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선택받지 못했다

입력
2021.04.08 18:00
수정
2021.04.08 19:2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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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도 선택 아닌 배제의 결과
현 정치구도로는 더 나아갈 수 없어
산업화·민주화를 넘는 새 시대가치를


여론조사 추이가 명백한 방향성을 보이긴 했어도 이 정도의 격차가 날 줄은 몰랐다. 국민의힘으로선 접전 끝에 어지간하게 이겼으면 더 나을 뻔했다. 그러면 오랜만의 승리감에 취해도 됐을 것이다. 지금은 겨우 일 년 전 민주당의 압승 국면이 극단적으로 반전한 것에 도리어 모골이 송연할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국민의힘의 자력적 승인은 없다. 적시에 터진 LH 사태와 여권의 잇따른 자살골로 얻어걸린 압승이다. 국민의힘 당선자들은 비교우위로 볼 만한 어떤 자질도, 대안으로서의 어떤 신뢰도 보여주지 못했다. 유권자의 관심이 다만 집권세력 징치에 쏠린 덕을 보았을 뿐이다. 사실 MB 당선서부터 모든 선거의 승리가 반사이익에 기인한 것이었다. 선택 아닌 배제 선거의 악순환은 이쯤에서 끝낼 때가 됐다.

그래서 정치공학적 미시분석을 넘어 시대 흐름의 큰 차원에서 이번 선거의 의미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랫동안 양대 정당과 지지자들이 타성처럼 기대온 낡은 산업화·민주화 신화의 퇴장이자 구시대의 청산이 그것이다. 현대사의 자랑스러운 성취를 대표하는 두 가치는 역사적 효용을 다했음이 분명해졌다.

결정적으로 산업화 시대의 가치는 마지막 복고를 꾀했던 박근혜의 탄핵으로 종언을 고했고, 86세대가 전리품처럼 독점해온 민주화 성취의 가치 역시 이번 선거로 냉혹한 심판을 받았다. 집권 여당은 자신들만을 역사적 대의로 포장하고 반대편을 다 부패기득권으로 몰아세워 척결 대상으로 삼는 치기를 부렸다. 그렇게 그 시절 운동권적 시대착오 속에서 독선과 오만으로 치달아온 결과가 이번 선거다. 산업화의 영광이 우리 역사의 토양으로 녹아들어 내재화했듯 민주화의 성취 역시 마찬가지다. 대놓고 불러대는 민주화 타령은 산업화의 복고조 가락처럼 더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2030세대의 투표 경향은 상징적이다. 이 젊은 세대는 반란을 도모하지 않았다. 그들은 보수화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역사적 이념적 틀에서 벗어나 있었다. 실용 공정의 현실 가치가 그들의 이념이라면 이념일 것이다. 민주당 정권이 현실능력도, 공정성도 갖추지 못했다고 본 것뿐이다. 전 정권에 무능과 불공정으로 낙제점을 주었던 것과 똑같은 이유다. 태어나기 전인 산업화·민주화의 성취를 생래적 환경으로 알고 성장한 그들로선 당연한 인식이다. 민주화의 직접영향에서 성장한 40대가 인식의 섬에 갇힌 것도 역사적 맥락과 닿아 있다.

어쨌든 새로운 시대가치를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우리가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진영으로서의 제3지대 따위가 아니라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치를 함께 인정하고 발전적으로 통합하는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말이다. 앤서니 기든스가 제3의 길을 주창한 게 벌써 아득한 20여 년 전이다. 원래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융합의 의미지만 우리로 치면 경직된 이념적 정파적 사고를 탈피하고 공정 실용 통합의 보편가치를 처음 제대로 구현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굳이 첨언하면 시대적 대전환기에 무조건적인 열성지지층은 해악이다. 지지 대상의 운신을 제약함으로써 현실적이고도 유연한 대응능력을 가로막는 역작용을 할 뿐이다. 열성지지자들이 강퍅한 배타성을 드러낼수록 정작 선거 향방을 결정짓는 온건중도층은 반대편으로 등 돌리는 법이다. 그들은 새털처럼 가볍게 갈대처럼 유연하게 움직인다.

그러니 이재명이든, 윤석열이든, 다른 대권 야심가들이든 다들 두려운 마음으로 이번 선거의 의미를 곱씹으며 시대적 책무를 깊이 고심하기 바란다. 진검승부인 대선은 채 일 년도 남지 않았다.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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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한국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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