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수익 몰수 소급입법 불발되자…현행법으로 몰수 나선 경찰

입력
2021.03.24 20: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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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위헌 우려로 개정법안에 소급적용 배제하자
경찰, '역사 예정지 투기' 포천시 공무원 몰수보전
부패방지권익위법 적용…업무연관성 입증이 관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북본부를 압수수색한 전북경찰청 부동산 투기사범 전담수사팀이 22일 확보한 압수물을 차에 싣고 있다. 뉴스1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북본부를 압수수색한 전북경찰청 부동산 투기사범 전담수사팀이 22일 확보한 압수물을 차에 싣고 있다. 뉴스1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로부터 촉발된 부동산 투기 의혹을 수사하는 경찰이 피의자로 지목된 공무원의 투기 대상 토지 및 건물에 대한 몰수에 나섰다. 국회가 부동산 개발정보를 이용해 투기한 공직자의 부당 이익을 거둬들이기 위해 관련법을 개정하면서 위헌 소지를 우려해 소급 적용을 포기하자 경찰이 다른 현행법을 근거로 몰수를 추진하는 것이다.

24일 경찰, 법원 등에 따르면 경기북부경찰청은 전날 포천시청 공무원 박모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박씨가 매입한 토지와 건물에 대해서도 몰수보전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날 이를 인용하기로 결정했다. 몰수보전은 피의자가 확정판결을 받기 전 몰수 및 추징 대상인 불법 수익 재산을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다. 공직자 등의 투기 수사를 전담하는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 출범 이래 첫 구속영장 청구 대상이 된 박씨는 미리 입수한 개발정보를 바탕으로 지난해 9월 40억 원을 대출받아 전철역사 예정지 주변 토지와 건물을 매입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경찰이 몰수보전을 신청한 법적 근거는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부패방지권익위법)이다. 이 법의 86조는 업무상 비밀을 이용해 이익을 취한 공직자를 7년 이하 징역 또는 7,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동시에 업무상 비밀을 이용해 취득한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몰수·추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찰은 박씨와 같은 공무원은 물론이고 공기업인 LH 임직원 역시 부패방지권익위법 적용 대상이므로 투기 대상 부동산을 몰수·추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서도 경찰의 논리가 타당하다는 의견이 상당하다. 범죄수익환수 업무를 해온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아직 토지보상이 이뤄지지 않아 이익을 보지 않았어도 부동산 매입 자체를 재물 취득으로 해석해 우선 몰수보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공직자가 업무상 비밀로 재물을 취득한 범죄의 성립 시기를 두고 "시세차익을 얻어 이익을 실현했을 때가 아니라 물건을 매수한 때"라고 판시한 바 있다.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 손혜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차명 부동산 또한 같은 논리로 몰수처분 됐다.

현행법으로 투기이익 몰수…업무연관성 입증이 관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연합뉴스

경찰이 현행법으로 투기 대상 부동산에 대한 몰수보전을 전격 신청한 데에는 국회 입법을 통한 투기 이익 몰수가 여의치 않은 현실이 감안된 것으로 분석된다. 여야는 이른바 'LH재발방지법'으로 불리는 공공주택특별법, 공직자윤리법, LH법 개정안 등을 24일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주택지구 지정 관련 미공개 정보로 부동산을 매매한 경우는 물론이고 타인에게 정보를 제공 또는 누설한 것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해 부패방지권익위법보다 적용 기준이 낮다. 또한 개정 전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이던 처벌 조항을 최고 무기징역형 또는 투기 이익의 3~5배에 달하는 벌금을 물리도록 상향하는 한편, 취득한 재산을 몰수·추징하도록 하는 조항을 새로 추가했다.

그러나 이미 투기로 수사를 받고 있는 대상자에 대한 소급적용 조항은 논란 끝에 빠졌다. 법조인 출신인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안 검토 과정에서 "몰수나 추징, 혹은 형벌의 소급효력이 인정되는 사안은 친일이나 부패 재산 정도로 한정된다"라며 "백발백중 위헌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를 통해 공직자의 투기 혐의가 명백해지더라도 개정안을 통한 몰수·추징은 어려워진 셈이다.

법원이 이번 몰수보전 신청을 인용했지만 향후 부동산 투기 수사 전반에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부패방지권익위법상 토지 및 건물을 몰수·추징하기 위해서는 공직자와 부패행위 간 직접적인 업무연관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찰은 개발 예정지구 지정처럼 개발정보 취득과 직결된 업무를 보던 경우가 아니더라도 투기 의심 공직자가 부동산 매입에 업무 관련 내부정보를 활용했는지 여부를 입증하는 데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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