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법치로 충분하지 않다

입력
2021.06.30 18:00
수정
2021.07.01 06:07
26면

윤석열의 핵심가치 시대정신에 부합하지만?
포스트코로나 시대 국가적 과제는 더 엄중?
정권교체 의지보다 국정운영 능력 갖춰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대선 출마선언을 지켜보면서 기시감이 들었다. ‘에~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며 훈시(訓示)조로 말문을 여는 확신에 찬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듯했다. 검찰총장 재직 시절 법무연수원이나 지방검찰청을 방문해 검찰청 직원들을 상대로 강연하던 검사 윤석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정과 정의,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등 출마 선언문에 등장하는 키워드도 검사 윤석열의 뇌리에 각인된 단어가 대부분이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출사표에서 공정과 법치를 유독 강조한 것은 거기서 시대정신의 요체를 보았다는 뜻일 게다. 검찰총장으로 조국 일가를 수사하면서 386의 내로남불식 공정의 민낯을 목격하고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에 등장하는 권력 핵심 인물들의 거래를 보면서 법치주의 훼손을 떠올렸을 법하다. 여권 유력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 또한 공정의 깃발을 들고 출정식에 나선다고 하니, 여야 막론하고 2022대선의 시대정신이 공정으로 수렴되는 양상이다. 2030세대에서 공정과 정의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윤 전 총장이 시대정신은 제대로 선점하지 않았나 싶다.

검찰총장의 정치직행을 두고 중립성 논란이 적지 않지만 큰 걸림돌은 아니다. 검사 윤석열을 검찰개혁의 저항세력으로 규정짓고 정치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인 장본인들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관행상 (역대 검찰총장이 정치 참여를) 하지 않았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국민이 판단할 문제”라는 기자회견 답변은 부당한 탄압을 받고 정치에 소환된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X파일을 문제 삼지만 파괴력이 의심되는 변수다. 시중에 나도는 문건들은 과거 검찰총장 청문회장 주변을 떠돌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윤석열의 총장 임명을 저지하겠다며 야당이나 경쟁자 측에서 만든 파일인데, 문제가 있다면 당시에 이미 사달이 났을 것이다. 윤 전 총장이 기자회견에서 “X파일을 본 적 없다“고 잡아뗐지만, 캠프 차원에서라도 파일을 입수하고 내용을 검증했다는 추론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다고 윤석열 캠프가 안심하긴 이르다. 우호적 여건과 기대감이 지금까지 윤석열 지지율을 견인했다면, 앞으로 지지율 까먹을 변수도 부지기수다.

우선 윤 전 총장이 출사표를 통해 공정과 법치의 시대정신은 밝혔지만 국가지도자로서의 비전이나 능력은 제시하지 않았다. 정치 신인 윤석열이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열어갈 능력을 검증받은 적도 없다. 역대 정권 말기 어떤 여론조사에서도 차기 대통령의 첫 번째 요건은 민생 해결이지 공정이 아니다. 공정과 법치가 출마의 동력으로 유용할지 몰라도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최고 지도자의 충분 조건일 수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국가적 과제는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윤석열 출사표의 또 다른 코드가 정권교체론이다. 그러나 최근 대선을 되짚어보면 정권교체가 그리 간단치 않다. 국정운영 지지도가 10%대까지 떨어진 노무현·박근혜 정부 말기에 통했다면, 김대중·이명박 정부는 막판까지 지지율 20%대 중반 이상을 유지하며 정권교체를 허용하지 않았다. 지금도 정권교체 여론은 50%를 웃돌지만 문재인 정부 지지율도 30%를 넘어 역대 최고치다.

보수 일각에서는 윤석열의 대안카드마저 나돌고 있다. 대구·경북에서 ‘스토리가 대통령감’이라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 대한 기대가 번지고 있다는 소식을 최근 TK 법조인에게 들은 적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앙금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한 지역정서가 어렴풋한 배경으로 떠올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정면 돌파했던 민감한 사안을 윤 전 총장이 어떻게 풀어갈지도 자못 궁금하다.

김정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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