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이 감춘 2차대전의 분수령

입력
2021.06.2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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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 바그라티온 작전

2차대전 구소련의 독일 반격작전인 '바그라티온 작전' 참전 군인들. 1944년 7월 벨로루시 폴라츠크. thereaderwiki.com

2차대전 구소련의 독일 반격작전인 '바그라티온 작전' 참전 군인들. 1944년 7월 벨로루시 폴라츠크. thereaderwiki.com

케르크 철수작전이 마무리된 1940년 6월 4일부터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까지 만 4년간 유럽은 나치 독일에 장악당한 상태였고, 그 기간 2차대전은 사실상 독일과 소련의 동부전선 전쟁이었다.

유럽을 움켜쥔 나치는 독·소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을 침공했다. 1941년 6월 22일, 대포와 공군 폭격과 함께 시작된 300여만 명 독일군과 추축군(樞軸軍)은 특유의 전격전으로 여름 백야의 땅을 거침없이 유린하기 시작했다. '바르바로사 작전'이었다. 그 파죽지세를 꺾은 건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만은 아니었다. 만 3년을 봉쇄 상태로 버틴 레닌그라드의 영웅적 저항, 199일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승리. 남북 600㎞에 이르는 동부 전선은 히틀러의 예상과 달리 장기 교착상태에 빠졌고, 주력군은 발이 묶였다. 1942년 동부전선 독일군은 북부·중부·남부 집단군 260여 개 정예 사단이 포진한 반면, 서부전선에는 59개 사단이 경비·예비 병력처럼 배치돼 있었다. 노르망디 상륙 당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부전선이 뜨거워지면서 독일은 주력군 일부를 서쪽으로 빼야 했다. 그 타이밍에 맞춰 1944년 6월 22일, 소련군의 대반격이 시작됐다. 바르바로사 작전 D데이와 같은 날을 잡아, 보란 듯 펼친 '바그라티온 작전'이었다. 소련군은 2개월 만에 독일 최정예 중부집단군을 거의 궤멸시키며 폴란드 바르샤바 목전까지 나치를 밀어붙였다.

2차대전 연합국 사망자(실종 포함)는 민간인 포함 5,000만~7,000만 명. 그중 거의 절반이 구소련 희생자였다. 본토 지상전을 치르지 않은 미국과 영국의 희생자가 각각 50만 명 미만이었던 반면, 구소련은 최소 2,400만 명(군인 약 1,100만 명)이 희생됐다. 냉전 이데올로기 탓에 노르망디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바그라티온 작전 역시 2차대전의 결정적 분수령이었고, 그 작전에서만 소련은 약 77만 명의 사상자(전사·실종 18만여 명)를 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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