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한 해 3만명, 그 많은 학대 피해 아동은 사건 이후 어디로 갈까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분리 조치된 아동 10명 중 6명 시설로
전문가정위탁 대안이나 정부 지원 전무
‘권리 없이 양육만 하는 부모.’ 학대 피해 아동을 돌보는 전문 위탁가정 부모가 그렇다. 친부모의 학대나 방임으로 원가정에서 자랄 수 없는 아동들을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성인이 될 때까지 10여 년을 키우지만 이들이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친권이 여전히 친부 혹은 친모에게 있어서다.
무슨 대단한 권한을 말하는 게 아니다. 현행법상 미성년인 아동은 친권자인 부모의 동의 없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그렇기에 전학부터 여권 발급, 휴대폰 개통, 통장 개설은 물론 보험 가입 때도 친부모 동의나 가족관계증명서 같은 서류가 필요하다. 이때마다 위탁 부모들은 일일이 친부모 서명을 받아야 한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사정이 낫다. 한 전문 가정 위탁모는 “학대로 분리 조치된 경우엔 부모가 아예 연락이 두절되기도 한다”며 “다급하게 수술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도 닥치면 어떨지 아찔하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가족관계가 아니면 수술동의서에 사인조차 못 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1월 아동 학대 대응 강화 방안으로 ‘가해 부모의 친권 제한, 공공 후견인 제도 도입’을 내놨지만,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검토한다’는 수준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위탁 부모 후견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게 벌써 십수 년째인데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라며 “이 정도면 정책의 방임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양육은 생활인데 법적 권한이 없으니 위탁 부모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 건 물론이고 특수한 상황에선 아동에게 위중한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무심하지만, 전문 가정위탁(전문 위탁)은 학대 피해 아동에겐 절실한 제도다. 조부모나 친인척이 대신 양육할 수 없는 경우, 아동에게 최선의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친족이 대리 양육한다고 해도 가해자에게 노출될 위험이 있다는 게 허점이다.
전문 위탁은, 혈연관계가 아닌 일반인이 키우는 제도를 일컫는 일반 가정위탁(일반 위탁)보다도 조건이 까다롭다. 학대 피해 아동이나 장애아, 2세 이하 영·유아 같은 위기 아동을 양육해야 해서다. 일반 위탁을 3년 이상 했거나 사회복지사ㆍ보육교사 등 일부 자격을 소지한 가정이나 부모를 대상으로 교육과 현장 조사를 거쳐 선정한다.
전문 위탁 부모들이 겪는 어려움도 훨씬 크다. 양육과 더불어 학대 피해 후유증 치유에도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 위탁과 비교해 지망하는 가정이 적은 이유이기도 하다. 전문 위탁 제도를 연구해온 정 교수는 “학대 피해 아동은 대개 불안, 우울, 분노 표출 같은 후유증을 보인다”며 “전문 위탁은 아동의 치유와 회복에도 효과가 있다는 게 사례 연구로 입증됐다”고 말했다.
정부가 제대로 지원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현실은 위탁 부모들의 헌신만을 강요하는 수준이다. 중앙정부의 지원도 전무하다. 지방이양 사업으로 분류돼 지방자치단체가 아동을 기초생활대상 수급자로 선정해 수급비를 주고, 양육보조금과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게 고작이다. 다 합쳐도 아동 1인당 70만 원 안팎. 그마저도 지자체마다 액수가 다르다. 전문 위탁 가정이 전국에 단 25가구에 불과한 이유 중 하나다(지난달 19일 기준).
현실이 이렇다 보니, 가해자와 분리된 학대 피해 아동의 60%는 아동양육시설이나 일시보호소 같은 시설로 가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2017년 집계치를 보면, 분리 조치된 학대 피해 아동의 59.5%는 시설에 맡겨졌다. 조부모나 친인척이 양육하는 비율은 34%, 가정 위탁은 0.8%뿐이다.
보다 못한 민간이 먼저 나서서 전문 위탁 부모를 지원해온 게 그래서다.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은 2019년부터 대구ㆍ부산ㆍ전북ㆍ충북 가정위탁지원센터를 통해 전문 위탁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강민지 세이브더칠드런 전략실장은 “학대 피해 아동이 원가정과 분리됐을 때 갈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며 “전문적인 보살핌이 뒤따라야 피해 아동이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는 걸 고려하면, 훈련된 양육자에 의한 전문 위탁이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아동 복지 전문가들은 정부의 아동 학대 대응이 ‘사건 관리’에 초점이 맞춰진 것도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서울의 정인이(사건 당시 생후 16개월)부터 최근 경북 구미의 보람이(사건 당시 만 2세)까지 아동들이 학대로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해 공분을 샀지만, 정작 ‘아동 학대 사건 이후’ 대책은 미흡한 것이다.
지난달 30일부터 연 2회 이상 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온 아동을 학대 가해자로부터 떨어뜨리는 ‘즉각 분리 제도’가 시행됐으나, 그 이후 아동들을 어떻게 보호할 건지는 알맹이가 없다.
즉각 분리 제도를 시행하면서 정부가 ‘위기아동 가정보호사업’을 신설했지만, 학대 피해 아동 중에서도 만 3세 미만 영·유아만 해당된다. 보호가정을 모집 중인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3월 말 기준으로 전국에서 466가구가 신청했다. 이 기관의 한명애 아동보호기획부장은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전문 위탁 가정에는 주지 않던 월 100만 원의 전문아동보호비를 지급하고 공익광고까지 한 효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부 지원을 늘린다면 전문 위탁 가정도 더욱 확대할 수 있다는 신호다. 정 교수는 “정부 정책을 보면, 분리가 곧 구원이라는 태도”라며 “분리 이후 어떻게 할지 아동 관점에서 고민해 정책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 아동복지법이 국회를 통과해 전문 위탁 제도의 법적 근거가 생긴 건 그나마 다행스럽다. 향후 정부가 직접 지원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서다. 남 의원은 “해외에선 위기 아동 대부분을 가정위탁으로 보호하고 있고 그 효과도 여러 연구에서 입증됐다”며 “전문 위탁이 법제화됐으니 재정 지원과 인프라 확충 같은 개선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근 5년간 현황을 보면, 아동 학대 사건은 해마다 무섭게 증가한다. 남 의원이 아동권리보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만1,715건이던 아동 학대 사건은 2019년엔 3만45건으로 2.5배나 뛰었다. 그러나 그간 우리 사회는 학대받은 아동이 이후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선택지를 그 앞에 놓아줄 것인지에는 관심이 소홀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동이 태어난 가정에서 성장할 수 없을 때에는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아동복지법 4조 3항
우리 법이 명시한 대원칙이 과연 정책에 제대로 구현돼 있는지 짚어봐야 할 때다.
▶기사 보기 - [인터뷰-엄마] 낳은 자식에, 학대 피해 아동까지 8명의 엄마가 된 위탁모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