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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못 내는 당신을 까마귀 클럽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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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매주 한 편씩,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화를 잘 내는 편과 화를 못 내는 편 중 어느 쪽인가 하면, 나는 당연히 후자다. 대놓고 씌우는 바가지에도 항의하지 못하고, 초록신호에 횡단보도를 질주하는 차에 치일 뻔해도 급한 일이 있겠거니 생각한다. 때때로 이런 내가 사람들이 말하는 ‘호구’인 건 아닐까 의심이 들 때도 있다.
그러니, 쓺 12호에 실린 이원석 작가의 단편소설 ‘까마귀 클럽’에 나온 “화 못 내는 사람. 억울하면 눈물부터 나오는 사람. 이제 더는 참고 살 수 없다고 다짐한 사람.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믿고 함께 분노할 사람을 찾습니다. 당신을 노력형 분노 스터디 <까마귀 클럽>에 초대합니다” 공고를 보자마자 나를 위한 초대장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학습지 회사에서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주인공 역시 나와 마찬가지다. 그는 “매사에 느리고 임기응변이 약해 나서야 할 타이밍에 잘 나서지 못하는 사람”, 즉 화를 못 내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SNS 공고를 보고 찾아간 ‘까마귀 클럽’은 화 내는 연습을 하는 분노 스터디 모임이다. 까악까악 울면 사람들이 다 피해가는 까마귀처럼 소리 내서 화 내며 살자는 취지다.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모여 두 명이 서로에게 화를 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화의 구체적 내용은 일주일 전에 미리 공유하고, 현장에서는 화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이곳에는 지켜야 할 한 가지 수칙이 있는데, 죄송해요. 감사해요. 괜찮으세요?를 말하지 않는 것이다. 모두 “분노에 방해가 되는. 배려하는 말들. 걱정하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이를 어길 시 5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감정이 드러나게 표정을 지으라”거나 “부탁하는 것처럼 말하지 말라”는 등의 피드백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화를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주인공은 “아니 제가. 아니 고객님, 제가요. 아니요. 제가”처럼 ‘아니’와 ‘제가’ 말고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한다.
까마귀 클럽 사람들은 그런 주인공에게 다음에는 화를 더 잘 낼 수 있을 거라며 응원을 보낸다. 진심으로 나를 이해해주는 이들에게 마음을 열면 열수록 화 내는 것은 어려워질 뿐이다. “화를 좀 잘 내기 위해 모였”지만, “정말로 화를 낼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우리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모임의 비밀을 알게 된 주인공은 진심으로 화를 내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까마귀 클럽'은 실패해야지만 존속될 수 있고, 성공하면 서로에게 상처만 남길 뿐인 모임이었다. 애초에 남의 화를 계속 들어주고도 괜찮은 사람들은 있을 리 없었다. “세상에 화 하나 제대로 못 내는 등신들 천지삐까리”가 주인공이 그곳에서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얼마 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엄청나게 세게 어깨빵을 당했다. 내 어깨를 가격하고도 힐끗 쳐다만 볼 뿐 아무런 사과의 말 없이 유유히 사라진 남성의 뒷모습을 보며, 아무래도 세상에는 까마귀 클럽의 3대 금기어(죄송해요. 감사해요. 괜찮으세요?)가 좀 더 필요함을 절감했다. 나는 이번 생에 화를 잘 내며 살긴 그른 것 같고, 차라리 3대 금기어를 잘 사용하는 호구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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