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원인은 '선박 대형화'"... 수에즈 운하 언제든 다시 막힐 수 있다

입력
2021.04.0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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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0년간 선박 적재 용량 15배 ↑
선박 높이 높아지면서 강풍에도 취약

수에즈 운하에 좌초했다가 부양에 성공한 초대형 화물선 에버 기븐호가 30일 운하 중앙부 비터호수에 정박해 점검을 받고 있다. 수에즈운하=AP 연합뉴스

수에즈 운하에 좌초했다가 부양에 성공한 초대형 화물선 에버 기븐호가 30일 운하 중앙부 비터호수에 정박해 점검을 받고 있다. 수에즈운하=AP 연합뉴스

수에즈 운하를 가로막고 있던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호가 부양에 성공하면서 물류 정체는 해소됐지만, 앞으로도 유사 사고가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운송 효율성을 추구한다며 대세로 자리 잡은 ‘선박 대형화’가 최대 걸림돌이다.

미국 CNN방송은 알리안츠그룹 산하 기업ㆍ특수 보험사 AGCS를 인용해 “에버 기븐호는 전 세계 선박 중 규모 상위 1% 안에 든다”고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화물선은 무게 22만톤, 길이 400m, 폭 59m 크기로 컨테이너 2만여개를 실을 수 있다. 가장 큰 선박이 2만4,000개의 컨테이너 적재가 가능한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다. AGCS에 따르면 지난 50여년 동안 선박 건조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초대형 선박들의 컨테이너 적재 용량은 15배 늘었다. 최근 10년간 두 배나 증가할 만큼 대형화 속도는 가파르다. 이런 흐름에 맞춰 수에즈ㆍ파나마운하 등 주요 물류 해로도 확장을 거듭해 왔다.

해운사들은 효율성을 재고하려 배를 크게 만든다고 강변한다. 또 한 번 운항할 때 물품을 많이 수송할 수 있고 연료도 적게 소모해 더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사고와 유사한 사례는 아주 드문 만큼 모든 책임을 선박 크기에 돌릴 수 없다는 논리도 댄다. 세계 최대 선사 중 하나인 머스크의 팔레 브로츠가르트 라우르젠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은 수 년간 문제없이 수에즈 운하를 왕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사고는 빈발하고 있다. 독일 선사 하팍로이드의 팀 자이페르트 대변인은 “지난 10년간 수에즈 운하에서 연평균 8건의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1년에 1만9,000여척이 운하를 항해하는 것과 비교하면 적다고도 볼 수 있지만, 한 번만 사고가 나도 운하를 막아 물류 대란으로 이어진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자이페르트 대변인은 “(선박 폭이 넓어지면서) 선박과 운하 제방 사이 간격이 좁아져 순간적으로 조타력을 잃게 하는 물길 흐름이 발생할 여지도 많다”고 지적했다.

적재량 증가로 선박 높이가 높아져 강풍에 취약하다는 위험성도 제기된다. 에버 기븐호의 사고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으나 외신과 전문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강풍이 선박 항로를 방해했을 것으로 본다. 해운 전문 매체 지캡틴데일리는 “지난해 11월 하와이 인근에서 대형 컨테이너선이 악천후로 선적하고 있던 컨테이너 1,816개를 바다에 떨어트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배가 커질수록 부작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단 수에즈 운하는 빠른 속도로 정상 궤도를 찾아가고 있다. 이집트 수에즈운하관리청은 30일 아침까지 선박 113척이 통과했다며, 나흘 안에 통행 체증이 완전히 해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최종 목적지인 유럽 등의 항구에서 ‘병목 현상’ 등 후유증은 지속될 전망이다. 물류 지연도 불가피하다. 랄레흐 칼릴리 영국 퀸매리대 국제정치학 교수는 미 NBC방송 인터뷰에서 “많은 선박이 한꺼번에 몰리게 된 유럽 항구들에 위기가 전이됐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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