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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먹인 언니들과 육개장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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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서울은 사 먹을 수 없는 게 없는 도시였다. 단돈 2,000원이면 간단하게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컵밥부터 메뉴 목록이 끝이 없던 김밥천국, 영양성분을 고루 안배한 편의점 도시락까지. “밥 잘 챙겨먹어라”는 고향 부모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배 곯을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종종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몰려왔다. 식욕 탓이 아니었다. 한 스푼의 걱정, 한 스푼의 사랑이 담긴 음식을 온전히 나만을 위해 차려 줄 사람이 이 도시에 없다는 깨달음에서 오는 허기였다. 내 생일에 토란대가 흐물거릴 때까지 뭉근하게 끓인 오리탕을 만들어줄 사람은 세상에 하나뿐이니까.
웹진 비유 6월호에 실린 안윤의 ‘달밤’을 읽으며, 그래서 나는 자꾸만 허기가 졌다.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육개장을 끓이는 마음을 생각하다가 덩달아 그리운 사람들이 함께 떠올라버려서.
‘나’는 생일을 맞은 소애를 위해 육개장을 끓이는 중이다. 소애와 내가 가족이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저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함께 했을 뿐이다. 하지만 시를 쓰던 나와, 노래를 만들고 부르던 소애는 자연스레 이 도시에서 서로에게 온기를 나눠주는 사이가 됐다.
온갖 음식이 한 시간 내에 집 앞까지 배달되는 대한민국에서 직접 만든 음식으로 생일상을 차리는 것은 번거롭고 또 비싼 일이다. 그래도 그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하고서라도 직접 한 상 차려주고 싶은 마음이 애정의 정체다. 육개장, 미역국, 밥, 시금치 무침, 콩나물 무침, 무나물, 애호박전, 두부 부침, 찹쌀떡, 절편, 딸기, 그리고 냉동실에서 막 꺼낸 차가운 소주까지. 소애와 나는 흡사 잔칫상 같은 생일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는다. “축하해, 태어난 거, 살아온 거, 살아있는 거, 다.”
사실 이날 상에는 수저 한 벌이 더 놓여 있다. 내가 소애를 먹이듯, 나를 먹였던 은주 언니를 위한 수저다.
“언니는 희곡 써서 받은 돈, 시나리오 써서 받은 돈, 다른 일로 번 돈 말고 글 써서 번 돈이 생기면 꼭 나한테 밥을 사 줬어요. 일본식 돈가스 정식이나 양념갈비, 해물탕 같은 걸 사 주면서 늘 그랬잖아요. 아프지 마. 안 아픈 게 최고야. 요즘 내가 소애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그거예요. 아프지 마. 안 아픈 게 최고야.”
소설은 언니가 내게 준 마음을 내가 다시 소애에게 나눠주는, 서로를 잘 먹이는 것으로 한 시절을 버틸 힘을 나눠가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후기에 이렇게 덧붙였다. “밥을 사 먹이며 아프지 말라고 말해주던 언니들이 있다. 지금 내 모양의 상당 부분을 빚어 준 언니들. 이제는 나도 누군가의 언니가 되어서 언니라고 불린다” 돌이켜보면 내게도 그런 언니들이 있었다. 월급날이면 꼭 불러내 비싸고 좋은 것들을 사 먹이던 언니들. 그 마음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 지금의 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맛있는 밥 한끼를 산다면, 그건 모두 언니들에게 받은 것을 갚는 일일 뿐이다. 이제 나도 이 말을 돌려줄 때다. 축하해, 태어난 거, 살아온 거. 아프지 마, 안 아픈 게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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