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살 미혼모, '희망이' 엄마에게 집을 준다면

입력
2021.03.18 04:30
청소년 부모에게 '주거 사다리'가 필요한 이유


3년전 홀로 출산한 딸 '희망이'와 김예은(25)씨가 충남 천안의 자택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출산 직후, 반지하방에서 몸을 풀었던 예은씨는 한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신혼부부 전세임대주택'에 지원해 현재 이 집에 입주하게 됐다.

2018년, 스물두 살 예은씨가 아이를 낳고 홀로 몸을 푼 집은 사시사철 곰팡내가 가시지 않는 반지하 방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였다. 어렵사리 ‘엄마가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막상 눈도 못 뜬 아이를 품에 안자 막막함이 밀려왔다. 해가 중천에 떠도 햇살 한 줌 들지 않는 좁고 어두운 방. 두 살도 못 채운 아이가 곰팡이 핀 마룻바닥을 기고 핥는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했을 리 없다.

예은씨가 3년전 딸 희망이를 막 낳았을 무렵 살았던 반지하방의 모습(왼쪽), 현재 예은씨가 거주중인 집의 모습 (오른쪽).


아이에게 집은 세상의 전부다. 마음껏 기어 다닐 따뜻한 방, 해가 충분히 드는 거실이 필요하다. 하지만 예은씨와 같은 미혼모, 십대에 부모가 된 청소년 부부에게 ‘그런 집’은 좀처럼 닿기 힘든 신기루다. 출산을 반대하는 부모로부터 낙태나 입양을 권유당하다 끝내 집을 나오고, 모텔이나 찜질방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기 일쑤다.


퇴근 후 희망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는 예은씨의 모습. 따뜻하고 밝은 집에 돌아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면 피로가 싹 가신다.


이들에게 집을 준다면 어떨까? 반지하·고시원·모텔을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면, 아기를 위한 방과 거실이 딸린 ‘집다운 집’이 생긴다면? 아이에겐 세상이 바뀌는 일일 테고, 어린 부모에겐 자립을 위한 든든한 디딤돌이 될 테다. 스물둘, 반지하에서 ‘엄마’로서 첫출발을 한 김예은(25)씨와 딸 희망이(3·가명)의 세상도 그렇게 바뀌었다.



'반지하 탈출'의 동아줄을 잡기까지, '천운'의 연속이었다

“솔직히 출산 준비하며 혼자 살 땐 참을 만했어요. 그런데 ‘아이랑 둘이 살 집’이 되니까 모든 것들이 다 위험해 보이는 거예요. 적어도 해가 잘 드는 깨끗한 집에 살고 싶다. 그런 마음이 간절해지더라고요. ”

임산부 시절 예은씨는 풀타임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며 홀로 생계를 꾸렸다. 오전 오후 근무를 다 뛰어도 월수입은 100만 원 남짓. 아끼고 또 아껴 써도 아이를 위해 저축할 돈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미혼모 관련 정책을 알아봤지만, 아이의 출생신고서 없이는 한 푼도 받기 어려웠다.


2018년 12월, 희망이가 태어난 후 약 5개월 간 모녀가 함께 머물렀던 반지하방. 대낮에도 햇살이 잘 들지 않아 벽과 바닥에 곰팡이가 가득하다.


아이를 낳고 반년간은 달리 도리가 없어 반지하방에서 살았다. 궁리 끝에 ‘LH 행복주택’을 알아봤지만 수천만 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자취용 원룸과 다르지 않은 협소한 크기도 문제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주민센터를 찾았지만, 매번 허탕이었다. “담당자라고 해서 만났는데, 하염없이 책자만 뒤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정책이 하도 많이 바뀌는 데다 인사이동도 잦으니, 누구도 이 분야에서 전문가일 수가 없겠더라고요.”

절박한 마음으로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문을 두드렸다. 한 상담가의 조언으로 ‘신혼부부 전세 임대주택’을 알게 됐다. “이름만 봤을 땐 ‘신혼부부’만을 위한 정책 같잖아요. 그런데 ‘한부모’도 적용 대상이라는 거예요. 저도 자격이 있다는 걸 알려주시기 전엔 아예 몰랐죠.” 전세금의 5%는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비교적 가벼운 금액이었지만, 아이와 자신의 생계를 한꺼번에 책임지면서 수백만 원을 따로 저축하기는 쉽지 않았다.

“당시 주거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가 그 돈을 지원해 주었어요. 정막 막막했는데, 행운이었죠.” 예은씨는 새로 살 집의 매물을 찾는 것부터, 자금을 마련하기까지 모든 과정이 다 ‘운’에 달려있었다고 말했다.


햇살 잘 드는 아이 방, 넓은 거실... 이 집에서 삶의 '다음 단계'가 시작됐다

희망이 방에서 딸의 옷을 개고 있는 예은씨의 모습. 집에서 가장 화사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방이다.


예은씨와 희망이가 함께 살고 있는 현재의 집은, 널찍한 거실에 방 두 개가 딸린 신축 다세대주택이다. 집에서 가장 햇살이 잘 드는 방은 ‘아이 방’으로 꾸몄다. 임산부 시절부터 살아온 충남 천안 지역 안에서 구한 집이라 다니던 직장까진 차로 10분, 어린이집까지는 걸어서 2분 거리다. 오래 살아 익숙한 동네인데다, 반경 3km 안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진 입지다. ‘전세임대주택’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공인중개사의 조력을 받은 결과다.


