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명 목숨 앗아간 자리…"집값" 앞에 추모는 혐오가 되었다

입력
2021.04.29 04:30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2009년 용산참사·그리고 2014년 세월호 참사까지... 
흔적없이 사라진 참사의 현장, 눈물은 지워지지 않는다

[삼풍백화점 참사, 그후 26년]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의 모습(왼쪽). 붕괴 원인이 부실공사, 건설 비리 등으로 밝혀지며 전국적인 안전실태 조사가 이뤄졌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2021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참사현장 자리엔 37층짜리 주상복합거주 시설이 들어서 있다.


#1.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86-3’

“’참사 현장에 자그마한 추모비 하나라도 만들자’는 게 유족들 마지막 바람이었죠. 백화점 무너진 땅 팔아 유족들 보상금 줘야 하는데 그런 ‘혐오 시설’이 들어오면 그 땅을 누가 사겠냐는 게 시 당국 입장이었어요. 지금 그 자리요? 700세대짜리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섰죠. 그 흔한 비석 하나 없어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유가족 김문수(59)씨)

1995년 6월 29일, 지상 5층 지하 4층 규모의 대형백화점이 20초 만에 무너져 내렸던 그 자리엔 37층짜리 고층건물이 버티고 있다. 500여 명이 죽고, 900여 명이 다친 과거의 그날은 말끔히 지워져 있다.

[용산 참사, 그후 12년] 2009년, 용산참사 발생 직후의 모습. 경찰의 무리한 진압과정에서 5명의 철거민이 사망(경찰 1명 사망)했지만,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망루 화재 발생 원인과 경찰 진압 결정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오세훈 현 시장이 2021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과정에서 '용산참사의 본질은 임차인의 폭력적 저항'이라는 발언을 하며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참사가 일어났던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63-70번지에는 43층짜리 주상복합주거 시설이 들어서 있다.


#2.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63-70’

“참사 현장에 나무 다섯 그루를 심으려고 했어요. 경찰의 무리한 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철거민 다섯 분을 상징하는 거였죠. 추모공간을 마련하자고 했더니, 재개발 조합이 맹렬하게 반대를 했죠. ‘집값 떨어진다’, ‘매년 와서 데모할 것 아니냐’고요. 결국 현장엔 아무것도 안 남았습니다.”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

2009년 1월 20일, 재개발 반대 농성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5명의 철거민이 사망한 이곳엔 43층짜리 주상복합 빌딩이 세워졌다. 최고가가 60억을 호가하는 초호화 아파트다. 국가 폭력이 시민을 죽인 과거의 그날 역시 말끔히 지워져 있다.


비극의 현장이 시치미를 ‘뚝’ 떼기까지

'용산 참사' 현장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음영 효과를 이용해 겹쳐보았다. 참사 직후에는 사고 현장인 '남일당(왼쪽 작은 건물)' 주변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현수막이라도 걸려 있었지만, 12년여가 지난 지금 이곳엔 추모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대한민국의 참사현장은 천연덕스럽다. 비극의 현장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표정을 바꾸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10년 남짓. ‘잊지 않겠다’는 다짐은 잠시뿐, 모두가 있는 힘껏 ‘그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혈안이 된다.

추모 시설은 언제나 ‘혐오의 도마’에 오른다. ‘납골당은 너희 집 안방에나 만들라’는 비아냥이, ‘집값 떨어지면 책임질 거냐’는 힐난이 빗발친다. 날선 혐오를 피해 산세 깊은 외곽에, 도심 공원 한구석에 처박힌다. 참사 현장과 한참 동떨어진 곳에 비석 하나 세우고, 해마다 추모식 열어주면 그뿐. 그렇게 ‘집값’은 사수됐을지 몰라도 ‘기억하겠다는 다짐’은 영영 사라졌다.

