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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의 교훈

입력
2021.03.31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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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마지막 최임 논의 공식화?
최임 정책 급변침엔 노사 모두 불만??
정책 능력 부재 사회적 비용 귀결 교훈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알바노조 등 40여 개 노동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최저임금연대회의'가 31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최저임금위원회에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한국노총, 알바노조 등 40여 개 노동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최저임금연대회의'가 31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최저임금위원회에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했다. 연합뉴스

화룡점정은커녕 용두사미로 끝나게 생겼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면서 1일부터 노ㆍ사ㆍ공의 심의절차가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내년 최저임금 얘기다. 노사는 통상 법정 고시 시한(8월 5일)이 코앞에 닥치면 벼락치기 밤샘협상으로 인상률을 결정하고 있지만 물밑 신경전은 꽃피는 4월부터 벌어진다. 특히 올해는 '소득주도성장'의 수단으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주력했던 문재인 정부 내 마지막 심의라 이해 당사자들의 반응은 민감하다.

코로나 사태라는 돌발 변수를 감안해도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은 ‘급변침’ 이라는 표현이 꼭 어울린다. 임기 첫 2년 동안 최저임금 인상률은 각각 16.4%와 10.9%로 연속 두 자릿수를 기록했으나 지난해에는 2.9%, 올해는 역대 최저인 1.5%로 곤두박질쳤다. 그 결과 지난 4년간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률(7.9%)은 보수정권인 전임 박근혜 정부(7.4%)와 어금지금하다. 노동계가 내년 인상률이 5.5% 이하일 경우 오히려 박근혜 정부보다 인상률이 낮아진다며 내년 최저임금에 지난 2년간의 낮은 인상률을 ‘보상’ 받아야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반면 사용자들을 대표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해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가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는 점(319만 명ㆍ미만율 15.4%,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기준)이 보여주듯 높아진 최저임금 수준을 고려해 ‘당분간 최저임금 인상률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담긴 보고서를 얼마 전 내놨다. 내년도 최저임금의 적정 인상률을 놓고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가 정권 초 드라이브를 걸었던 최저임금 정책의 모양은 이처럼 우습게 됐다. 양극화 해소라는 당초의 명분은 형해화됐고 남은 건 노사의 불만뿐이다. 노동계는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이라는 공약 포기에 대한 실망감에 더해 그나마 인상된 최저임금마저 속 빈 강정이 됐다고 비판한다. 첫 2년간 인상률은 14년 만의 연속 두 자릿수 인상일 만큼 극적이었지만 2018년 정부가 그동안 최저임금 계산에 들어가지 않았던 상여금ㆍ복리후생비를 포함시키면서 효과가 미미해졌다는 주장이다.

사용자들의 불만은 말할 것도 없다. ‘최저임금의 역습’ ‘최저임금의 역풍’같이 일부 언론의 ‘기승전 최저임금’식 비판은 과장됐다고 해도 정부의 용역보고서조차 사용자들이 ‘근로시간 단축’ ‘고용 감축’ 등으로 대응했다고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지적하고 있다(2019년 5월 노용진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 ‘최저임금 현장실태파악’ 보고서). 최저임금이 오른 탓만은 아니겠지만 근로시간 쪼개기로 초단시간 노동도 흔해졌다. 지난해 청년유니온 조사에 따르면 편의점ㆍ카페에서 주휴수당을 받지 못하는 주 15시간 미만 아르바이트 청년은 절반(53.4%)을 넘는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려 양극화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선의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이념적 접근 탓”에 갈등만 키웠다는 비판도 절반만 맞다. 이념이라는 좌표가 굳건하지 않으면 정책의 예측 가능성은 떨어지고 이는 혼란을 가중시키기 십상이다. 누적된 문제를 풀기 위한 대범한 이념과 상상력의 가치를 부정해서도 안 된다.

다만 명심해야 할 점은 현실 여건에 대한 몰이해, 이해당사자 간 갈등을 조정할 정치력의 부족, 사회임금에 대한 적극적 재정투입 등 최저임금 인상과 병행돼야 할 양극화 해소 수단의 부재 등이 맞물리면서 최저임금 정책이 빈 수레만 요란한 꼴이 됐다는 점이다. 이념이라는 추상적 목표를 정책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 없이 이를 밀어붙여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은 최저임금으로 족하다.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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