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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위령탑… 세우고, 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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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불감증 치유해… 다시 불행이 없길’
기막힌 참사 앞에서 잊지 말자 새긴 다짐들
찾는 이 없어 방치하고, 조경작품 오인까지
“이제는 결코 참척(慘慽ㆍ자손이 부모,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의 슬픔 없는 세상으로 가꿀 것이다.”
1999년 10월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로 숨진 학생들의 위령비에 새겨진 다짐이다. 단 30분 만에 57명의 목숨을 앗아 간 기막힌 참사 앞에서 사람들은 가슴을 쳤다. 화성 씨랜드 화재로 유치원생 19명을 잃은 지 불과 4개월 만이었다. 훗날 씨랜드 희생자 추모비에도 비슷한 다짐 글이 새겨졌다. “우리사회에 만연된 안전불감증을 치유하여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일이 없이…” 그러나 치유하겠다던 안전불감증이 또다시 세월호를 집어삼켰고 ‘참척의 슬픔’은 되풀이됐다.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고 같은 사고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세운 위령탑은, 비문에 새긴 다짐은 쉽게 잊혔다. 일단 건립하고 나면 정부 부처와 지자체의 부실 관리와 책임 떠넘기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건립 취지가 살아날 리 만무했다. 추모 시설을 혐오 시설로 여기는 지역주민의 반발에 밀려 아무 연고 없는 곳에 들어선 위령탑은 찾는 이 없이 쓸쓸하다. 우리가 세우고, 잊은 재난 희생자 위령탑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16일 인현동 호프집 화재 희생자 위령탑이 자리 잡은 인천학생문화회관 뒤뜰 화단엔 건립 취지와 사고 경위는 물론 위치 안내판 하나 없었다. 주민들 중엔 위령탑을 조경작품 정도로 알고 있는 이도 있었다. 씨랜드 추모비는 사고 현장인 경기 화성시나 어린이집이 있던 서울 송파구 문정동 대신 마천동 어린이 안전체험관에 들어선 탓에 체험관 출입 허가를 따로 받아야 참배가 가능하다. 천안함 구조작업에 투입됐다 변을 당한 98금양호 희생자들의 위령탑은 주변이 송유관 사고 복원공사장으로 변하면서 ‘접근 불가’ 상태고, 성수대교 희생자 위령비는 강변북로상에서 섬처럼 갇혀 있어 대중교통이나 도보 접근이 불가능하다.
‘추모’마저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경기 안산에선 세월호 희생자 추모공원을 두고 주민 간 갈등이 빚어지고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 유족들은 사고 후 15년이 지나도록 ‘추모’라는 명칭을 쓰지 못해 속앓이 중이다. 10년 전 사고 현장으로부터 16㎞ 거리의 팔공산에 겨우 자리 잡은 추모 공간에는 ‘위령탑’이나 ‘추모공원’ 대신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근 ‘추모공원’ 명칭을 추진하자 지역상인의 반발이 거세다. 황명애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가족에게 위령탑은 희생자의 생명이자 명예인 동시에 이 땅을 살고 있거나 앞으로 살아갈 분들을 위한 교육 시설이므로 반드시 건립되고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희지 인턴기자(이화여대 사회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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