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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존중의 정신 남기고 떠난 정진석 추기경

입력
2021.04.29 04:30
27면

정진석 추기경이 선종한 다음 날인 28일 오전 명동성당에서 열린 추모미사에 신자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고영권 기자

정진석 추기경이 선종한 다음 날인 28일 오전 명동성당에서 열린 추모미사에 신자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고영권 기자

정진석 추기경이 27일 밤 90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공학도를 꿈꾸다 6ㆍ25전쟁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은 그는 이후 모든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제의 길을 선택했다. 39세의 나이에 국내 최연소 주교로 선임됐고 2006년에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한국 천주교의 두 번째 추기경으로 임명되는 등 한국교회사를 이끈 산 증인이었다. 라틴어로 쓰인 교회법전을 6년간 번역해 한국어판을 남기는 등 평생 50권이 넘는 저서와 번역서를 남긴 교회법 전문가이기도 했다.

교회의 정치·사회 문제 참여에 대해 소극적이고 보수적이었다는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황우석 교수의 배아를 활용한 줄기세포 연구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서울대교구 내에 생명위원회를 만드는 등 생명 존중의 가치를 수호하는데 강력한 목소리를 냈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건전한 생명윤리에 대한 도전이 거세질수록 고인이 지키려 했던 생명 존중의 정신은 더욱 빛난다.

그가 한평생 보여준 나눔과 베풂의 가치 역시 소중하다. 청주교구장 시절 에어컨도 켜지 않고 18년 동안 바지 한 벌을 입었을 정도로 청빈했다. 고인의 생전 뜻에 따라 각막이 기증됐으며 통장에 남은 돈은 무료급식소와 장학회에 봉헌됐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이라는 사목 표어처럼 그의 일생은 다른 사람에 대한 헌신과 자기희생의 과정이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 이기주의와 배금주의가 팽배해져 가는 세태 속에서 ‘나만을 위해 살지 말라’고 했던 고인의 말과 행동은 길이길이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정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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