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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히 광야로 나온 윤석열

입력
2021.03.12 18:00
22면

사표가 출사표 될지 알 수 없으나?
인생에 한 번인 ‘별의 순간’ 잡아도?
패거리 없고 공격당할 위험성 높아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에서 총장직 사퇴 의사를 발표하고 있다./뉴스1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에서 총장직 사퇴 의사를 발표하고 있다./뉴스1

'별의 순간'이라고 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는 기회란다. ‘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다. 부자가 되기도 하고 유명인이 되기도 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는 대통령을 의미할 것이다. 일단 사퇴하고 지지율이 급등한 것으로 미루어 별의 순간을 포착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까지는 1년이 남았다. 과거 별의 순간을 포착했다던 대선 주자들이 별이 되기보다는 스러져간 경우가 훨씬 많다.

이즈음 윤 전 총장의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점쳐보는 것도 흥미롭다. 일전에 윤 전 총장의 행태를 일본 전국시대의 유명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의 병법에 빗댄 적이 있다. (2019년 9월 21일 자 메아리, ‘태양을 등지고 칼 꺼내 든 윤석열’) 당시 윤 전 총장은 자신을 임명한 주군의 의도를 거스른 채 칼을 뽑은 이후 온갖 핍박을 받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청문회 전후로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해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펼친 뒤 더불어민주당과 국무총리 법무부 등으로부터 총공격을 받기 시작했고 우여곡절 끝에 지금에 이른 것이다.

무사시가 남긴 병서인 오륜서에는 무사의 생존 방식에 대해 흥미롭게 기술하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이 ‘엇박자’와 ‘그림자 움직이기’ 병법이다. 당시 칼럼에 소개한 바 있으나 윤 전 총장의 이후 행보와도 적지 않게 맞닿아 있는 듯하다. ‘엇박자’ 기술은 예상치 못한 박자로 상대를 공격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박자를 간파해 승리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림자 움직이기’는 이쪽에서 먼저 강하게 공격하는 척한 뒤 적의 큰 칼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기술이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해 느닷없이 압수수색을 하고 기소를 했던 행태가 이런 ‘엇박자’ 기술을 연상시킨다. 전격적인 월성원전 비리 수사도 유사하다. 엇박자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방식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절제력이 있지만 강단 있는 발언을 통해 정부 여당과 정권 실세들의 반응을 파악하는 것은 ‘그림자 움직이기’에 맥락이 닿아 보인다. 이후 깜짝 놀란 정권이 윤 전 총장에 대해 다시 집중포화를 퍼부었고, 그 결과 징계 위기에 처했으나 법원 판결로 총장직에 복귀하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를 둘러싼 여권과의 극심한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사표를 던졌다. 내심 가장 효율적인 사퇴 시기를 저울질했을 것이다. 그 사표가 출사표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는 사퇴 입장문에서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최근 LH 사태에 관해 “공적 정보를 도둑질해서 부동산 투기하는 것은 망국 범죄”라고 언급한 것도 심증을 굳히게 한다. 출사표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가 문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리를 지켰다는 해석도 있었으나 근거가 약한 얘기다. 그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태양을 등지고 싸워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오륜서의 병법이다. 그는 전격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여론조사에서 1위로 올라섰다.

패거리가 없었던 무사시는 철저히 고독했고 누구에게도 충성을 맹세하지 않고 칼 한 자루로 외로이 버텼다. 늘 공격당할 위험성이 있어서 뒤를 조심했다. 지금 윤 전 총장도 그런 상황이다. 패거리는 없고 본인과 가족이 검찰의 공격을 받을 공산이 커졌다. 게다가 여론은 언제 변덕을 부릴지 모른다. 철저한 생존전략을 구사하지 못하면 별은커녕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순간이다. 위기는 기회고, 기회는 위기다.

조재우 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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