2021년은 삼풍백화점 26주기, 대구지하철 참사 18주기, 용산참사 12주기, 그리고 세월호 참사 7주기가 되는 해다. 무엇 하나 제대로 진상이 규명된 바 없는 이 참사들은 과연 ‘잘 기억되고, 잘 기려지고’ 있을까.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참사 현장의 어제와 오늘을 둘러봤다.


화려한 마천루 사이… 흔적없이 사라진 용산의 기억

2009년 1월, 용산 철거민 농성현장 진압 작전 중 사망사고를 전해듣고 현장을 찾은 철거민들이 서로 붙잡고 오열하고 있다. 박서강 기자


2009년 용산 참사 당시, 희생자들의 장례를 치르기까지 장장 1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추모 시설 문제를 두고 재개발 조합과 희생자 가족들이 팽팽하게 대립했기 때문이다. ‘참사가 일어난 현장에 작게라도 추모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간소한 요구는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사람 죽어 간 곳인 걸 알리면, 누가 큰돈 내고 아파트 사고 싶겠냐’는 게 이유였다. 부동산 광풍 시대에 ‘집값’은 인간의 도리보다 우선하는 가치였다.

어렵사리 ‘추모 수목’을 심기 위한 작은 공간을 마련하는 것으로 합의가 됐지만, 금세 없던 일로 돌아갔다. 당장 첫 삽을 뜰 기세로 원주민들을 내쫓은 게 무색하게도 용산 참사 부지는 7년간 공터로 방치됐다. 재개발 인허가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 행위들이 뒤늦게 밝혀지고, 곧이어 긴 부동산 침체기가 닥친 탓이다. 황량한 공터 위에 시민들이 직접 만들어 붙인 ‘추모 현수막’만이 나부꼈다.

용산참사 발생 직후인 2009년 1월 27일. 남일당 건물 앞으로 추모 현수막들이 나부끼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용산참사 이후 7년 동안 방치되었던 남일당 공터 펜스에 한 시민이 적어 놓고 간 문구. "용산 학살의 진실이 밝혀질 때 이 땅은 죽음에서 벗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 제공

‘기억의 의지’는 이 현수막에서 그치고 말았다. 부지가 방치되는 7년 사이 시공사가 바뀌며, 추모 수목을 조성하는 계획은 아예 무산됐다. “그 대신 다른 공공 건물에 ‘용산 도시기억 전시관’을 만드는 쪽으로 합의가 되긴 했어요. 하지만 전시 내용을 만드는 과정에서 ‘화재’, ‘철거민의 죽음’ 등 참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단어들은 대부분 배제됐죠.” (이원호 사무국장) ‘이곳에서 누군가 희생됐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게 조합 측이 내민 원칙이었다.

용산참사 12주기를 맞은 2021년, 용산 참사 자리인 한강로 2가에 들어선 주상복합건물 앞에 작은 조경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곳이 참사 현장임을 알릴 수 있는 추모 수목이나 비석은 찾아볼 수 없다.


결과적으로 참사 현장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매매가가 평당 6,000만 원을 훌쩍 넘는 고가의 아파트만 유유히 서 있다. 욕망이 사람을 죽인 땅 위에, 욕망으로 지은 성채가 올라간 셈이다. 건물 입구 앞에 약 50㎡가량의 잔디밭이 조성됐지만 희생자를 기리는 수목은 뿌리내리지 못했다. ‘보도 블록 색깔을 달리해 이곳이 참사 현장임을 알리는 작은 표식을 남기자’는 소박한 제안마저도 ‘합의 사항 위반’이라며 끝내 거절당했다.



대구나 삼풍도 다르지 않아… 참고할 ‘전례’ 없는 세월호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현장. 이 사고로 천 명 이상의 종업원과 고객이 죽거나 다쳤다. 서른두 명의 사망자를 낸 성수대교 붕괴사건(1994년) 이후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발생한 대형 참사였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적 피해를 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21년 현재,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에 들어선 고층 주상복합 빌딩. 참사 이후 9년 만인 2004년에 완공됐다. 유가족들은 참사 현장에 작게라도 추모공간을 만들기를 원했지만 끝내 수용되지 못했다.

