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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 총아' 평행 이론? 28년 전 아버지와 똑같이 죽은 아들 

입력
2021.05.21 05:0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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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호주 무라토레 父子의 비극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 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청과물 도매 시장 상인 알폰소 무라토레는 1992년 8월 4일 새벽 햄프턴 자택 앞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다. 28년 전 자신의 아버지 빈첸초 무라토레가 살해됐을 때와 흡사한 상황이었다. 시장을 장악한 칼라브리아 마피아가 유력한 배후로 지목됐지만 증거가 없어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알폰소 무라토레 피살 현장. 헤럴드선 캡처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청과물 도매 시장 상인 알폰소 무라토레는 1992년 8월 4일 새벽 햄프턴 자택 앞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다. 28년 전 자신의 아버지 빈첸초 무라토레가 살해됐을 때와 흡사한 상황이었다. 시장을 장악한 칼라브리아 마피아가 유력한 배후로 지목됐지만 증거가 없어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알폰소 무라토레 피살 현장. 헤럴드선 캡처

피하지 못할 운명이었을까. 잘나가던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청과물 도매 시장 상인 알폰소 무라토레의 최후는 ‘평행 이론’의 실현이라 해도 될 법할 정도로 28년 전 아버지 빈첸초의 그것과 똑같았다. 대를 이어 시장에서 청과물을 판 부자(父子)는 둘 다 일터로 가려 심야(오전 1~3시)에 집을 나서다 엽총에 맞아 즉사했고, 유력한 배후로 멜버른에 정착한 이탈리아 마피아가 지목됐지만 결국 미제로 남았다. 2013년 3월 호주 일간 헤럴드선은 “전쟁이나 교통사고 아니고서야 아들이 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목숨을 잃는 게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 일이겠느냐”고 논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재연된 죽음이 드러낸 건 생명력이다. 비극의 주인공들은 마피아 권력의 핵심부에 있었다. 아버지는 조직의 2인자, 아들은 대부가 후계자로 낙점한 차기 리더였다. 하지만 끝내 영화(榮華)를 누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맛본 건 ‘쓴맛’이었다.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제물이나 거름이다. 바랐든 아니든, 저들의 희생이 시장에 드리운 그림자를 폭로했지만 그건 28년간 건재한 그림자였다.

모욕 혹은 배신

알폰소 무라토레(왼쪽)와 그의 내연녀 카렌 맨스필드. 해럴드선 캡처

알폰소 무라토레(왼쪽)와 그의 내연녀 카렌 맨스필드. 해럴드선 캡처

1992년 8월 4일 호주 빅토리아주(州) 멜버른 외곽 햄프턴. 오전 1시 40분쯤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청과물 판매상(商) 알폰소 무라토레(당시 39세)가 막 집을 나선 참이었다. 그를 배웅하고 잠을 청하던 내연녀 카렌 맨스필드(당시 37세)가 뛰쳐나왔다. 연인 알폰소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오른쪽 뺨을 바닥에 대고 차 옆에 누워 있었다. 맥박이 끊겼다. 카렌은 오열했지만 거리에는 다니는 이도 차도 없었다.

사실 예견된 일이었다. 알폰소는 늘 재킷에 22구경(0.22인치ㆍ5.6㎜) 자동 장전 권총을 넣고 다녔다. 카렌은 매일 밤 불면이었다. 동거를 시작할 때 이미 그들은 빅토리아 시장을 오랫동안 장악해 온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마피아 호주 지부 ‘아너드 소사이어티’(Honored Society)의 타깃이 됐다. 4년 전 세상을 떠난 이 조직 대부 리보리오 벤베누토의 딸 안젤라가 그의 아내이고 처남 프랭크가 조직의 보스였다.

그래도 허망했다. 총을 꺼낼 새도 없이 당한 기습이었다. 경호도 할 겸 늘 알폰소와 동행하던 카렌의 계부 론 레버는 총탄이 날아오기 직전 “잡았다”(Gotcha)는 외침을 들었다. 방한모로 얼굴을 전부 가린 괴한이었다. 엽총이었고 그가 다리를 맞기 직전 두 발이 알폰소의 왼쪽 머리와 팔뚝에 박혔다. 누가 봐도 마피아의 소행이었고, 프랭크가 배후였다. 하지만 사건 당일 경찰에 불려간 프랭크는 “누구인지 몰라도 잘 죽였다”며 능청을 떨고, 시장 사람들은 입을 닫았다. 다 알고 있으면서.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청과물 시장. 호주관광청 제공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청과물 시장. 호주관광청 제공

아버지 빈첸초가 죽던 1964년 1월 16일, 알폰소는 아버지를 보러 시장에 자주 가던 11살 소년이었다. 빈첸초는 시장 상인이면서 마피아 회계사였고 당시 대부 도메니코 이탈리아노가 신뢰하던 최측근이었다. 62년 이탈리아노와 서열 2위 안토니오 바르바라가 잇달아 사망하며 갑자기 ‘힘의 진공’ 상태가 만들어지자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가 벌어졌고 빈첸초도 여기에 휘말렸다. 이듬해 4월 라이벌이던 같은 이름의 빈첸초 안길레타를 죽였지만 권좌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9개월 만에 자신이 보복 대상이 됐고 28년 뒤 아들처럼 새벽에 시장으로 가다 엽총에 맞았다.

