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여성이기 앞서 장애인이란 시선… 연애 쉽지 않더군요"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장애인이 우리 사회의 의젓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정책적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현실에서 이들의 불안한 삶을 지탱하는 건 가족의 안간힘이다. 국내 장애인 규모가 등록된 인원만 해도 262만 명이니, 이들을 돌보는 가족은 못해도 1,000만 명을 헤아릴 터이다. 장애인 가족의 짐을 속히 덜어주는 것만큼 시급한 국가적 과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현대인에게 '연애'란 늘상 골칫거리다. 토라진 상대의 마음을 풀어주려 며칠을 매달려야 할 때도,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도 "만나자"고 하면 쪼르르 달려나가야 할 때도 있다. "오늘은 무슨 옷을 입어야 하나" 고민도 해야 하고, 주말 데이트 한 번에 주머니가 텅텅 비기도 한다. 정신, 금전, 체력 어느 면에서도 연애는 힘들다.
그럼에도 우리는 연애에 목숨을 건다. 실연한 친구에게 "연애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 않냐"며 위로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연애는 인생의 전부'라는 반증이다.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연애는 특별하다. 미묘하고도 복잡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연애를 시도하는 것조차 사치다. 사람을 만날 기회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사람들.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장 숨기고 싶은 비밀을 드러내야 하는 사람들. 바로 장애인 이야기다.
배복주(50) 정의당 부대표는 어렸을 적 소아마비로 지체장애를 앓았고,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온 장애인이다. 그에게도 연애는 늘 어려운 것이었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정의당 당사 인근 카페에서 배 부대표를 만나 장애인으로서 여성으로서 그가 생각하는 연애에 대해 물었다.
배 부대표는 소개팅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그는 "대학생 때 선배가 주선한 소개팅에서 첫 연애 상대를 만났다"라며 "당연히 상대도 내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장애를 드러내는 것에 부담은 없었을까. 배 부대표는 "경증이면 모르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조금만 걷거나 서 있어도 상대가 눈치를 챈다"며 "첫 만남 때부터 속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당당한 그도 막상 연애에 돌입하니 쉽지 않았다. 장애인과의 연애도, 비장애인과의 연애도 각각 장단점이 있었다. 배 부대표는 "인간 감정은 천차만별이라 제가 좋아했고 연애했던 사람 중에는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 있었다"면서도 "아무래도 같은 장애인과 연애를 했을 때 '부담이 없다' '동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질감도 느꼈고 기도 죽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20대 초반 시절엔 장애인과의 연애를 꺼렸다고 한다. 배 부대표는 "처음에는 장애인과 연애하고 싶지 않았다"며 "끼리끼리 만난다는 시선, 사회적 낙인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연애시장에서 다른 여성과 경쟁할 수 없는 몸을 가지고 '무성의 존재'가 되기는 싫었다"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
특히 비장애인과의 연애는 난관의 연속이었다. 걷기, 옷 입기, 표정, 말하기 등 하나하나마다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상대의 감정에 맞춰주느라 엄청 예민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것이 연애였는지 활동보조였는지 모를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장애인을 만나는 상대의 '손해'를 메워줘야 한다는 생각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배 부대표는 비장애인을 만나면서 '내가 아닌 나'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우리는 여성도 남성도 아닌 장애인이었고, 여성 중에서도 '주변화된 여성'이었다"며 "극복해야 할 장벽이 남들보다 하나 더 많았던 셈"이라고 말했다. "연애를 하기 위해 순종적인 여성이 되는 전략밖에는 선택지가 없었어요. 나 또한 그랬어요. '어떻게 나를 상품화해야 할까'에 골몰했고, 순종적인 여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연기했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연애에서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우열 관계', 이를 고깝게 보는 사회적 시선도 불편했다. 배 부대표는 "내가 연애하다가 불안해져 미래를 계획하고 결혼 이야기를 꺼내면 상대가 돌변했다"며 일화를 들려줬다. "한번은 상대방 쪽 어머니가 따로 불러 만난 적이 있어요. 그분은 나를 이름이 아닌 '장애자'라고 부르면서, 대뜸 '너 같은 장애자가 아니 어떻게 내 아들을 만났냐'고 물었어요. 눈물이 났죠. 그걸로 끝이었어요. 남자도 부모님 반대를 극복할 만큼 적극적으로 날 사랑하진 않았거든요." 그가 웃으면서 말한 바에 따르면 "결혼과 연애가 다르다는 현실에 눈을 뜬" 경험이었다.
장애인과의 연애 또한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배 부대표는 "장애인 3명과 사귀어 봤는데 대부분 좋게 끝나진 않았다"며 "그분들은 모두 비장애인과 결혼했다"고 했다. "이상하게 장애 여성은 결혼을 안 하거나 장애인 남성과 결혼하는데, 장애 남성은 굉장히 많은 비율이 비장애인 여성이랑 결혼해요. 그 이유에 대해 당시에도 많이 고민했는데, 결국 남성은 '능력'이고 여성은 '외모'라서였을까요."
배 부대표는 스스로를 "착하지 않고 못된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연기해야 했던 '여성적인 배복주'는 늘 어색했다. 그는 "여성적인 모습은 본래의 나와는 맞지 않았다"며 "항상 나서고 싶고 리더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그가 '진짜 나'를 찾은 건 대학 장애인동아리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부터였다. 그는 "동아리에서 처음 해방감을 느꼈다"며 "항상 비장애인과 경쟁하면서 좌절감을 느꼈는데, 이곳에선 서로 동등하다는 생각이 들어 위축됐던 자신이 확 풀어졌다"고 말했다.
배 부대표는 결국 연애 끝에 결혼했다. 장애인 인권 관련 운동을 하던 중 지금의 배우자를 만났다고 한다. 둘 다 상처가 쌓여 있었고 결혼 생각도 없었지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동반자'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서로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제가 먼저 좋아했다. 자신의 뜻이 명확한 사람이어서 좋았다"고 했다.
불완전한 두 존재가 만나 닿을 수 없는 완벽함을 좇는 게 사랑이라면, 장애인의 연애도 비장애인의 연애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배 부대표의 지론이다. 알랭 드 보통은 저서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랑이란 우리의 약점과 불균형을 바로잡아줄 것 같은 연인의 자질들에 대한 감탄을 뜻한다. 사랑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
"지금도 전 그 사람에게 매일 연애하라고 해요. 자유롭게 살기를, 그 자유로움이 활발한 활동으로 연결되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대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서로에게 가장 먼저 얘기하자고 했어요. 감각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이 다시 시작된다면 마음 가는 대로 따라가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