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윤중천 '원주 별장' 가보니… 10년 전 동영상 찍힌 노래방 그대로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별장) 갈 때마다 항상 여자 남자 한 팀으로 해서 몇 팀씩 있었습니다. 경찰도 있었고, 다른 공무원도 있었고 하여간에 갈 때마다 사람 많았습니다. 남자 여자 어울려, 술 먹고, 음식 먹고, 영화 보고 그랬는데, 영화는 주로 섹스 영화 틀어 놓았던 것 같습니다. 거기 가보시면 분위기가 아주 묘합니다.
윤중천씨와 함께 사업을 했던 A씨 부부가 2013년 3월 18일 경찰 조사에서 진술한 내용 중에서
이끼로 뒤덮인 채 색이 바랜 수영장, 군데군데 녹이 슬어 돌아가지 않는 출입문 손잡이, 노랗게 변해버린 잔디와 곳곳에 무성하게 피어오른 잡초들까지. 10년 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사건'이 일어났던 별장은 오랫동안 방치된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10년 전 사건이 제대로 끝맺음을 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것처럼, 건설브로커 윤중천씨가 김학의 전 차관 등 유력 인사들에게 제공한 접대의 흔적들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었다.
한국일보는 대검 검찰과거사 진상조사단이 2019년 5월 작성한 1,249쪽 분량의 '김 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 결과보고서를 입수했다. 보고서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윤씨의 엽기적 행각과 피해자·참고인 진술 등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윤씨가 살아온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가 성접대가 이뤄진 곳으로 지목된 '원주 별장'이다.
피고인(윤중천)은 그 경쟁에서의 승리를 인허가권자와 인맥, 친분, 압력 등에 의하여 얻을 수 있다고 믿고, 그를 위하여 유력자, 재력가와의 친분 형성, 그들에 대한 접대에 골몰한다. 화려한 시설과 멋진 조경을 갖춘 원주 별장을 꾸미고 필요에 따라 선택한 사람들을 불러 파티를 연다.
2019년 11월 15일 특경법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윤중천씨의 서울중앙지법 1심 판결문 中
지난달 31일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강원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에 위치한 원주 별장을 찾았다. 별장은 지번상으로는 강원도 소재지만, 강 하나만 건너면 경기·충북이 나오는 3개 지역 접경지에 위치해 있다. 원주 시내보다 여주·충주에서 더 가까운데, 수도권과의 접근성까지 고려하면 윤씨가 2000년대 초반 굳이 이곳에 별장을 세운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윤씨가 이곳에서 40㎞ 떨어진 충북 제천 출신인 점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윤씨는 주로 동향 사람들을 통해 법조인들과 연을 텄는데, 1990년대 후반 충주지청장으로 재직했던 김학의 전 차관도 충청권 인사들을 통해 2005년부터 알고 지냈다.
별장 앞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니 커다란 느티나무에서 나무를 두드리는 딱따구리 소리만 들려왔다. 남한강 상류지역인 이곳은 야산이 어우러진 구릉지라 경관이 단조롭지 않고 강 조망이 가능하다. 다만 수질보호구역으로 개발이 쉽지 않은 탓에 인적이 뜸했다. 보는 눈이 없다 보니 누가 들어가고 나오는지 알기 힘든 곳이다. 별장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곳이다. 은밀한 접대를 위한 완벽한 부지에 원주 별장이 있었다.
그때 처음 구경했던 윤중천의 별장은 수영장, 영화관과 노래방, 찜질방과 당구장 등이 갖추어진 제가 처음 보는 정말 화려한 별장이었습니다.
건설브로커 윤중천씨와 내연 관계였던 K씨가 2013년 3월 26일 경찰에 진술한 내용 中
별장 부지 관리를 맡고 있는 중년 남성의 안내를 받아 별장 안으로 들어서니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총 6,826㎡(약 2,000평) 규모로, 15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고 하니 별장보다는 리조트에 가까웠다. 정문 오른편에는 6개 건물이 언덕 위로 늘어서 있었고, 왼편에는 돌 무더기로 만들어진 절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문 오른편 인공폭포와 개울은 2003년 윤씨가 기존 별장을 인수한 뒤 증축과 조경 작업을 했을 정도로 가장 신경 썼던 곳이다. 윤씨는 국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거대한 자연 수석들을 수소문해 구입했는데, 폭포를 꾸미는 데에만 50억원을 사용했다고 한다. 폭포 위에는 윤씨가 유명 전통 건축가를 불러다 만들었다는 정자가 있었다. 10년 전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정자에 올라 폭포를 내려다보며 한결같이 '절경'이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관리인은 정자를 가리키며 "별장 안에 있는 3개의 정자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갔다"고 전했다.