그 권력 다툼의 승자가 바로 알폰소의 장인 리보리오 벤베누토였다. 아버지를 여의고 고교를 졸업한 뒤 곧장 생업에 뛰어든 알폰소는 벤베누토 가문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살게 되고, 76년 2월 대부의 딸과 결혼까지 하기에 이른다. 23세 때였다. 아들 프랭크보다 사위 알폰소를 더 아꼈던 리보리오는 알폰소에게 자리를 넘겨주려 했고, 그걸 모를 리 없던 프랭크는 줄곧 매제를 질투했다고 한다. 경찰 얘기다.

1964년 1월 빈첸초 무라토레가 살해됐을 당시 호주 일간 헤럴드선 1면. 헤럴드선 캡처

1964년 1월 빈첸초 무라토레가 살해됐을 당시 호주 일간 헤럴드선 1면. 헤럴드선 캡처

88년 리보리오가 죽자마자 알폰소가 권력과 사업을 포기하고 처가를 등진 사건은 충격이었다. 알폰소에게는 ‘옛사랑’이 있었다. 16세에 만난 14세의 카렌과 10대 시절을 함께 보낸 알폰소는 결혼 생활을 접고 귀향한 카렌에게 빠져들었다. 하루에 25번씩 전화를 걸고 1주일에 3번씩 집에 들르고 차 트렁크를 과일로 채우고 비싼 꽃을 선물했다. 아내와 진작 틀어진 마당에 장인이 세상을 뜨자 미련도 없어졌다.

무모한 열정(사랑)은 다른 열정(분노)을 자극했다. 알폰소가 이탈을 감행하기 전부터 벤베누토가(家) 형제들은 경고했다. “놀아도 좋지만 현관문이 어디인지는 기억하라”는 거였다. 당시 이탈리아 공동체는 남성의 외도에 관대했다. 자유주의가 아니라 가부장 문화 영향이었다. 다만 아내와 함께 살 때까지만 그랬다. 내연녀에게 가는 건 처가에 대한 모욕이다. 심지어 상대도 유별났다. 마피아 대부 가문이었다.

28년 시차를 두고 같은 방식으로 살해된 무라토레 부자. 왼쪽 사진이 아버지 빈첸초, 오른쪽은 아들 알폰소. 헤럴드선 캡처

28년 시차를 두고 같은 방식으로 살해된 무라토레 부자. 왼쪽 사진이 아버지 빈첸초, 오른쪽은 아들 알폰소. 헤럴드선 캡처

하지만 결정적 대립은 이권을 놓고 냉정하게 벌어졌다. 알폰소는 아내를 떠난 뒤 마피아 그늘의 시장에서도 퇴출됐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그동안 알폰소는 사업에 두 번 실패했다. 시장에서 재기하고 싶었다. 시장밖에 없었다. 죽기 2주 전 비밀 회의에서 알폰소는 시장 최대 고객인 대형 유통업체 ‘콜스마이어’ 사람들을 만나, 지금보다 더 싼 값에 청과물을 납품할 테니 공조하자고 제안했다. 배신이었다.

이 자리에서 알폰소는 3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 온 마피아 상납 비리를 진술했다. 마피아는 뇌물을 먹인 콜스마이어 직원과 짜고 자기들이 돈을 뜯어내는 상인들의 제품만 공급되도록 시장과 유통업체 간 고리인 중간도매상에 압력을 넣는 수법을 썼다. 조직이 착복한 상납금은 유통 비용을 거쳐 소매 가격에 반영됐고, 소비자를 패자로 만들었다. 힘을 합쳐 이를 근절하고 거래를 트자는 게 알폰소의 제의였다.

‘판타지’는 없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빈센조'의 한 장면. tvN 제공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빈센조'의 한 장면. tvN 제공

사업이 위태로워지자 4년간 미뤄지던 처형이 2주 만에 집행됐고 배신자는 제거됐다. 결과적으로 폭로도 이뤄지지 않았다. 부패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누가 거기에 연루돼 있는지 모두가 알고 있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관건은 증거다. 본보기는 공포를 부르고 감히 아무도 허락되지 않은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은폐 덕에 어둠은 서식하고 마피아 안에서도 침묵은 핵심 규범이다. 28년 전 빈첸초 살해 사건의 경우 결국 무죄를 피하지는 못했지만 기소된 피고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알폰소 사건은 깔끔한 미제다. 증언도 증거도 없고 기소된 피의자도 없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빈센조’는 해피 엔딩이었다. 이탈리아 마피아 카사노 패밀리 대부가 총애한 입양아 출신 한국계 변호사 빈센조(빈첸초가 원음에 가깝다)는 정말 아버지 같은 대부가 죽고 자신을 시기하던 그의 아들이 권력을 승계하며 잠시 피신하지만 무능한 새 보스가 위기에 빠뜨린 조직을 구해내며 화려하게 복귀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판타지다. ‘은드란게타’로도 알려진 이탈리아 최대 조직 칼라브리아 마피아는 특히 가족을 표방하며 세계적 규모로 세력을 확장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의 1월 보도에 따르면 칼라브리아 마피아 보스 빈첸초 토르카치오는 5년간 페이스북 계정 ‘명예와 품격’을 굴리기도 했다. 이미지 포장을 위해서다.

알폰소가 피하지 못한 건 운명이 아니었다. 마피아 자장(磁場)의 강력한 인력이었다. 대를 이은 무라토레 부자의 비극이 잔혹하고 집요한 악행과 더불어 드러낸 마피아의 면모는 피해자와 조직원의 공포와 침묵을 자양분 삼는 그들의 질긴 목숨이었다.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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