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과 위선의 더블 딥

입력
2021.04.02 18:00
수정
2021.04.02 19:1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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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 때부터 제기된 위선
부동산 무능과 겹쳐 대형 악재?
민주화 세대 전체로 번질 수도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4·7 재·보선 사전투표가 시작된 2일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앞에서 유세를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도 서울 마포구 상암DMC 거리 유세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4·7 재·보선 사전투표가 시작된 2일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앞에서 유세를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도 서울 마포구 상암DMC 거리 유세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 ‘빈센조’는 막장 스타일이지만 유쾌한 맛이 있다. 재벌-검찰-로펌으로 결탁된 거악에 맞서는 인권변호사-철거민 연대라는, 어찌 보면 민주화 세대의 클리셰로 가득하지만 남녀 주연 캐릭터가 톡톡 튄다. 악을 악으로 때려잡겠다는 콘셉트에 맞춰 착한 척하지 않는 반면 문제 해결 능력은 뛰어나다. 가만 보면 이게 민주화 세대의 충족되지 못한 로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4·7 재·보선을 앞둔 현실 정치판에선 이와 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던 더불어민주당은 '착한 척하더니 능력도 없다’는 양날의 비판에 꼼짝달싹도 못 하는 지경에 몰려 있다. 무능과 위선이란 이중의 수렁에 단단히 빠진 것이다. 늪이 하나라면 어떻게든 빠져나올 법하지만 더블 딥이라는 게 문제다. 이중 침체가 마이너스 시너지를 내다 보니 백약이 무효인 형국이다.

내로남불이나 위선의 문제는 2019년 조국 사태 때부터 제기됐던 터였다. 하지만 지난해 4·15 총선에서 민주당은 180석을 거머쥐었다. 무능이 도마에 오르지 않았던 때였다. 아니 그때만 해도 ‘K방역’이라는 훈장을 단 유능한 정당이었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 비상사태 앞에서 위선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정치 세력이 위선을 떨거나 부패한들 ‘등 따시고 배부르게’ 해주는 성과를 낸다면 눈감아주는 게 이 땅의 오랜 불문율이었다.

1년 새 그게 바뀌었다. ‘K방역’은 지지부진한 백신 접종 때문에 흐지부지된데다 최악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무능이 전면에 부각된 것이다. 내집 마련 꿈을 일찌감치 접은 젊은 세대나 재산세가 치솟은 집 보유자나 너도나도 아우성이다. 4년 내내 투기 세력 탓을 하더니, 등잔 밑의 투기 세력도 못 잡은 것으로 드러나니 LH 사태는 결국 임계치의 둑을 터뜨린 꼴이다.

능력이 없더라도 말과 행동이 일관된 진실성을 갖췄다면 정상 참작이 가능하고 재기의 기회는 언제든 올 수 있다. 이를테면 부동산 문제도 유동성 확대로 인한 전 세계적 현상이란 반론이 통할 수 있다. '빈센조'의 홍유찬 변호사처럼 무력하게 쓰러지더라도 그 진실성을 따르는 후계자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누적돼 왔던 위선까지 겹쳤다. 무능과 위선이 만나 대형 불꽃을 점화시킨 것이다. '임대차 3법'이 전세 문제라도 해결했더라면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박주민 의원이 전세나 월세를 얼마나 올린들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했을 것이다.

민주당이 아무리 국민의힘에 부패와 탐욕 공세를 펴도 여론 지형이 크게 바뀌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보수정권에서 부동산 가격이 안정됐다는 기억을 가진 이들에겐 그런 네거티브가 통할 리 없다. 사실 도덕적 측면만 떼 놓고 봐도 위선이 오히려 탐욕보다 더 경멸받을 부덕이다. 단테의 지옥도에선 위선의 죄가 탐욕이나 부패보다 더 아래에 있다. 차기 대선주자 구도에서도 민심의 일단이 엿보인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나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착한 이미지는 그리 없다. 하지만 유능하다는 이미지는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과거 더블 딥이 대공황을 낳았다. 무능에 위선이란 이중의 늪이 민주화 세대 전체를 탄핵하는 정치적 대공황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여론조사에서 드러나는 2030세대의 반란은 그런 징조로 해석될 수 있다. 그들이야말로 위선과 무능을 때려잡기 위해 유능한 마피아라도 고용하고 싶은 심경일 게다. 악을 악으로 때려잡겠다는 위악의 포즈는 우파적 정서에 더 가깝다. ‘빈센조’에 숨겨진 민주화 세대의 판타지인 ‘정의로운 마피아’가 어쩌면 악몽 같은 현실로 다가올지 모를 일이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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