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형수까지 빼냈다… 수에즈운하 ‘물류 동맥경화’ 뚫기 안간힘

입력
2021.03.28 17:09
수정
2021.03.2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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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2만㎥, 평형수 9,000톤 제거
선박 방향키 및 프로펠러 재작동
만조 오는 28,29일이 1차 분수령

길이 400m 짜리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수에즈 운하 통행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프랑스우주청 위성사진. 수에즈=AFP 연합뉴스

길이 400m 짜리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수에즈 운하 통행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프랑스우주청 위성사진. 수에즈=AFP 연합뉴스

세계 물류 대동맥인 수에즈 운하의 ‘동맥경화’를 뚫기 위한 고군분투가 엿새째 이어지고 있다. 운하 중간에 멈춰 선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다시 물에 띄우려 선박 좌초를 무릅쓰고 평형수까지 빼냈다. 고비는 만조로 해수면이 상승하는 이번 주말. 여기서도 부양에 실패할 경우 선상 컨테이너들을 대거 끌어내려야 해 물류 대란 사태는 더욱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오사마 라비 수에즈운하관리청(SCA) 청장은 27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사고 이후 먹통이 됐던 에버기븐호의 방향키와 프로펠러가 다시 작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배가 자체적으로 움직일 실마리가 생겼다는 의미다. 희망적 소식에 고무된 SCA 측은 뱃머리가 박힌 운하 제방에서 2만㎥가량의 모래를 파내고, 9,000톤의 평형수도 제거해 선박 무게를 줄이는 등 제반 진수에 필요한 준비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또 현장에 투입된 14대의 예인선에 더해 28일 네덜란드 구난회사 스미트샐비지의 400톤 규모 대형 예인선 2대가 추가 배치됐다. 중동에 주둔하는 미국 해군 준설 전문가들이 선박 정상화를 돕기로 하는 등 국제적 지원도 줄을 잇는 중이다.

선박 재가동을 가늠할 분수령은 해수면이 2m이상 상승하는 28,29일쯤이 될 전망이다.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은 이날 수에즈운하 당국 소식통을 인용, “컨테이너선 이동은 조류에 달렸다”고 전했다. 상황은 유동적이다. 라비 청장은 “거센 조수와 강풍으로 작업이 쉽지 않다”고 섣부른 기대를 차단했다. SCA 측은 날씨 여건이 좋지 않아 부양에 실패하면 배에 실린 컨테이너(2만개) 가운데 뱃머리 부분의 600개를 강제 하역시키는 ‘플랜B’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에는 수 주가 소요돼 그만큼 정상화 시점은 늦춰진다.

사고 원인은 당초 유력했던 기상요인이 아닌 인재(人災)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라비 청장은 “강한 바람보다는 기계 또는 사람의 실수일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앞서 “갑자기 불어온 강한 바람으로 항로를 이탈했다”고 주장한 선박제조사 측 해명과 달라 향후 책임 소재를 두고 공방이 예상된다.

25일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 좌초한 에버기븐호의 뱃머리 주변 제방에서 굴착기가 모래와 흙을 파내고 있다. 수에즈운하관리청 제공

25일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 좌초한 에버기븐호의 뱃머리 주변 제방에서 굴착기가 모래와 흙을 파내고 있다. 수에즈운하관리청 제공

운하 운영이 언제 정상화되든 글로벌 공급망 피해는 계속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SCA에 따르면 이번 사고 여파로 운하를 통과하지 못해 인근에 발이 묶인 선박은 321척에 달한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대기 선박에만 120억달러(약 13조5,000억원)어치 화물이 실려있다”고 전했다.

물류 대란이 현실화하면서 세계 최대 해운사인 머스크 등 일부 선사들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우회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하지만 대체 경로를 이용하면 유럽~아시아 간 뱃길이 수에즈 운하보다 약 6,000마일(9,650㎞) 가량 길어지고, 운송 기간 역시 일주일 넘게 늘어나 물류 비용이 폭증하는 맹점이 있다. 해적과 조우할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아프리카 동북부 해역은 해적의 오랜 터전이고, 서아프리카 해역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운송로로 인식된다”고 설명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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