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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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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의 연설은 전설이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란 구절이 담긴, 1863년 11월 펜실베이니아주 북군 전사자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행한 2분여의 짧은 '게티즈버그 연설'이 그렇고, 두 차례 대통령 취임식 연설도 그렇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인 1858년 6월 일리노이 주의회에서 했던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수락 연설(House Divided Speech)도 유명하다. 상대 후보였던 현역 상원의원 스티븐 더글러스(민주)가 입법한, 준주(準州) 개척자들에게 노예제 찬반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게 한 '캔자스-네브래스카 법(1854)' 때문에 이른바 '피의 캔자스 사태'를 빚던 무렵이었다. 그는 "쪼개진 집은 온전히 설 수 없다"며 "나는 이 정부가 절반의 노예와 절반의 자유민으로 영원히 지탱될 수는 없다고 믿는다"고 역설했다. 그는 낙선했지만, 선거기간 당 안팎에 심은 강렬한 패기와 '노예제 폐지'의 의지, 무엇보다 연설의 힘 덕에 2년 뒤 대통령 후보가 됐다.
앞서 1832년 일리노이 주의회 선거에서 낙선하고, 1834년 주하원의원을 거쳐 1846년 연방 하원의원이 된 무명의 그가 거물 현역 상원의원의 상대로 지명된 배경에도 그의 연설이 있었다. 1856년 5월 29일, 일리노이주 블루밍턴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행한 이른바 '사라진 연설(Lost Speech)'이었다.
더글러스의 '악법'에 대한 그의 격렬한 성토와 노예 해방의 호소가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 모두 넋을 잃어 펜을 놓고 듣는 바람에 인용부호로 옮길 수 있는 단 한 구절도 기록되지 않았다는, 그래서 '사라진 연설'이 됐다는 전설. 현장에 있던 이들이 기억 등으로 복원한 여러 버전이 있지만, 정본은 어디에도 없고, 원고 자체가 사라진 배경을 두고도 '워낙 어조가 강해서' 그해 대선과 연방 유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의도적으로 폐기했으리라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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