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알몸김치 쇼크'... 외면하는 손님, 울고싶은 식당

입력
2021.03.26 04:30
수정
2021.03.26 13:5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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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착기·알몸 공정 영상에 김치 외면하는 소비자
식당가, 깍두기·겉절이·봄나물 대체 반찬 고민
가격 싼 중국산 김치 식탁 점령에 대응책도 난감

김치를 주메뉴로 하는 식당에서는 최근 중국산 김치 논란으로 빚어진 위생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손님들에게 공장 사진과 식약처의 우수 공장 인증서 등을 제시하고 있다. 장독대 김치찌개 제공

김치를 주메뉴로 하는 식당에서는 최근 중국산 김치 논란으로 빚어진 위생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손님들에게 공장 사진과 식약처의 우수 공장 인증서 등을 제시하고 있다. 장독대 김치찌개 제공

#.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우동집을 찾은 직장인 원모(32)씨는 단무지와 김치로 구성된 셀프바를 보며 찝찝함을 떨칠 수 없었다. 손님들이 단무지만 먹었는지 단무지통은 텅 비어 있고, 옆 반찬통에는 원산지도 표기되지 않은 김치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원씨는 "주인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중국산 김치일 것 같아 손 대지 않았다"며 "중국산 '알몸 김치' 논란 이후 밖에서는 아예 김치를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산 김치 비위생 의혹이 전 국민의 일상 식생활을 강타하고 있다. 거대한 김치 가공 공간을 알몸으로 휘젓고, 포클레인으로 김치를 나르는 사진들은 그간 잠복해 있던 중국산 식품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한꺼번에 폭발시켰다. 소비자와 식당 모두 필수 식재료 김치를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소비자들 "배추김치 사절, 겉절이만 먹는다"

22~24일 한국일보가 대면 및 전화취재로 만난 소비자와 외식업 종사자들은 요즘 식당에서 김치 원산지를 묻는 질문이 늘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중구의 한 김치찌개 식당 사장 김모(56)씨는 "논란 이후 매출이 줄었고, 손님이 오셔도 계속 중국산 김치 얘기만 한다"고 말했다.

이는 비단 김치를 주재료로 하는 식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치는 식사 때마다 빠지지 않는 반찬이어서 거의 모든 소비자와 식당들이 김치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이날 한 순댓국집을 찾은 직장인 박모(29)씨는 '국내산 김치'라는 안내판을 보고서도 김치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는 "국내산 표시를 보더라도 혹시 몰라 배추김치는 아예 먹지 않는다"며 "김치가 당기면 깍두기와 겉절이만 먹는다"고 말했다.

멘붕 빠진 식당들 "직접 담그거나, 국내산 대체"

이처럼 손님들의 거부 반응이 극심해지자, 그간 중국산 김치를 써왔던 식당들은 저마다 비상이 걸렸다.

당장 중국산보다 2~3배 비싼 국내산 김치로 바꾸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중국산은 10㎏당 1만2,000~1만3,000원 선으로 저렴한 반면, 국내산은 2만8,000원 안팎으로 가격 차가 2배를 훌쩍 넘는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50대 자영업자는 "코로나19로 지난해 너무 힘들었는데, 이번엔 중국산 김치가 날 괴롭히나 하는 생각"이라고 호소했다.

경기 동탄에서 포장배달 전문업체를 운영하는 이모(44)씨가 배달앱(왼쪽)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공지글. 중국산 김치를 사용하지만 논란이 된 김치와는 다른 제품이며, 깨끗한 제조공정을 거쳤다고 안내하고 있다. 독자 제공

경기 동탄에서 포장배달 전문업체를 운영하는 이모(44)씨가 배달앱(왼쪽)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공지글. 중국산 김치를 사용하지만 논란이 된 김치와는 다른 제품이며, 깨끗한 제조공정을 거쳤다고 안내하고 있다. 독자 제공

하지만 마냥 푸념만 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울 중구 김치찌개 식당 사장 김모(56)씨는 가게에 들어오기를 꺼리는 손님이 늘자 결국 일주일 전부터 중국산 김치를 국내산으로 바꾸고 가게 문에 안내판을 붙였다. 김씨는 "단가 부담이 세지만, 장사는 계속해야 하니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전했다.

아예 김치를 대체할 반찬을 고민하는 식당도 있다. 서울 동대문구 한식당에서 일하는 박나현 점장은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고 하는 고객이 있어서 김치를 빼긴 어렵다”면서도 “당분간 계절에 맞는 재료를 이용한 겉절이나 봄나물 등으로 대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치 공급업체도 "우리는 깨끗" 입증에 비상

이에 최근 요식업계에선 김치 원산지를 확실히 강조하거나, 김치를 납품받는 공장의 위생상태를 증명하는 식으로 소비자를 안심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한 김치찌개 체인(장독대 김치찌개) 관계자는 “주 메뉴인 김치찌개용 김치는 직접 담근 국내산이고, 반찬 김치는 중국산을 쓴다”며 “중국산은 안 먹겠다는 손님이 있어 김치공장의 위생상태를 보여주는 사진을 함께 보여주는 중”이라고 말했다.

경기 동탄에서 김치 포장배달 전문업체를 운영하는 이모(44)씨도 판매 중인 제조공정을 증명하며 진땀을 빼고 있다. 이씨는 김치를 구매한 식자재마트에서 올린 안내글을 배달앱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며 깨끗한 제조공정을 거친 제품임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반복되는 '식품위생 포비아'

중국산 식품의 위생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며 끊임없이 ‘중국산 식품 포비아(공포증)’가 반복되고 있다. 2005년에도 중국산 수입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발견돼 한동안 많은 국민이 김치 앞에서 긴장해야 했다. 2013년 말에는 중국산 배추김치에서 대장균이 검출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판매를 금지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중국산 계란 흰자 분말에서 동물용 의약품 성분이 검출돼 문제가 됐다.

물의를 일으킨 식품들의 공통점은 국내에서도 충분히 공급이 가능하지만 중국산이 말도 안 되게 싸다는 것이다. 김치가 특히 그렇다. 최신식 명지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많은 노동력과 재료가 들어가는 비싼 음식인 김치가 식당에서 제값을 받는 시스템이 아닌 것부터 문제"라며 "사실상 단가를 낮추는 방법밖에 없는데 국내산 김치를 쓰는 식당에 혜택을 주는 등 정부 차원에서 국내산 김치 소비 기반을 다질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지연 기자
맹하경 기자
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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