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게 책 판매순위라는 족쇄

입력
2021.06.25 19:00
22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한국일보 자료사진


에세이집을 하나 출간했고, 20권의 증정본을 받았다. 전자책 플랫폼 리디북스에 단편소설 하나를 발표했다. 200권을 선물할 수 있는 코드를 받았다. 나는 기념사진을 몇 장 찍고 친구들에게 출간 소식을 알렸다. 약간은 강요에 가까운 말투로 책의 구매를 권한 다음, 나는 증정본 스무 권을 책장 구석에 집어넣고 잊어버렸다. 전자책 선물 코드도 단 하나도 쓰지 않았다. 증정본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건 상당히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놀랍지 않게도.

인터넷 서점에서 얼마나 노출되느냐가 판매량에 직결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책을 많이 사지 않으며, 동시에 도서 시장은 아주 적은 비율의 승자가 대부분의 매출을 차지하는 승자 독점적인 경향이 있다. 단 십수권의 판매량이 온라인 서점에 표시되는 책의 순위와 판매 지수에 가시적인 영향을 미친다.

내 첫 단편집이 출간됐을 때 어머니가 친구들에게 영업을 잔뜩 했는데, 하루 동안 순위가 열 단계 이상 훅 뛰어올라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알라딘에서는 구매자의 성별과 연령 통계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의 벗이 되는 분들이 내 책을 하나씩 사주셨기에, 통계에서 60대 여성이 꽤 오랫동안 30%가 넘는 비중을 차지했다. 즐겁고 슬픈 기억이었다.

그러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간구한다면 밥은 사줄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책은 안 돼!” 웃으면서 말했지만 즐겁지 않았다. 자취방에 쌓인 증정본들을 보면 한숨이 나왔다. 나는 지금 상태에서 몇 발짝만 더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이 잘 나가서, 다른 사람한테 증정본을 무리 없이 선물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기를 바랐다.

예전의 나를 떠올렸다. 데뷔 이후 매일매일 어떻게든 마감을 어기지 말자는 생각만 하면서 어영부영 살아왔는데, 뒤돌아보니 2년 동안 혼자서 책을 네 권 썼다. 첫 책을 낼 땐 내 이름을 단 책이 나온다는 사실이 상당히 민망하면서도 꿈을 이뤘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증정본을 친구들한테 흩뿌렸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꾸리면 아주 짜릿할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그걸 이룬 지금, 난 책의 판매 순위를 확인하며 초조해 하고 있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전자책 관리 사이트에 들어갔다. 내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들을 하나씩 입력했다. 내가 증정하지 않아도 내 소설을 사 읽어 줄 사람과 그러지 않을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발송 버튼을 누를 때, 왠지 아주 커다랗고 빨간 버튼을 누르는 느낌을 받았다.

곧 친구들의 연락이 쏟아졌다. “너냐, 한국 SF계의 귀염둥이라는 이름으로 전자책 선물한 사람이?” “잘 모르겠지만 귀염둥이인 건 확실해 보여.” 같은 식의 메시지를 주고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갔던 인연들과 안부를 나눴고,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들과 새로운 약속을 잡았다.

내 책을 사 줄 사람들에게도 책을 선물했기에, 내 책의 판매 순위가 몇 단계 낮아질지도 몰랐다. 책을 선물받은 사람은 구매자로 잡히지 않기에 호의적인 리뷰를 남겨도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전혀 초조하지 않았다. 미래로 유예된 여유를 내가 직접 잡아당겼던 때, 순간이나마 나는 진실한 해방감을 느꼈다.



심너울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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