용산 이전에도 참사는 반복돼 왔으나 매번 까마득하게 잊혔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당시, 유가족들은 참사 현장에 추모공간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으나 단칼에 거절당했다. 참사가 일어난 날을 ‘국가 안전의 날’로 지정하자는 제안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뒤늦게 만든 위령탑은 엉뚱하게도 참사 현장에서 6km 이상 떨어져 있는 ‘양재 시민의 숲’ 안에 세워졌다. “거기 온갖 참사 추모 위령탑이 다 모여 있거든요. 그마저도 공원 남쪽 자락 구석에 있어서 찾기도 힘들죠. 유족들 요구에 못 이겨 구색 맞춰 하나 세우고 치워버린 꼴이죠.” (삼풍 백화점 유가족 김문수(59)씨)


1998년 양재 시민의 숲에 마련된 삼풍백화점 희생자 위령탑. 사고현장으로부터 6km 떨어져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구 지하철참사 희생자 유족들은 사고 이후 18년이 지나도록 ‘추모’라는 명칭조차 쓰지 못하고 있다. 사고 현장으로부터 16km 거리인 팔공산에 겨우 자리 잡은 추모 공간에는 ‘추모공원’ 대신 ‘대구 시민안전테마파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인근 주민들의 거센 반발 때문이었다. 18주기를 맞이한 올해 2월, 이제라도 참사를 기리기 위해 ‘2·18 기념공원’이란 이름을 붙이자는 안이 제시됐으나, 이 역시 지역 상인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현재 대구 중앙로역 지하 2층엔 참사 현장을 보존한 '기억의 공간'이 작게 마련돼 있다. 참사 이후 12년 만에 만들어진 공간이다.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가 발생했던 현장.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한 시민의 방화로 일어난 화재로 192명이 죽고 148명이 다쳤다. 화재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반대방향에서 오던 지하철로 불이 옮겨 붙으며 사고 규모가 커졌으며, 기관사가 중앙사령실에 화재사실을 신고하지 않은 채 대피하면서 희생자가 급증했다. 참사 후 수습과정에서는 '범죄 수준의 은폐 행위'가 벌어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당시 지하철역에 임시로 마련된 추모 공간. 2015년 중앙로역에 공식적인 추모공간이 마련되기까지 12년이 걸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월호 유가족들이 ‘참고할 만한 전례’가 없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전국을 샅샅이 뒤져도 소득이 없자 독일 베를린까지 답사했다. “우리나라 추모시설들은 전부 산 속에 파묻혀 있어요. 유가족들조차 한번 가려면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할 정도로 외진 곳이죠. 베를린은 달랐어요. 온 도시가 ‘기억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 같더군요. 도시 한복판에 축구장 3개 크기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자리하고 있었어요. 추모 비석에 걸터앉아 책을 읽거나 호젓하게 산책하는 시민들이 많았죠. 일상의 공간에 ‘기억’이 그대로 녹아 있는 모습이었어요. 삶과 죽음이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라 그곳에 함께 있었죠.” (정부자 세월호유가족대책위 추모부서장, 단원고 2학년 고 신호성군 어머니)

독일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미국의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의 설계로 만들어진 이곳은 2차 세계대전 종전 69주년인 2005년에 개관했다. 베를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중 하나인 브란덴부르크 문 인근 6,000평 규모의 광활한 부지를 2,711개의 콘크리트 기둥으로 채웠다. 무려 17년간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추모 시설이다. 광장의 가장자리에는 걸터앉을 수 있을 정도로 낮은 기둥들이 드문드문 이어지다가 광장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은 낮아지고 기둥은 높아져 사방이 가로막힌 듯한 어두운 고립감을 자아낸다. 당시 수용소에 갇혀 고통스럽게 죽어갔던 유대인들의 절망을 상징하는 장치다.


