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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외면하는 통계들

입력
2021.06.25 18:00
수정
2021.06.25 18:19
22면

임기 말? 과욕이 부른 2003년 카드사태
북한 인권 외면한 문 대통령 대북 접근
전략 없는 치적 쌓기는? 국력 낭비 우려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임기 말 대북 접근을 주요 이슈로 다룬 타임지의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터뷰 기사. 타임 홈페이지 캡처

임기 말 대북 접근을 주요 이슈로 다룬 타임지의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터뷰 기사. 타임 홈페이지 캡처

압축성장기 훨씬 뒤인 2000년대에도 한국이 세계 주요국을 경제지표로 압도한 적이 있다.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인 2002년이다. 성장률이 7.4%(OECD 기준)였다. 일본(0.1%)의 70배, 미국(1.7%)의 4배였고, 중국(9.1%)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당시 경제관료들은 “전 세계가 불황인데, 우리만 우등생”이라고 자랑했다. 기적의 카드는 ‘신용카드’였다. 1억 장 이상의 신용카드가 남발됐다. “내 임기 중 국민들이 IMF 극복의 결과를 누렸으면 좋겠다”는 당시 대통령의 의중에 맞춰 신용카드 규제가 풀렸다. 결과는 LG카드의 몰락으로 상징되는 2003년 카드사태로 돌아왔다.

문재인 정부도 임기 말이다. 가까스로 코로나19를 저지하고 국제기준에 뒤졌던 백신 접종도 탄탄한 의료 인프라 덕분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지난 4년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안전사회, 일자리, 부동산, 소득주도성장 등 국민이 체감하는 공약 중 지켜진 건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다른 얘기를 한다. 집값 통계가 그렇고, 코로나19 경제극복도 유리한 것만 보여주려 한다. 국토부는 2017년 5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17%라고 설명했지만 KB국민은행 기준으로는 75%, 며칠 전 한 시민단체 조사에서는 79% 올랐다. 시민단체는 국토부에 대해 “상승률이 3∼4배나 낮은 거짓 통계 자료”라면서 통계 왜곡의 시정까지 촉구했다.

경제위기 극복도 자화자찬이 심하다. 올해 4% 가까운 성장을 이룬다고 자랑하지만, 그 과정에서 늘어난 나라 빚은 얘기하지 않는다. 가끔 부채 얘기가 나오면, 빚이 크게 늘어난 국가와만 비교한다. 대만이나 이스라엘 수치는 외면한다. 대만은 지난해(3.1%ㆍIMF 기준)와 올해(4.74%) 우리보다 성장률이 더 높지만,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019년 32.6%에서 2023년 32.5%로 오히려 줄어들 전망이다. 우리는 42.2%에서 53.1%로 10%포인트 이상 늘어난다는 게 IMF 예측이다. 한국과 성장률이 비슷한 이스라엘의 증가율도 6%포인트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가 외면하는 가장 심각한 통계는 따로 있다. 북한 인권통계다. 기독교에 대한 탄압 수준을 측정하는 월드워치리스트 1위,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경제자유지수는 178개국 가운데 178위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미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을 ‘솔직한 사람’ ‘후세대를 걱정하는 지도자’라고 치켜세웠다. 문 대통령의 대북 접근을 소개하면서도, 타임은 냉정하고 야박한 평가를 함께 붙였다. 남은 임기 중 백신으로 남북관계 돌파구를 찾으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진정한 치적(true legacy)은 ‘아무리 해도 이 문제(북핵문제 혹은 남북관계)는 풀지 못한다’는 우울한 깨달음(grim realization)이 될 수도 있다고 적었다.

‘응답 없는 김정은을 향한 문 대통령의 열정을 지지한 덕분에 바이든 정권이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대중 압박에의 동참 등을 얻어냈다’는 타임의 평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 대통령이 좀 더 유연했다면 ‘삼성 현대차 등의 400억 달러 투자를 100만 회 얀센 백신과 바꾼 게 전부’라는 비난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 저자세’ 비난이 나올 때마다 남북관계 특수성을 내세운다. 하지만 특수상황을 핑계로 보편적 인권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건 문명세계의 기본 윤리다.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인정했듯, 문 대통령 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다. 전략적 판단 대신 소신에 바탕을 둔 치적 쌓기 대북 접근은 국력 낭비 위험만 높일 뿐이다.

조철환 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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