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자격

입력
2021.07.01 18:00

실패에 기대는 반사정치는 이제 그만
분노는 생산성 없는 자기파괴에 불과
공정·정의도 통합·포용 안에서만 가능

대선 출마 기자회견 중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 오른쪽은 온라인을 통해 선거 출마를 선언하는 이재명 경기지사. 뉴시스

윤석열 비판은 대략 두 갈래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과, 구체적 정책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그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둘 다 썩 온당한 비판은 아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킬 인물”이라는 찬사로 그를 발탁하고서도 정작 중립의무를 저버리도록 강요한 게 누구였는지는 재론할 필요도 없다. “임기가 보장된 자리를 정치적 목적으로 사표를 냈다”(추미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희생과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졌다”(윤건영)는 식의 비난은 적반하장이다. 정권이 그의 사퇴를 얼마나 목 빼고 기다렸는지 뻔히 보았는데도.

말 난 김에 곧장 선거판에 뛰어들었던 그 숱한 판검사 출신 여야 정치인들은 다 뭔가. 그에 못지않게 정치적 공정성이 요구되는 언론사 대표나 고위 간부들이 하루아침에 특정 정파의 선출직이나 정무직에 진출하는 행위는 윤리적으로 또 괜찮은가. (대선 후보군에도 그런 이들이 있어 하는 말이다)

그가 출사표에 담은 공정·법치 기반의 자유민주주의는 무너진 보편가치를 재삼 강조한 정도다. 현 대통령의 빛나던 취임사나 전임자들의 화려한 약속도 대개 허언이었을진대 크게 의미를 둘 건 아니다. 아직은 빈약한 콘텐츠도 총장에서 사퇴한 지 고작 넉 달임을 감안하면 이해해줄 수 있다. 반대였으면 오래전부터 정치수업을 해온 정황으로 책잡혔을 것이다.

윤석열에 대한 진짜 우려는 다른 것이다. 시종 결기에 찬 표정과 출마선언문 도처에서 느껴지는 날것의 분노다. “매표에 가까운 포퓰리즘, 국민 약탈, 무도한 행태, 독재와 전제, 부패완판, 망상, 기만, 씻을 수 없는 죄….” 분노는 생산력 없는 자기파괴적 정서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한번 수사대상을 물면 끝장을 보고야마는 독기, 과단, 집요함이 두드러지는 강골의 특수통 검사였다. 검사 아닌 대통령으로선 도리어 위험한 자질이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불공정과 독선 때문이었으되 그 토양은 분노에 기반한 적대와 배제, 야멸찬 편 가름이었다. 윤석열에게서 입장 뒤바뀐 유사 정서를 감지하는 일은 그래서 불안하다. 격문에 가까운 선언문의 성격을 이해한다 해도 국가지도자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통합과 포용의 언급이 없었음은 크게 아쉽다. 나라의 진짜 주인이라는 국민이, 빼앗긴 주권을 되돌려주겠다는 국민이 또다시 정파와 진영에 갇힌 그만의 국민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통령은 과거 행적에 대한 보상을 넘어 국가와 전체 국민의 미래를 책임지는 자리다. 전임자의 실패에 기대는 반사정치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지겹도록 보아왔다. 분노와 보복의 욕구를 과감하게 끊어냈던 DJ나,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인 링컨, 아이젠하워의 포용적 리더십을 이제라도 곱씹어보기 바란다.

현재로선 대권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봐도 좋을 이재명 지사도 마침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윤석열을 여지없이 아마추어로 만드는, 프로다운 경험과 비전이 단연 돋보이는 ‘과연 이재명다운’ 선언문이다. 그러나 그 역시 앞으로 남은 기간에 기존의 전투적 강성 이미지를 상당 수준 벗겨내지 못하면 ‘유능한 행정가’ 이상의 신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 공정과 정의는 여야를 막론한 공통가치가 돼 있다. 그래서 진정한 시대정신은 다시 통합과 포용이다. 그건 섣부른 관용이나 타협이 아니라 전체 국민을 아우르고 국가정책을 실현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유효한 현실 동력이다. ‘자유와 창의가 넘치고, 약자가 기죽지 않는 따뜻한 (윤석열의) 나라’도 오직 그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모든 대선후보가 이 가치를 맨 앞에 두고 경쟁하기 바란다.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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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한국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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