‘곁에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래야 잊지 않을 수 있다

경기 안산 초지동 ‘화랑유원지’에 조성될 세월호 참사 추모공간 ‘생명안전공원’은 2022년 첫 삽을 뜰 예정이다. 앞서 지역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안산 시민이 다같이 이용하는 유원지를 납골당으로 둔갑시키려 한다’며 시위까지 불사했다. 유가족들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어 가면서까지 시민들을 설득하며 화랑유원지를 고집한 이유는 하나다.

세월호 참사 7주기가 지난 2021년 4월 23일, 세월호 추모공간이 들어설 화랑유원지에서 만난 정부자 세월호유가족대책위 추모국장.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 학생이었던 고 신호성군의 어머니다.


“다른 참사들처럼 잊히고 싶지 않아서예요. 여긴 안산 시민들이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거든요.” 단원고가 한눈에 보이는 화랑유원지는 희생된 아이들이 살았던 와동, 선부동, 고잔동에 안겨 있는 곳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소풍가고 자전거를 배우며 뛰어놀던 곳이기도 하다. “저희는 넓고 번드르르한 그런 공간이 아니라, ‘언제든 눈 돌리면 볼 수 있는 곳’을 원했어요. 곁에 있어야 잊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4·16생명안전공원이 들어설 경기 안산시 초지동 화랑유원지 부지. 2024년 10주기 준공을 목표로 조성 중이다. 현재 국제 설계공모가 한창 진행중이다.

2만8,0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9·11테러 추모 공간은 미국 시민의 ‘곁’에 만들어졌다. 뉴욕 맨해튼은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지만 참사 현장인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했다. 이곳은 뉴욕 시민들의 발길이 가장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다.

2001년 9월 11일 2,977명의 사망자를 낸 9·11테러가 발생했던 뉴욕 맨해튼에 마련된 추모공간.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린 참사현장을 그대로 보존해 폭포가 흐르는 '빈 공간'으로 비워 뒀다. AFP 연합뉴스

쌍둥이 빌딩이 있던 두 개의 정사각형 자리는 폭포가 흐르는 ‘빈 공간(void)’으로 남겨 뒀다. 약 3000명에 달하는 희생자의 이름이 일일이 각인되어 있다. 이 폭포의 이름은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다. 희생자들의 ‘부재’를 선명하게 소생하는 광막하고도 숙연한 풍경이다. 고층건물로 빽빽한 우리나라의 참사 현장과 명확히 대비된다. 사건의 흔적이 말끔하게 휘발된 공간에선 '부재를 반추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낙수공간 테두리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각인되어 있다. 새겨진 이름을 읽기 위해 관람객이 머리를 숙이게 되는데, 이 행위 자체가 희생자에게 묵념을 하는 행위와도 같다. 유족들이 수시로 이곳을 찾아 희생자의 이름 위에 추모꽃을 꽂기도 한다. AP 연합뉴스


‘반드시’ 세월호는 달라야 한다

참사를 경험했던 이들은 하나같이 ‘세월호는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삼풍백화점 참사 당시 동생을 잃은 김문수씨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보며 답답한 가슴을 쳤다. “그때 우리가 양보하지 않고 더 열심히 싸워 기억공간을 만들었다면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어쩐지 빚을 진 기분이에요.”

용산참사 진상규명위 이원호 사무국장 역시 이렇게 말했다. “지금도 용산 유가족들은 신용산역 앞을 지나가질 못해요. 오직 상처만이 남은, 영영 찾고 싶지 않는 곳이 된 거죠. 세월호는 용산과 달라야 합니다.”

2021년 4월 23일,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 '4·16 생명안전공원' 부지 위에 임시로 마련된 세월호 추모 공간


세월호 유가족들 역시 ‘이번엔 달라야 한다’고 다짐한다. 유가족들이 추모공원에 원하는 건 하나다. “차가운 바다에서 외롭게 간 아이들이 외롭지 않도록 언제나 사람들이 붐비는 공간이 되는 거요. 1년에 딱 한번 ‘추모식’ 하러 찾는 공간이 아닌 ‘일상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박지윤 기자
서동주 인턴기자
이누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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