람이 국가로부터의 실질적인 현금 지원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보편적 복지제도의 가능성에 눈을 떴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복지제도에 대해서 가지는 태도에는 경제적 지위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요인이 영향을 끼치는데, 그중 하나는 다름 아닌 복지제도의 수혜를 본 직간접적인 경험 여부이다. 즉 본인 혹은 가까운 사람이 복지 혜택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복지제도의 확대에 동의할 확률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복지제도에 대한 태도에 마찬가지로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정부의 정책 결정 및 집행 과정이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는 믿음이다. 내가 납부한 세금이 낭비되지 않고 필요한 곳에 공정하게 사용될 것이라는 대중들의 믿음이야말로 복지제도와 이를 유지하기 위한 세금 부담을 가능케 하는 정치적 기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추경예산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 재난지원금의 선별 지급과 보편 지급 간의 논쟁을 바라보면 안타까운 점이 있다. 물론 국가재정을 담당하는 입장에서 국가채무의 급격한 증가를 걱정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납세를 통해 복지제도를 떠받쳐야 하는 고소득자들이 혜택의 경험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선별 과정에서 등장할 수밖에 없는 공정성 논란을 생각한다면,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의도치 않게 주어진 복지국가의 가능성을 충분히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당장의 재정 부담에도 불구하고 한국 복지국가의 장기적인 발전을 염두에 둔 정치적 결단은 정말 어려울까?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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