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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 둘째 딸은 왜 부모를 도끼로 난도질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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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 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한국일보>
리지 보든이 도끼를 들어.
엄마를 마흔 번 후려쳤어.
자기가 한 짓을 본 리지.
이번에는 아빠를 마흔한 번 후려치지.
미국에서 꼬마들이 줄넘기를 하면서 부르던 ‘구전 동요’ 노랫말이다. 때묻지 않은 순진함은 때로 편견 없이 잔인하고, 그래서 더욱 투명하게 진실을 폭로한다. 살인 대상과 순서, 무기까지 노랫말의 장면 묘사는 정확하다. 틀린 게 있다면 도끼질 횟수 정도랄까. 동요에까지 흔적을 남길 만큼 100여년 전 일어난 ‘리지 보든 살인사건’은 그야말로 어마무시했다.
1892년 8월 4일 매사추세츠주(州) 폴리버 2번가, 앤드루 보든과 애비 보든 부부가 참혹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됐다. 남편 앤드루는 거실 소파에 널브러진 채 머리가 으깨져 있었고, 2층 손님방에 쓰러져 있던 아내 애비의 머리에서도 피가 쏟아져 바닥이 흥건했다. 애비의 옷에 묻은 피가 딱딱하게 굳은 것으로 보아 남편보다 먼저 살해당한 듯했다. 앤드루는 13차례, 애비는 18차례 도끼로 공격당한 것으로 추후 밝혀졌다. 범행의 잔혹함을 능가하는 충격은 그 다음에 나왔다. 유력 용의자로 체포된 사람이 다름아닌 부부의 둘째 딸 리지 보든이었던 것.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흥미 만점 사건에 언론도 당연히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이 사건은 당시 급성장하던 언론매체가 뉴스를 전국 단위로 전달한 최초 사례이기도 했다.
이날 집에 있던 사람은 리지와 하녀 브리짓 설리번뿐이었다. 첫째 딸 엠마는 친구 집을 방문하느라 2주간 집을 비운 상태였고, 외삼촌 존 모스는 아침 일찍 친척을 만나러 나갔다. 오전 10시 45분 외출했다가 돌아온 앤드루는 곧장 소파에 누워 낮잠을 청했다. 브리짓은 체기를 느껴 잠시 쉬러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얼마 후 아랫층에서 리지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버지가 죽었어. 누군가 들어와서 아버지를 죽였어.” 이웃집 처칠 부인과 친구 앨리스 러셀이 걱정돼 한달음에 찾아왔고, 경찰이 도착했다. 이 때 갑자기 리지가 애비를 찾아달라 부탁한다. 조심스레 2층에 올라간 브리짓과 처칠 부인은 이윽고 주검으로 변한 애비도 발견했다.
경찰 조사가 시작됐지만, 모든 게 미스터리였다. 끔찍한 살인 방법에 비해 현장은 지나치게 깔끔했다. 저항한 흔적도, 외부인이 침입한 정황도 없었다. 혹여 귀신같이 잠입했다 해도 리지와 브리짓의 눈을 피하기란 어려웠다. 결국 내부인의 소행으로 좁혀졌다. 사건 당시 집에 없던 엠마와 존은 알리바이가 명확했고, 브리짓의 진술은 자세하고 일관됐다. 반면 리지는 말이 계속 바뀌었다. 아버지가 살해당하던 때에 헛간에서 낚시용 고리추를 찾고 있었다는 진술도 의문스러웠다. 한여름 헛간은 숨막힐 듯이 푹푹 쪘고, 먼지 쌓인 헛간 다락엔 발자국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또 리지는 애비가 한 소년에게서 쪽지를 받고 병문안을 갔다고 했지만, 소년도, 아프다는 지인도, 쪽지의 행방도 오리무중이었다. 결정적으로 며칠 전 리지가 모피 얼룩을 지운다며 청산을 사려했다는 약사의 진술이 나왔다. 독살 시도로 의심받을 만했다. 리지는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의 전조도 있었다. 보든가는 부유했지만 화목하진 않았다. 당시 엠마는 41세, 리지는 32세로, 둘 다 미혼이었다. 앤드루는 자매의 친모와 사별하고 애비와 재혼했는데, 자매는 새 엄마가 재산을 보고 결혼했다고 생각했다. 사업가인 앤드루는 은행과 제조업체에 투자해 800만달러(약 91억원ㆍ2017년 기준)에 달하는 부를 쌓았지만, 지독한 구두쇠였다. 딸들은 풍족한 생활을 누리지 못해 불만이 많았다. 5년 전 앤드루가 애비의 이복동생을 위해 집을 마련해 주면서 재산 다툼이 일었고, 그 이후 자매는 애비를 ‘보든 부인’이라 불렀다. 리지는 애비에 대해 묻는 경찰 질문에도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분은 어머니가 아니에요. 내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살인사건 이틀 전에는 보든가 전체가 식중독에 걸려 밤새 구역질에 시달린, 석연찮은 일도 있었다.
