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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감수성 흠집 낸 국제도시 서울

입력
2021.03.29 00:00
27면
서울 구로역 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진단 검사를 받고 있다. 뉴스1

서울 구로역 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진단 검사를 받고 있다. 뉴스1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 유전자를 갖고 있다. 개인의 행복추구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그러나 개인이 자신의 행복에만 집착해 타인을 과도하게 경계하고 혐오를 표출하는 것은 문제다. 개인적 혐오가 집단적 혐오로 확대되면 문제는 더 커진다. 우리와 타인의 편 가르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집단 정체성은 스스로의 분노 표현과 폭력 행동을 정당화하는 수준까지 쉽게 확대된다. 서구 사회의 이슬람포비아, 나치 독일의 유대인 혐오와 홀로코스트는 통제되지 않은 이기적 유전자의 집단 자가증식이 초래한 최악의 사례들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싸워 온 지난 일 년간 지구촌 곳곳에서는 인종 간 상호 불신과 의혹, 분노와 혐오의 징후들이 매우 뚜렷이 나타났다. 국가들이 앞다퉈 국경을 봉쇄하고, 특정 국민의 출입국을 제한하고, 백신 수입을 위해 치열히 경쟁하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서구의 시각에서 동아시아인은 바이러스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되어 차가운 시선과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아시아인의 눈에 서구인은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기본적인 방역지침도 따르지 않는 무뢰한이다. 제각기 세계의 중심에 자신을 두고 자신의 관점에서 타자를 판단하는,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집단 정체성의 출현은 매우 우려할 점이다. 여기에는 정치인들과 언론의 책임이 크다.

최근 서울시가 모든 사업장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반드시 코로나 진단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코로나로부터 대도시를 지켜내야 하는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내린 조치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매우 무지하고 무모한 결정이었다. 코로나 감염 가능성에 국적과 인종간 차이가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역지사지로 우리 재외 국민이 거주 국가에서 국적과 인종의 이유로 코로나 진단검사를 강제당한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결국 각국 대사관과 국가인권위원회, 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대 의견과 여론에 밀려 며칠 만에 행정명령은 전면 취소됐다. 그러나 지자체가 한 번 내린 인종차별적 결정은 서울시의 글로벌 위상에 꽤 오래가는 상처로 남을 것이다.

극단적 집단 정체성은 과도한 민족주의를 낳는다. 우리 종족을 지키기 위해 다른 종족의 인권을 짓밟고 서는 정도의 조치는 민족적 자부심과 공동체의 안위라는 명분에 의해 쉽게 합리화된다. 여기에 점점 함몰되면 동북아 중심도시 서울은 인종차별 도시의 오명을 쓰고 지구촌의 사각지대로 밀려갈 것이다.

2019년 통계에 의하면 200만명이 넘는 외국인 거주자 중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살고 있다. 이들은 비지니스, 취업, 유학, 결혼 등의 사유로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이 빠져 나가면 서울의 산업과 대학, 가정이 흔들리고, 서울은 국제사회의 외딴 섬이 된다. 이들이 이 땅에 머물지만 계속 타인으로 살아가게 한다면 대도시 서울은 갈등과 분쟁의 지뢰밭이 될 것이다.

서울시의 인종감수성을 높혀 외국인들을 포용하면서 건강한 동반자로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이 최고의 국제화 정책이며, 서울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길이다. 정책과 제도는 인종감수성과 글로벌 사회에서의 정의의 문제에 대한 숙의의 토대 위에 만들어져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선출되는 서울시장은 짧은 임기동안 거창한 도시 개발보다, 높은 인종감수성으로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도시 서울의 기초를 고민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어느 후보가 당선되건 바로 인종감수성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가동할 것을 제안한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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