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경쟁', 진짜 한번 도입한다면

입력
2021.06.18 18:30
수정
2021.06.18 19:0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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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방거래위원장에 32세 리나 칸 임명?
독점 규제론? 패러다임 바꿔 빅테크 규제
공정 경쟁,? 급진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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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된 리나 칸. 컬럼비아대 홈페이지 캡처

미국 연방거래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된 리나 칸. 컬럼비아대 홈페이지 캡처

서른여섯 살의 보수당 대표가 연일 화제를 모으는 사이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파격적인 소식이 날아왔다. 파키스탄 이민 가정 출신의 서른두 살 리나 칸이 우리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에 임명됐다는 것이다. 이 기관 사상 최연소 위원장이면서 역대 가장 급진적 인사라는 점에서 미국에서도 기대와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서른두 살, 파키스탄 이민 여성, 급진 성향. 이런 배경을 가진 인사가 어떻게 미국 상원 인준 절차를 통과했을까. 외신을 훑어보니 조 바이든 대통령의 노회한 인사 작전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칸을 위원장으로 지명할 것이란 사실을 상원에 알리지 않은 채 FTC 위원으로만 인준 절차를 밟았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위원장 지명을 상원에 미리 통보하는 게 관례이나, 바이든 대통령이 인준안이 통과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이런 수법을 쓰면서 상원을 속인 것 같다고 전했다.

그렇더라도 FTC 위원 인준만 봐도 칸의 파격적 발탁에는 여야를 불문한 어떤 시대적 우려가 반영돼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마존,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초거대 테크 기업이 시장을 과도하게 지배해 너무 큰 이익을 얻고 있고 정치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정서가 저변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칸은 바로 이런 공감대 속에서 자신만의 실력으로 기회를 잡았다. 그는 예일대 로스쿨에 다니던 2017년 예일대 저널에 게재한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이란 두툼한 논문으로 반독점 전문가 그룹에서 일약 유명 인사로 떠올랐다. 독점 규제의 기존 패러다임을 바꾸며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그간 독점의 해악은 독점 기업이 가격을 높이고 생산량을 통제해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 이해됐다. 바꿔 말하면, 가격을 낮추고 생산량이 늘면 어떤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게 주류 이론으로 통한 ‘소비자 복지에 근거한 독점 규제론'이다. 예컨대 아마존의 경우 아무리 시장을 지배하더라도 저렴한 가격과 빠른 서비스로 소비자 복지를 증진시키기 때문에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단기적 가격 효과만으로 소비자 복지를 평가할 수 없으며 상품의 질과 다양성, 창의성 등 장기적 소비자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칸의 주장이다. 경쟁이 없어지면 장기적인 소비자 이익이 해악을 입기 때문에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나 시장 지배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독점 규제의 패러다임을 소비자 복지에서 경쟁과 시장 구조로 바꾼 것이다.

이 같은 패러다임 전환이 빅 테크 기업의 분리와 해체까지 겨냥한다는 점에서 급진적이지만, 사실 칸의 입장이 경쟁 자체를 중시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초기 정신과 맞닿아 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의 핵심도 경쟁을 제한하는 독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었다.

칸의 입장은 따지고 보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평소 제기해온 ‘공정한 경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의 시대에선 공정한 경쟁을 관철시키려면 급진적인 개혁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운동장 자체를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선 거대한 공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정한 경쟁이란 개념을 뿌리까지 파고들면 급진적인 사회 개혁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준석 대표에게 기대하는 것은 ‘따릉이 출근’ 같은 이미지가 아니다. 그의 말대로 정말 실력주의와 공정한 경쟁이 사회 전반에 일관되게 관철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 경우 우리 사회는 거대한 지각 변동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 이 대표가 실로 이를 감당할 실력이 있을까. 그게 의문이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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