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바람과 청년정치

입력
2021.06.04 18:00
수정
2021.06.04 18:19
22면
구독

김영삼·김대중 이후 잊힌 청년정치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서 모처럼 부활
여야 떠나 청년정치 활성화 고민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제주를 방문한 국민의힘 이준석 당대표 후보가 4일 제주시 연삼로 국민의힘 제주도 당사에서 당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제주를 방문한 국민의힘 이준석 당대표 후보가 4일 제주시 연삼로 국민의힘 제주도 당사에서 당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한국 현대 정치를 청년정치라는 문맥에서 볼 때 기억해야 할 인물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한참 배워야 할 어린 나이에 무슨 국회의원이냐"라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마해 고향 거제에서 당선될 때 그의 나이는 26세였다. 아직도 깨지지 않는 역대 최연소 의원 기록이다. 그보다 더 그를 청년 아닌 청년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것은 1971년 대선을 앞두고 출마 선언하며 내세운 '40대 기수론'이다.

당시 신민당 지도부를 비판하며 40대가 대통령이어야 할 이유로 그는 두 가지를 들었다. 대선 얼마 후 치러질 총선에서 상대할 여당이 "야당의 평균 연령보다 훨씬 젊다"는 점과 그동안 야당 지도자들의 "노쇠에서 온 신체상의 장애"로 두 차례 평화적 정권교체가 좌절된 과거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젊은 사람이 정치해야 한다는 현실적이고 담백한 김영삼다운 논리는 40대 김대중, 이철승의 경선 참여로 꽃을 피웠다.

그러나 불행히도 김영삼은 신민당 경선에서 김대중에게 졌고 김대중은 박정희에게 94만 표 차이로 패배했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나 만약 독재정권의 부정선거가 아니어서 김대중이 당선되고 김영삼이 꿈꾼 대로 그다음 대권을 쥐었더라면 우리 역사는 지금과 또 얼마나 다른 길을 걸었을지 생각만으로도 흥미롭다.

하지만 그때 이후 한국 정치에서 청년은 그다지 주목받지도 빛을 발하지도 못했다. 역대 두 번째로 초선이 많은 21대 국회에서 20·30대 의원은 13명으로 고작 4%에 불과하다. 신인에게서 낡은 정치 지형에 균열을 내보겠다는 패기마저 찾기 어려워진 현실을 3일 여당 초선 의원과 대통령 간담회 풍경이 대변한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부는 이준석 바람에 주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능력주의에 기반해 형식적인 공정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그의 가치는 바람직하지 않을 뿐더러 위험할 수도 있다. 모든 할당제를 폐지하자면서 자신을 정치로 영입한 "박근혜에게 감사한다"는 것은 자기모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은 보수라는 링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수용가능성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다른 후보들이 지금까지 여당의 실패에 따른 반사이익 외에 어떤 가능성도 보여주지 못한 그 당의 구태를 경선에서 재확인시켜주고 있다는 점이 이준석 바람을 태풍으로 키운다. 주장의 시비를 떠나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에 공명하는 그를 향해 "설익었다"고 애 취급이나 하려 들고, "계파 정치"라는 네거티브 공격에 여념이 없다. '돈과 권력을 중시'하는 '50대 후반~70대 꼰대 남성'이라는 정당 이미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러나 정작 이준석 현상이 더 두려운 건 '내로남불·무능한 4050 남성'으로 각인된 더불어민주당일 것이다. 앞서 치러진 당권 경쟁도, 오래전부터 물망에 올라 있는 대선 후보들 모두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공개적으로 이준석 바람을 주목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런 변화에 긴장한다는 의미와 다름없다.

민주당은 보수 정당의 변화를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가 아니다. 청년들을 열심히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일이 급하겠지만 이 또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닐 수 있다. 새로운 인물, 새로운 정치에 대한 바람이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진보를 떠나 우리 정치가 길게 보며 지금과 다른 청년정치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정의당이 도입한 것처럼 독일 정당에 뿌리내린 청년조직 활성화나 청년들이 지방의회에 더 활발하게 진출할 길을 터서 도약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다. 4차 혁명이라는 변혁의 시대에 모처럼 불어온 '청년정치 바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키워 내 여야 모두 '노쇠'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기 바란다.

김범수 논설위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