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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사이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된 '美 힙합 양대 산맥'

입력
2021.07.02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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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콜드케이스]? <20>美 유명 래퍼 투팍과 비기의 총기 살해 사건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 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1990년대 미국 힙합 음악계의 양대 산맥이었던 투팍 샤커(오른쪽)와 비기 스몰스(왼쪽)는 6개월 간격으로 차에서 총격을 당했다. 투팍 샤커의 앨범을 낸 '데스 로' 음반제작사의 서지 나이트(가운데) 대표는 비기 스몰스의 살해 사건에 깊이 관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미국 힙합 음악계의 양대 산맥이었던 투팍 샤커(오른쪽)와 비기 스몰스(왼쪽)는 6개월 간격으로 차에서 총격을 당했다. 투팍 샤커의 앨범을 낸 '데스 로' 음반제작사의 서지 나이트(가운데) 대표는 비기 스몰스의 살해 사건에 깊이 관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했어요. 총 맞은 제 꼴을 보고도 아무도 놀라지 않았어요. 마치 제가 총 맞을 걸 예상이나 했던 것처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묻지도 않더군요. 내가 살아있는 게 정말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기만 했다고요.”

(1995년 미 음악전문지 바이브와의 인터뷰 중)


의심의 싹이 텄다. 1994년 11월 30일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총격을 당한 투팍 샤커(1971~1996)는 그때 그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당시 미 서부의 힙합 제왕으로 불리던 투팍은 평소 친분이 두터운 동부 힙합계의 거물 비기 스몰스(본명 크리스토퍼 월러스·1972~1997)를 만나려고 그의 스튜디오로 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스튜디오 앞 엘리베이터에서 무장강도가 그에게 총을 난사했다. 머리 등에 5발을 맞은 투팍은 피투성이가 된 채 비기, 동부 힙합 음반제작사인 ‘배드 보이’의 퍼프 대디(52) 등이 있던 스튜디오로 올라갔다.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정적이 흘렀고, 투팍은 직접 경찰에 전화해 병원으로 향했다.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의심의 싹은 빠르게 자랐다. 무장강도는 잡히지 않았고, 사건은 유야무야됐다. 총상을 입은 투팍은 몸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사흘 후 성폭행 혐의로 징역 4년 2월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사건 두 달 후, 비기의 새 노래 ‘누가 널 쐈어(Who Shot Ya)’가 나왔다. 머릿속을 맴돌던 의심이 확신으로 변한 순간이었다. 비기의 노랫말은 그를 믿었던 투팍의 심장을 난도질했다.

투팍의 반격이 이어졌다. 스눕독과 닥터 드레 등이 포진한 서부 힙합계의 거대 음반제작사 ‘데스 로’의 서지 나이트(56) 사장이 투팍을 찾아왔다. 앨범 3장을 함께 내는 조건으로 보석금 140만 달러(약 15억 원)를 내줬다. 투팍이 풀려났다. 서지는 로스앤젤레스(LA)의 우범지역인 콤프턴 출신으로, 미식축구 선수 생활을 하다 힙합 음반 제작자로 변신했다. 그는 갱단과도 밀접한 관계였다. 투팍은 1996년 6월 비기를 겨냥한 곡을 발표했다. ‘널 조질 거야(Hit Em Up)’.

1996년 둘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깊은 증오와 불신이 랩에 실려 서로를 오갔다. LA타임스는 "비기와 투팍은 시상식, 콘서트, 녹음 도중에도 폭력적 행위를 주고받으며 불화했고, 헝클어진 관계는 돌이키기 힘들어졌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불우했던 성장 배경부터 최후의 순간까지 똑 닮았던 미국 힙합 음악계의 제왕 투팍 샤커(왼쪽)와 비기 스몰스(오른쪽)는 사후에도 많은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며 전설로 남았다.

불우했던 성장 배경부터 최후의 순간까지 똑 닮았던 미국 힙합 음악계의 제왕 투팍 샤커(왼쪽)와 비기 스몰스(오른쪽)는 사후에도 많은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며 전설로 남았다.


투팍이 죽고... 6개월 후엔 비기도 숨져

분노의 총구는 투팍을 먼저 향했다. 1996년 9월 7일 투팍은 라스베이거스의 MGM 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마이크 타이슨과 브루스 셀던의 헤비급 복싱 타이틀 매치를 보러 갔다. 이때 그는 지역 갱단 일원이었던 올랜도 앤더슨(1998년 사망) 일행과 몸싸움을 했다. 앞서 올랜도가 ‘데스 로’ 일행을 건드렸단 이유였다.

이후 인근 호텔에 잠시 들른 투팍은 서지가 운전하는 검은색 BMW750 세단 운전석 옆자리에 타고 시내 클럽으로 향했다. 교차로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 옆에선 팬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투팍이 이에 응대하던 찰나, 바로 옆으로 흰색 구형 캐딜락이 다가왔다. 누군가 창문을 내리고 총격을 가했다. 13발 중 5발이 투팍의 머리와 가슴 등을 관통했다. 엿새 후인 9월 13일, 투팍은 숨을 거뒀다. 고작 스물다섯의 나이였다.

비난의 화살은 비기와 그의 음반제작사 대표였던 퍼프에게 쏟아졌다. 그들이 지역 갱단을 이용해 투팍을 죽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사망 직전 몸싸움 상대방이었던 올랜도도 수사망에 올랐다. 하지만 서부 힙합계 제왕의 처참한 죽음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관련자 수십 명이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LA경찰은 용의자 한 명 특정하지 못하고 수사를 마쳤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러셀 풀 LA경찰 강력팀 형사는 “사건 배후에 LA경찰이 있었다. 이들이 진실을 은폐했다”고 주장했지만 묵살됐다.

