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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 운하 뚫렸지만… 책임 공방, 취약한 물류망  ‘후폭풍’ 수두룩

입력
2021.03.30 20: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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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 항구 연쇄 물류 대란 우려?
글로벌 공급망 과도한 의존 비판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됐던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호가 29일 다시 물에 떠 오른 모습. 수에즈=EPA 연합뉴스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됐던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호가 29일 다시 물에 떠 오른 모습. 수에즈=EPA 연합뉴스

전 세계 ‘물류 동맥경화’를 일으킨 대형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호가 길을 비켜주면서 수에즈 운하는 다시 뚫렸지만, 사고 수습과 관련한 문제들이 다시 물길을 가로막고 있다. 선박 좌초 원인 및 책임 규명, 피해 보상 등 대기 중인 후폭풍이 한둘이 아니다. 진짜 위기는 사실 지금부터다.

에버 기븐호는 29일(현지시간) 오후 3시쯤 완전 부양에 성공하면서 이날 밤부터 수에즈 운하 양방향 운항이 재개됐다. 오사마 라비 수에즈운하관리청(SCA) 청장은 “대기 선박 420척 중 113척이 30일 오전에 운하를 이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집트 당국은 사흘이면 선박 정체를 해소할 거라 자신했지만, 해운 전문가들은 완전 정상화까지 수주는 걸릴 것으로 본다. 소속 선박 34척이 운하 통과를 기다리는 세계 최대 선사 머스크 측은 “불확실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불안감을 가장 먼저 맞닥뜨릴 곳은 ‘목적지 항구’다. 운하를 통과한 배들이 한꺼번에 몰릴 게 뻔해서다. 특히 작은 항구들이 급증한 물동량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선사들은 화물을 하역할 때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 운하 봉쇄 때와 같은 화물 적체가 재현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여파는 ‘내륙 물류 시스템’으로도 향한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항구 물류 대란은 또 다른 지연을 유발해 안 그래도 위태로운 공급망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며 “그로 인해 치솟은 물류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연쇄 물류 위기는 이어 ‘제조업’에 2차 파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심각한 생산 차질을 빚고 있는 자동차 및 컴퓨터 업계의 반도체 공급난이 가장 염려된다. 스티븐 플린 미 노스이스턴대 국제정치학 교수는 경제전문매체 CNBC에 “밀릴 대로 밀린 공급 일정이 더 늦춰지면 부품을 제때 받지 못한 공장들이 가동을 중단하게 될 것”이라며 “이번 대란은 물류가 재개돼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보상’도 난제 중 난제다. 이미 엄청난 손실을 입은 기업들은 선박 좌초를 둘러싼 책임 공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마하브 마미시 수에즈운하 담당 보좌관은 “사고 책임은 에버 기븐호 선장에게 있다”며 “선주인 일본 쇼에이 기센에 예인선 사용료와 사고로 인한 손실 비용 등을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SCA는 선박 좌초 원인으로 지목된 강풍 외에 조종 실수 등 ‘인재(人災)’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1990년대와 비교해 화물선이 커지고 화물도 많이 실어 운하 항해가 더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근본적으로 세계 경제가 글로벌 공급망에 과도하게 의존해 온 것이 이번 위기를 초래했다는 자성도 나온다. 기업들이 재고 비용을 줄이려 원자재 등을 비축해 두는 대신 해운 공급망에 기대어 필요한 만큼만 물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이른바 ‘저스트 인 타임(Just-in-Time)’ 생산 방식을 택한 탓에 타격이 훨씬 컸다는 것이다. 이언 골딘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지구촌의 상호의존성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돌발 위험에 더욱 취약해졌다”고 진단했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도 “기업들은 저스트 인 타임 방식을 재고할 때가 됐다”면서 “수에즈 운하 사태가 글로벌 공급망에 생긴 마지막 위기가 아니란 사실은 분명하다”고 경고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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