별장 건물은 방문객 숙소로 사용된 복층 펜션 A·B·C동과 윤씨가 사용한 D·E동, 그리고 별장에서 가장 화려한 언덕 꼭대기의 F동으로 구성돼 있다. 윤씨가 가장 공을 들여 만들었다는 3층 규모의 F동은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했다. 파티와 연회 등 대규모 행사를 할 수 있도록 연회실부터 방음시설이 갖춰진 영화관, 연예인 대기장소까지 갖춰져 있다. 로비 바닥과 벽은 모두 고급 대리석으로 마감했고, 건물 내에 화장실과 샤워실만 10개 이상 있었다. 마당에는 수영장까지 자리 잡았다. 서쪽 벽의 통유리 창문을 통해선 남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초호화 별장'이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았다.
F동 2층 영화관에는 DVD 플레이어와 '니모를 찾아서' '테이큰' 등 유명 할리우드 영화 DVD와 내용을 알 수 없는 CD들이 방치돼 있었다. 등기부등본상 2013년 별장을 소유했던 C영농조합법인 명의의 플래카드도 그대로였다. 경찰에 따르면 C영농조합법인의 실질 소유주는 윤씨였다.
윤씨는 이곳에서 지인들을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열거나 친목회를 했고 본인이 운영하는 사업체 행사를 개최했다. 주말마다 친분 있는 법조계 인사, 군 장성, 의사, 경찰, 기업인, 대학 교수 등을 부부 또는 가족 단위로 불러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줬다. 별장에서 차량으로 15분 거리의 유명 골프장에서 접대 골프를 하기도 했다. 윤씨는 자신의 딸 결혼식도 이곳에서 치렀다.
윤중천 회장은 골프 라운딩을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에 시작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5시간 정도 골프를 치고 별장으로 이동해 바로 저녁을 먹고자 함이었습니다.
접대를 할 경우엔 저녁 식사를 한 뒤 주방 아주머니를 퇴근시키고 서울에서 여자들을 내려오게 해 함께 동석시켜 유흥을 즐기게 했으며, 여자들은 보통 다음 날까지 같이 있었습니다.
윤중천씨 전 운전기사가 2013년 4월 5일 경찰에 진술한 내용 中
별장은 윤씨의 성공을 위한 발판, 즉 성접대에 사용된 영업 공간이기도 했다. 별장은 윤씨의 '개인 룸살롱'에 가까웠는데, 이곳에서 김학의 전 차관을 비롯한 유력 인사들은 유흥을 즐겼다.
윤씨는 유흥 공간으로 D동과 E동을 점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학의 성접대 동영상'이 촬영된 장소였고, 지인들을 초대해 음주가무를 즐기던 곳이었다. D동과 E동은 그 목적에 맞게 특이한 구조로 설계된 것으로 보였다. D동은 식사와 숙박이 가능한 다목적 공간이고, E동은 노래방·당구장·사우나·침실 등 유흥 시설로만 구성됐다. 두 건물은 구름다리로 연결돼 있어, 외부로 나가지 않더라도 쉽게 오갈 수 있도록 했다.
당시 별장을 방문했던 여성들 진술에 따르면 윤씨의 성접대는 보통 이런 순서로 진행됐다. 윤씨와 유력 인사들, 그리고 윤씨 지시로 서울에서 내려온 여성들은 D동 1층 거실의 원형 식탁에 둘러앉았다. 그리고 별장에서 조리 및 청소를 담당하는 직원이 차린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이들은 구름다리를 건너 E동 1층의 노래방으로 이동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이후 별장 곳곳으로 흩어졌다. 성접대가 이뤄졌고 여성들은 택시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거나 아침까지 머문 뒤 별장을 떠났다.
별장 청소와 음식 조리 등을 담당하는 직원은 별장이 위치한 원주시 부론면이 아닌, 별장 뒤편 700m 높이의 미륵산을 넘어가야 나오는 옆마을 귀래면 출신이다. 주민들도 외지인인 이 직원을 '귀래 아줌마'라고 불렀다. 직원은 매일 아침 55번 버스를 타고 별장으로 출근해, 오후 6시쯤 나왔다. 별장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면, 윤씨는 중국 동포를 추가 고용해 손님맞이를 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윤 회장이랑 교류가 없어 별장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며 "언론 보도 후 좋지 않은 소문이 나는 걸 막기 위해 윤씨가 외지인을 고용한 것으로 짐작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학의 전 차관이 등장하는 '성접대 동영상' 속 노래방에는 당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노래방 책과 노란색 탬버린 2개가 주방 선반 구석에서 발견됐다. 뒤덮인 먼지를 털어내고 노래방 책장을 넘겨보니, 김 전 차관이 동영상 속에서 부른 것으로 알려진 가수 라이너스의 '연'이 나왔다. 노래번호는 1341번이었다. 탬버린에 달린 징은 흐른 세월을 알려주는 듯 붉게 녹슬어 있었다. 동영상이 촬영됐던 소파와 동영상에 등장하는 TV도 그대로였다.