그로부터 6개월 뒤, 힙합 음악계는 또다시 충격에 휩싸였다. 투팍 살인 사건 배후로 의심받던 비기가 똑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맞았다. 1997년 3월 9일 LA 피터슨 박물관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던 그는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던 길에 투팍처럼 대로 한복판에서 총격을 당했다. 짙은 색 쉐보레 임팔라 세단이 비기가 탄 차량을 가로막고선 정확하게 그를 쐈다. 비기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이번엔 ‘투팍의 죽음에 대한 서지의 보복’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마찬가지로 숱한 이들이 용의선상에 올랐지만, 증거가 부족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의문의 죽음을 맞은 둘의 사후 앨범은 단숨에 시장을 휩쓸었다. 투팍 사후 두 달 뒤 발매된 앨범(The Don Killuminati: The 7 Day Theory)은 나오자마자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올랐고, 첫 주에만 66만4,000장이 판매됐다. 비기가 죽기 직전 준비하던 앨범(Life After Death)은 사후에 발표됐다. 이 역시 빌보드 정상을 차지했고, 평단에선 역대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출시 첫 주 만에 69만 장이 팔렸다.

투팍 샤커의 음반을 발매한 '데스 로' 음반제작사의 서지 나이트(가운데) 대표가 2015년 3월 로스앤젤레스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P 자료사진

투팍 샤커의 음반을 발매한 '데스 로' 음반제작사의 서지 나이트(가운데) 대표가 2015년 3월 로스앤젤레스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P 자료사진


거대 음반제작사와 갱단, 부패 경찰의 ‘힙합 카르텔’

2006년 LA경찰은 미제로 남은 두 사건의 특별수사반을 꾸렸다. 비기의 유족이 “갱단에서 활동비를 받은 부패한 LA경찰이 비기 사망에 연루됐다”며 LA시를 고소했기 때문이다. 수사는 원점에서 시작됐다. 수사반은 주변 인물들을 샅샅이 훑었다. 미 동부 힙합계의 대표인 ‘배드 보이’, 서부의 대표인 ‘데스 로’의 구성원들이 모두 조사를 받았다.

이들의 배후엔 갱단과 마약 밀매상, 힙합 행사 경호를 맡았던 현직 경찰관들이 있었다. 당시 수사반을 이끌었던 그렉 케이딩(58) 형사는 비기 살해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서지의 오른팔이자, 갱단 일원이었던 ‘푸치’를 꼽았다. 경찰은 서지가 ‘투팍 살해범은 비기와 퍼프’라고 생각하고, 그 복수를 위해 지역 갱단을 고용해 비기를 살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푸치는 2003년 괴한의 총격에 이미 사망한 뒤였다.

투팍 살해 사건 용의자로는 그가 죽기 전 몸싸움을 했던 올랜도가 지목됐다. 경찰이 확보한 증언에 따르면, 올랜도가 싸움 직후 갱단 간부였던 삼촌 키스 데이비스에게 전화해 도움을 청했고, 키스는 올랜도가 투팍을 죽이도록 도왔다. 실제 올랜도와 키스는 투팍에게 총을 쏜 차량에 함께 탑승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올랜도 역시 한참 전인 1998년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핵심 용의자들이 모두 고인이 된 터라, 수사는 종결됐다. 비기의 유족도 소송을 취하했다. 허망한 결과였다.

미제로 남은 투팍 샤커와 비기 스몰스 살해 사건을 다룬 책 '머더 랩'(왼쪽)과 다큐멘터리 '비기와 투팍'(오른쪽) 등을 비롯해 둘의 죽음 배후를 두고는 여전히 다양한 추측이 나온다.

미제로 남은 투팍 샤커와 비기 스몰스 살해 사건을 다룬 책 '머더 랩'(왼쪽)과 다큐멘터리 '비기와 투팍'(오른쪽) 등을 비롯해 둘의 죽음 배후를 두고는 여전히 다양한 추측이 나온다.

그런데 다시, 사건 발생 20여 년 만에 대반전이 시작됐다. 2015년 한 식당 주차장에서 2명을 트럭으로 치고 달아난 혐의(뺑소니 살인)로 수배 중이었던 서지가 2018년 징역 28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그러자 투팍과 비기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올랜도의 삼촌이자 갱단 간부였던 키스가 “퍼프 대디가 100만 달러를 약속하며 투팍과 서지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고 폭로한 게 대표적이다. 다큐멘터리 ‘비기와 투팍’(2002년)에서 두 사람 죽음의 배후로 서지를 꼽았던 영국 출신 닉 브룸필드 감독은 최근 새 증언을 담은 다큐멘터리 ‘라스트 맨 스탠딩(Last Man Standing)’을 곧 개봉한다.

브룸필드는 지난달 28일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서지 나이트가 수감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과거 하지 못했던 말을 털어놓을 준비가 됐다”며 “이번 다큐멘터리는 힙합 음반제작사 내부의 문화, 갱단과의 끈끈한 관계, 여기에 부패한 경찰도 연루됐다는 사실을 수많은 증언들로 드러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두 사건에 LA경찰이 관여했고, 그들이 이를 은폐하려고 가능한 모든 짓을 다 했으며, 증거를 내놓은 사람들을 억압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는 결정적 증거를 제공할 것”이라고도 했다. 힙합 음악의 역사를 새로 썼던 두 사람의 죽음에 가려졌던 비밀, 24년간 은폐돼 온 진실이 이제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을까.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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