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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를 몰랐다

입력
2021.05.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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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 사라 엠마 에드먼즈의 모험

사라 에드먼즈의 자서전 '북군의 여성 스파이' 표지. amazon.com

사라 에드먼즈의 자서전 '북군의 여성 스파이' 표지. amazon.com


캐나다 뉴브런즈윅(New Brunswick) 소녀 사라 에드먼즈(Sarah Emma Edmonds, 1841~1898)는 동화(Fanny Campbell, the Famale Pirate Captain) 속 주인공인 남장 여해적을 동경하며 성장했다. 아들을 바랐던 농부 아버지는 툭하면 그를 매질했고, 사내애처럼 밭일과 총질을 익히게 했다.

아버지의 강요로 나이 든 남자와 결혼해야 할 처지에 몰린 15세의 사라는 어머니 도움을 받아 단발을 하고 얼굴에 숯검정을 묻힌 뒤 남장을 한 채 가출했다. 먼 마을 지인의 집에서 일을 거들며 지내던 중 아버지에게 발각되자 그는 아예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피신했다. 남장은 여러모로 편하고 안전했다. 그는 프랭크 톰슨(Frank Thompson)이란 가명으로, 북부 코네티컷과 미시건 등지에서 성경책 외판원으로 일했다.

20세였던 1861년 내전(남북전쟁)이 시작됐고, '톰슨'은 자원 입대해 미시건 자원보병연대 군복을 입고 디트로이트 거리를 행진했다. 첫 보직은 위생병과 우편병. '해적'을 꿈꾸던 그에게 그 보직은 마뜩잖았다. 그는 또래 남자 신병들보다 사격술에도 더 능하고 야전 생활에도 익숙했다. 내전 초기 북군이 버지니아 '불런(Bull Run)' 전투에서 참담한 패배를 겪자 그는 스파이에 자원했다. 남군 진영에 위장 침투해 군사·작전 정보를 수집하는 위험한 임무였다.

훗날 자서전에 밝힌 스파이로서의 그의 활약은, 역사가들은 미심쩍게 여긴다지만, 실로 '스펙터컬'했다. 얼굴에 질산은을 발라 흑인 노예로 변장도 하고, 때로는 아일랜드 출신 여성으로, 군영의 외판원으로도 위장해 남군 배치도 등을 그려 북군 사령부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확실한 건 남·북군 모두 그의 생물학적 성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

그는 1864년 자서전으로 큰 성공을 거뒀고, 결혼해 텍사스에 정착한 뒤 세 아이를 낳았고, 군인연금을 받았고, 북군참전군인회 회원 자격을 인정받았고, 텍사스 휴스턴 군인묘지에 묻혔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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