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바서의 '보물'은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

입력
2021.07.07 04:30
26면
구독

7.7 올리비에 르바서

프랑스 해군장교-사략선장 출신 해적 올리비에 르바서가 남긴 보물섬 암호문. 위키피디아

프랑스 해군장교-사략선장 출신 해적 올리비에 르바서가 남긴 보물섬 암호문. 위키피디아

사략선(私掠船)은 국가나 왕실로부터 적국 선박을 공격해 약탈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공인 해적이다. 16세기 무렵부터 등장한 사략선은 대항해시대 제국들의 해군력을 보완하는 준군사조직으로, 사략면장(Letter of Marque)을 걸고 활동했다.

17~18세기 '해적 황금시대(Golden Age of Piracy)'의 주역 다수도 사략 전통의 계승자들이었다. 즉 군대라는 국가 폭력과 사적 폭력(해적)의 윤리적, 질적 차이는 크지 않았고, 지금도 둘이 밀착된 예는 민주주의가 성숙되지 않은 곳에선 흔하다. 해방 후 한국의 국가권력도 관변 청부폭력 단체를 두루 활용했고, 폭력배 일부는 대의정치 무대에 서기도 했다.

사략선은 유럽 거의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이 운영했다. 그들은 무조건 교수형이던 해적과 달리, 적국에 붙잡히더라도 군사포로에 준하는 처우를 받았다. 사략선은 해군이 적국 무역선을 나포했을 경우 받던 포상금보다 훨씬 후한 수익을 거뒀고, 그래서 정규 해군도 사략선처럼 비공식적 작전을 수행하는 예가 많았다.

영국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1883)'의 모티브가 된 해적 올리비에 르바서(Olivier Levasseur, 1688?~1730.7.7)도 그런 예였다. 프랑스 칼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성장한 그는 해군 장교를 거쳐 스페인 왕위계승전쟁(1701~1714) 중 루이 14세의 사략면장을 받아 활약했고, 전후 해적으로 변신해 카리브해와 남미, 아프리카를 누볐다. '보물섬'의 해적처럼 눈 한쪽을 다쳐 안대를 했던 그는 잔혹함과 정규군 시절 익힌 해상 지휘 능력으로 악명 높았다.

그는 1721년 4월 폭풍에 난파한 스페인 갤리선 '노스트라 세뇨라 델라 카보(Nostra Senora della Cabo)'호의 막대한 금은보화를 챙긴 뒤 프랑스 정부와 사면 협상을 벌였으나 실패, 1730년 체포돼 교수형 당했다. 처형 당시 그는 보물을 숨긴 위치를 기록한 17행의 암호문을 남겼고, 아직 아무도그 암호를 풀지 못했다고 한다.

최윤필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