희망이네 방의 모습. 세살 딸이 한창 좋아하는 장난감과 인형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동화책들 사이로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인형이 놓여 있다.


“아이가 방방 뛰는 걸 보면 ‘이 집이 좋구나’하는 걸 느껴요. 애들은 행동으로 말해요. 본인이 맘에 드는 곳에선 그렇게 좋다고 뛰어다니거든요. 이 집에 오면서 딱 그랬어요.” 주거비용의 부담도 확 줄었다. 한 달 기준 이자상환금 7만 원, 관리비 7만 원, 공과금 2만~3만 원을 합하면 월 평균 주거비는 15만 원선이다. 여유가 생기면서 공부도 새롭게 시작했다. 보험설계사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오후 6시부터 매일 두 시간씩, 무역 자격증 수업을 온라인으로 듣는다.


퇴근 후 거실에서 아이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예은씨.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으로 능숙하게 놀아주고 있다.


이 집에서 살아 온 지난 2년 동안 예은씨에겐 ‘미래를 설계할 원동력’이 생겼다. 생계에 허덕일 때에는 한 줌도 남김 없이 모두 쏟아 부어야만 했던 에너지를 조금씩 축적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건강한 삶은 안전한 집 위에서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좋은 집에 살아보니) ‘제 집’을 갖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아이와 둘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경제력을 얼른 갖추고 싶다는 목표도 생겼고요.” 예은씨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삶의 한 단계를 졸업하고, 이제 '그다음 단계'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자투리 시간을 쪼개 집안일을 하고 있는 예은씨의 모습. 세탁이 끝난 각종 아기용품을 빨래건조대 위에 널고 있다.


'학업 중단 → 배달·알바 → 월셋방'으로 이어지는 빈곤의 굴레

청소년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집이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와 아름다운 재단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 부모들은 대부분 좁고 비위생적인 원룸에서 육아를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한 데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개 배달이나 일용직 노동과 같은 임시직을 전전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형편이니 목돈은 모이지 않는다. 보증금은 낮고 월세는 높은 열악한 주거환경의 늪을 벗어나지 못한다. 급한 대로 모텔, 고시원, 찜질방을 찾기도 한다.

급기야는 제 3, 4 금융권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2019년 전국의 청소년부모 31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열명 중 절반 이상의 평균 소득이 ‘100만 원 이하’였으며, 37.7%가 어린 나이에 이미 부채를 가지고 있었다. 대출 사유는 41%가 자녀양육비 명목, 36.1%가 주거비 마련 명목이었다.


이 빈곤의 굴레를 끊기 위해서는 '주거 사다리'가 필요하다.

이들 스스로 도움을 청하기까지 문턱은 너무 높다. 어디로 가서, 어떻게 물어야 할지조차 모른다. 급히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선, ‘직방’이나 ‘다방’과 같은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을 대충 훑어보는 것이 전부다.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외협력국장은 “한부모나 청소년 부부도 ‘신혼부부 전세 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지만, 예은씨의 경우처럼 지원 자격이 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정책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복지 담당자가 청소년 부모를 밀착 관리하며 주거 지원과 보육 서비스까지 함께 전담하는 ‘통합 사례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경기도는 이러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지난해 12월 ‘청소년부모 가정 지원 조례’를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목돈을 마련하기 어려운 청소년 부모들에게는 보증금 부담을 아예 없애거나 전폭적으로 줄인 공공임대주택을 더 많이 공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 국장은 “본인 부담금이 100만 원 정도에 불과한 청년 전세 임대주택의 경우 ‘자녀가 있다’거나 ‘부부’라는 이유만으로 청소년 부모의 입주가 허용되지 않은 사례가 있다”며 “이렇게 정책에서 역차별로 소외되는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신혼부부 전세임대의 경우 자기부담률을 5%에서 1~2%대로 확 낮추고, 부동산 지식이 전혀 없는 이들을 위해 ‘주택물색 도우미’를 연결해 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어린이집 하원 후 거실에서 TV 만화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희망이의 모습. 만화 주제가에 맞춰 엉덩이 춤을 추는 아이의 모습에 취재진 모두 금세 웃음이 터졌다.


'아이 낳으라' 소리치는 세상, 이미 태어난 아이들은 행복할까?

화장실이나 뒷산에 버려진 신생아, 어린 부모의 방임이나 학대 속에 죽어간 아이들에 대한 소식이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언론의 선정적인 묘사 속에서 청소년 미혼모들이 ‘인면수심의 악마’로 소환되기도 하지만, 이 세상이 태어난 아이를 제대로 키울 만한 환경이었는지에 대해선 묻지 않는다. 생계와 양육의 이중 절벽 속에서 그들이 왜 아이를 포기하게 되는지에 대해선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예은씨는 그게 못내 이상하고, 불편했다고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저출산 시대’라며 아이 많이 낳아야 한다고 하잖아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세요. 아이들이 쉽게 방치되고 학대당하고, 심지어는 어딜 가나 출입조차 금지돼요. ‘더 낳아라’ 하기 전에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박지윤 기자
서동주 인턴기자
이누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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