노래방 옆 컴컴한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윤씨와 손님들이 사용했던 사우나와 찜질방 그리고 마사지 베드가 있다. 경찰 참고인 진술에 따르면 윤씨는 별장에 초대한 이들과 이곳에서 포커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세븐 칠 때도 있구요, 하이로우를 주로 했습니다…(중략)… 1인당 500만 원씩 가지고…(중략)…
윤(중천) 회장, O사장, O씨, O회장, 저, 시행하는 사람들 그리고 변호사란 분도 한번은 늦게 온 적이 있는데 그분이 오면 따로 내려가더라구요.
찜질방 앞에 테이블에서 하기 때문에 내려가는데 판돈 규모는 잘 모르겠습니다. 판돈이 꽤 되는 것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모 업체 대표 B씨가 2013년 3월 22일 경찰 조사에서 진술한 내용 中
2013년 '김학의 성접대' 언론 보도로 경찰 수사가 갑작스럽게 이뤄진 탓인지. 미처 정리하지 못한 윤씨의 개인 물품도 별장 곳곳에서 발견됐다. 윤씨가 집무실로 사용하던 D동 3층 방문에는 '사장실' 문패가 붙어 있었다. 방 안에는 윤씨가 1990년대 중반 친목 골프대회에서 받은 우승 트로피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남한강을 조망하며 목욕을 즐길 수 있는 화장실에는 윤씨가 사용하던 칫솔과 치약, 목욕용품이 즐비했다.
윤씨의 원주 별장은 2007년 전후로 윤씨 사업이 내리막길을 걷자, 2011년 경매에 넘어가게 된다. 윤씨는 내연 관계였던 K씨의 금전적 도움으로 잠시 별장 소유권을 지켰지만, 2014년 8억여 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한 업체가 다시 경매를 신청했고, 3차례 유찰 끝에 2016년 16억 원에 낙찰됐다. 이후 복잡한 채권채무 속에 재차 경매가 진행 중이며, 현재 별장 시세는 35억~40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별장 주변에 사는 부론면 주민들은 윤씨에 대해 "교류는 없었지만 나쁘지 않았던 사람"으로 평가했다. 주민들 말을 종합하면 윤씨는 마을 사람들에게 원주 별장 일대를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마을 대동회나 체육대회 때 모습을 드러내 거금을 기부하거나 물품을 후원하기도 했다. 돈 많은 외지인의 '통 큰' 투자가 인상적이었다는 게 주민들 이야기였다.
별장 주변을 돌아보던 중 강변을 따라 길게 뻗은 밭에서 경운기를 모는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과거 사촌 형과 함께 철근 공사를 전문적으로 해왔는데, 은퇴 후 귀향해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별장 공사 당시 윤씨에게 부지 내 저수지 공사를 의뢰받아 일주일 정도 별장에 출입했다고 한다. 노인은 윤씨를 '호방한 성격의 사업가'로 기억하고 있었다.
"윤씨가 제천 출신이여? 그것도 거짓말인 줄은 꿈에도 몰랐네. 나한테는 전라도 출신이라고 했거든. 전라도 인맥으로 높은 분들하고 계를 한다고 했어. 대통령이랑도 친하다고 했고. 대한민국이 사기꾼 한 명에 놀아난 꼴이구만."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선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 진실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2017년 12월 법무부는 검찰 과거사위원회를 발족하면서 과거 사건 규명을 통한 ‘더 나은 미래’를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선정한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은 가장 주목 받는 사건으로 꼽혔다.
과거사위는 이후 “검찰의 중대한 봐주기 수사 정황이 확인됐다”고 발표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검찰개혁의 기폭제가 되기는커녕 당사자들이 제기한 소송과 정치적 논란, 그리고 ‘불법 출국금지’와 ‘면담보고서 왜곡’이라는 후유증만 남겼다.
한국일보는 그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1,249쪽 분량의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 최종 결과보고서’와 수사의뢰의 근거가 된 ‘윤중천ㆍ박관천 면담보고서’를 입수했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 검찰ㆍ경찰ㆍ사건 관계인들을 접촉해 불편한 진실이 담긴 뒷이야기도 들었다. 이를 통해 자극적이고 정치적인 구호에 가려 주목 받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지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는 ‘압도적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데 보탬이 되기 위함이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이 1년간 파헤치고도 발간하지 못한 백서를 한국일보가 대신 집필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 싣는 순서> 윤중천ㆍ김학의 백서
<1> 면담보고서의 이면
<2> 진상조사단의 실체
<3> 반칙 : 윤중천이 사는 법
<4> 이전투구 : 김학의 동영상
<5> 법과 현실 : 성접대와 성착취
<6> 동상이몽 : 검찰과 경찰
<7> 반성 : 성찰 없던 활동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