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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만큼 비판합시다

입력
2021.05.28 19:00
22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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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던 날을 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시에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기숙사에 살았습니다. 마침 토요일이었고, 점심식사를 한 다음에 커다란 자습실에서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중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자습실 한구석이 술렁이는 겁니다. 저는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질 낮은 농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라디오 뉴스로 그걸 확인하고 나니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 귀를 스치던 바람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21년 5월 23일이었습니다. 한국 인터넷 한구석에서는 가벼운 파장이 일었습니다. 한겨레신문에 올라온 기사의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을 인용한 글로 서두를 장식하며 부동산 가격의 거품과 한국 시장의 특수성에 대해 논하는 기사였는데, ‘(부동산 가격이) 중력을 거스르다’는 표현이 헤드라인으로 사용되었습니다. SNS에서는 일베나 다름없다고 성토하는 사람들을 꽤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그 분노를 이해합니다. 12년 전의 저는 심지어 지금보다도 더욱 미숙했기 때문에, 가치관도 유아적인 수준이었고 한국의 정치 지형도도 잘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시민들의 투표로 선출된 우리나라의 대표였던 분이 그토록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일은 대단히 큰 충격이었습니다. 멋모르는 고등학생도 충격을 받고 12년 동안 그날을 기억하고 있는데, 지지자들에겐 그 사건이 얼마나 커다란 트라우마가 되었을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 죽음은 흔히 일베로 대표되는 진영에게 아주 오랫동안 저열한 조롱의 대상이 되어 왔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헤드라인에 사용된 관용어 하나 때문에 그토록 커다란 비난을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믿습니다. 그건 지나치게 과도한 추론이기 때문입니다.

그 헤드라인이 어떤 무시무시한 악의에 따라 기획되었다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중력을 거스른다는 제목을 조롱을 위해 사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적고 리스크는 너무나도 큽니다. 해당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들의 절대다수는 일베로 대표되는 진영과 한참 멀리 떨어져 있을 겁니다. 얄팍한 조롱의 쾌감만을 위해 데스크가 그런 일을 했다는 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지나치게 비합리적인 일입니다. 구독자들 대다수를 배반하여 수익을 줄이는 선택을 일부러 했을까요? 데스크가 논조를 반대쪽 극단으로 돌린다면 그쪽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이미 그 극단에는 수많은 언론들이 있는걸요. 해당 기사가 인용한 원문에 ‘defying gravity’라는 관용어가 실제로 사용되기도 하고요. 이런 실수가 대단한 악의로 기획되었다기보다는, 그냥 순간적인 집중이 분산되어 생긴 문제 아닐까요.

물론 그 헤드라인 때문에 자극을 받은 구독자들이 있으니,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순 없겠죠. 그 점까지 고려해보면, 데스크에게는 사려 깊지 못했다거나 게을렀다는 정도의 비판이 적절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일베로 매도하는 건 소모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지적을 받고 한겨레신문은 지면의 제목을 수정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기사의 제목을 아직까지 수정하지 않은 점은 좀 아쉽네요(2021년 5월 26일, 오후 2시 18분 기준).



심너울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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