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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을 용기, 낳지 않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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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까진’ 여자애들이라서가 아니었다. 피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평범한 성교육을 받고 자라 평범한 남자친구를 사귄 내 친구들에게도 그 일은 일어났다. 아이를 원치 않았던 딩크족 부부에게도, 이미 자녀가 여럿인 중년 여성에게도 일어났다. 단지 충분히 말해지지 못했을 뿐이다. 그걸 죄악시한 사회가 입을 틀어막았으니까. 그러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 5명 중 1명이 이 일을 경험한다. 임신중절 얘기다.
그러니 문학과사회 여름호에 실린 천희란 작가의 단편소설 ‘기울어진 마음’의 두 여성 인물 ‘승은’과 ‘혜원’이 임신 중절에 대한 고민을 매개로 연결되는 설정은 전혀 이례적이지 않다.
혜원은 승은의 조카인 ‘기호’의 여자친구다. 승은은 나이 많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기호의 부모를 대신해 기호의 엄마 역할을 해왔다. 학업, 진로, 교우관계 심지어 연애에 관해서도 기호는 승은과 상의했다. 그런 기호가 학업을 마치기도 전에, 그것도 임신 때문에 결혼하겠다고 승은에게 통보해온다.
여자친구가 임신했다는 기호의 말에 정작 승은의 걱정이 가 닿은 것은 “정말 딱 한 번이었어”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기호가 아니라, 기호의 아이를 밴 혜원이다. 왜냐하면 승은 역시 예상치 못한 임신을 했었고, 그 아이를 지운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앞으로 펼쳐질 다른 삶을 포기하고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게 당시 승은의 생각이었다. 그랬기에 승은은 혜원에게 “네가 잃어야 하는 게 너무 커”라고 조언을 건넨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임신이라는 사건 앞에서 승은과 혜원의 생각은 달랐다. 혜원은 “요즘 같은 세상에선 멍청하고 바보 같은 짓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아서 같이 키우는 일이라면 보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왜 혜원 앞에서는 결혼이나 출산 같은 일도 그 아이의 꿈이 될 수 있다는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걸까(…) 승은은 어딘지 모르게 자신이 기만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혜원에게 어쩌면 지금의 결정도 너에게는 꿈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낳거나 낳지 않거나, 어느 쪽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에, 나와 다른 선택을 내린 여성을 향해 건네야 할 것은 그 선택을 향한 비난이 아니라 도움의 손길이다. 혜원은 승은과 같거나, 같지 않은 선택을 내린다. 낳거나, 낳지 않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렴.” 결국 승은이 혜원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였다.
얼마 전 양창모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한국일보에 기고한 글(낙태를 거부한 그가 마지막 힘을 다해 쓴 두 글자는 '아기'였다)의 한 대목을 함께 읽고 싶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 낙태에 대한 반대로 곧바로 이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낙태를 찬성하는 이들에게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도 옳지 않다. 무엇보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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