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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가 신문사에 불을 지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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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매주 한 편씩,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기자들의 메일함에는 온갖 사람들의 사연이 쌓인다. 억울한 사람들, 화난 사람들, 슬픈 사람들, 아픈 사람들이 저마다의 절박함으로 기자에게 메일을 보낸다. 물론 그 중 기자가 속 시원하게 답할 수 있는 메일은 드물다. 애초에 언론은 중계만 할 뿐 해결책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온갖 사건에 참견하고 첨언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무관해지는 것이 언론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타인의 삶을 재료 삼는 일은 어떤 식으로든 그 삶과 유관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유관함은 때로 우리를 같은 불길로 집어삼킨다. 릿터 28호에 실린 이장욱의 단편소설 ‘잠수종과 독’에서 기자와 사진작가가 방화사건의 피해자가 된 까닭일 것이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한 진보 성향 신문사 4층에 위치한 편집국이었다. 60대 중반의 남성 A씨가 저지른 불로 세 명이 사망하고 열일곱 명이 부상을 당한다. 희생자 중에는 젊은 인턴 기자와 퇴임을 앞둔 편집국장도 포함됐다. 방화범은 자신의 몸에도 불을 붙인 뒤 4층에서 뛰어내렸고 이 모든 장면을 녹화해 SNS에 중계했다.
유력 언론사를 상대로 한 전대미문의 방화사건. 방화 동기를 찾기 위해 온갖 추측이 동원된다. 이 신문사는 과거 A씨의 절도를 장발장에 비유한 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었다. A씨가 보수 성향 신문사의 칼럼을 모아둔 이력도 재조명된다. A의 종교적 관심이, 정치적 성향이, 범죄 이력이 심판대로 불려 나왔다. 그러나 그 중 정확히 어느 것이 그가 이 신문사에 불을 지른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이유에 답할 당사자인 A씨가 전신의 신경계가 훼손된 채로 병실에 누워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사건의 진실을 밝힐 유일한 열쇠는 A씨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주치의 공에게 넘겨진다. 그러나 공 역시 이 방화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공의 연인인 현우도 이 방화 사건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 사진작가였던 현우는 언론사 건물에 불이 붙던 순간 인근을 지나고 있었다. 현우와 불은 얼마든지 무관한 일로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우는 분쟁 지역을 촬영하는 사진가였고, 그런 현우에게 이 불은 결코 무관한 불이 아니었다.
방화범은 현우를 죽이기 위해 불을 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현우는 그 불로 인해 죽었다. 이제 공은 그 불을 지른 남자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그 아득한 유관함 앞에서 공은 생전에 현우가 남긴 말을 떠올린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일들에도 실은 우리의 의지와 선택이 들어가 있다고. 우리의 의지와 선택도 실은 세상의 논리가 작용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아주 사소한 선택이 의외의 결과를 만드는 데도 실은 온 세상이 개입하는 것이라고.”
오늘도 기자들의 메일함에는 온갖 사람들의 온갖 사연이 쌓인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은 기사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 사연에 개입하는 순간, 속수무책으로, 지독하게 얽혀 들고 말 것이다. 영원히 무관해질 수 없을 것이다. 불빛 주위를 빙빙 돌다가 불 속으로 들어가 타 죽는 저 부나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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