재판은 시쳇말로 ‘핫이슈’였다. 기자 수십명이 재판 과정을 생생히 타전했고, 법정과 법원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리지는 주지사ㆍ지방검사 출신 ‘막강 변호인단’을 꾸렸다. 재판의 쟁점은 ‘증거’들로 모아졌다. 검찰은 지하실에서 발견한 손도끼를 제출했다. 손잡이는 부러졌고, 도끼날에는 최근 닦아내고 재에 문지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도끼날 길이와 두개골 상처 크기도 정확히 일치했다. 문제는 핏자국이었다. 당시 기술로 혈흔 감식은 불가능했다고 치더라도, 리지가 도끼를 휘둘렀다면 분명 드레스에 피가 난자하게 튀었어야 했는데, 사건 당일 리지는 깨끗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사건 며칠 뒤 리지가 드레스에 페인트가 묻었다면서 부엌 난로에 태우려 했다는 친구 앨리스의 증언이 나왔지만, 앨리스는 그 옷에서 피는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모든 정황은 리지를 범인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뚜렷한 물증은 없었고, 증언은 온통 모순투성이였다.
그러나저러나 어차피 상관없었다. 여론은 이미 일방적으로 리지 편이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경찰을 연일 성토했다. 변호인은 리지가 독실한 신앙심을 갖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한 모범적이고 교양 있는 여성이며, 그런 여성이 이렇게 극악한 살인을 저지를 리 없다고 강조했다. 여성 참정권이 없던 시절 여권운동가들과 종교계도 들고 일어났다. 결국 배심원단은 ‘무죄’를 판결했다. 교인이고 여성이면 결백하다는 당대 편견이 리지를 구한 것이다. 매년 사건일마다 판결에 의문을 제기하는 특집 기사를 냈던 지역 언론 ‘폴리버 글로브’는 13주년 기사에서 이렇게 풍자했다. “보든 부부 살인은 없었다. 13년 전 두 희생자는 폭염으로 사망했다.”
리지가 진범이라는 전제 하에 지금도 살인 동기에 대한 추측은 무성하다. 재산 문제, 가족간 다툼 외에도 앤드루가 리지를 성적으로 학대해 복수한 것이란 가설, 리지와 브리짓이 레즈비언 관계인데 이를 부모에게 들키자 살해했다는 가설 등이 제기됐다. 이 사건을 소재로 삼은 문화 콘텐츠는 이를 적극 수용한다. 페미니즘이 화두인 최근에는 19세기 가부장제에 짓눌린 여성이 도끼를 들어 억압을 부수는 ‘해방의 서사’로 재해석되고 있다. 소설부터 드라마, 만화, 영화, 뮤지컬, 오페라, 심지어 발레까지 장르를 넘나든다. 100년 넘은 이 사건에 미국인들은 여전히 열광한다. 대중문화 잡지 롤링스톤은 “리지 보든 사건은 타이타닉 침몰과 같은 수준의 비극으로 승화됐다”며 “평범한 가정에서 벌어지는 폭력 같은, 사회가 억압하거나 무시했던 현실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고 인기 이유를 분석했다.
이 사건이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은 과학수사의 발전이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재판에 범죄현장 사진이 등장한 건 이 때가 처음이었다. 실제 앤드루 신발 종류를 두고 리지의 진술 오류가 사진으로 규명되기도 했다. WSJ는 “범죄현장 사진이 법의학적 수사 기법의 표준으로 자리잡는 데 단초가 됐다”면서 “과학수사는 아직 초기단계였지만 당시 재판은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평했다.
무죄로 풀려난 리지는 재산을 상속받고 독신으로 살다가 1927년 66세로 사망했다. 사건이 벌어졌던 집은 현재도 남아 있다. ‘리지 보든 베드&브렉퍼스트(Bed&Breakfast)’라는 민박 겸 박물관으로 운영 중인데 ‘다크 투어리즘’(살인이나 전쟁 등 비극적 장소를 찾는 여행) 명소다. 방문자들은 앤드루가 죽은 자세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오싹함을 즐긴다. 부서진 두개골 모조품도 전시돼 있다. 최근 이 집은 200만달러(약 23억원)에 매물로 나왔다. CNN방송은 “소유주가 은퇴해 팔게 됐다”며 “민박으로 운영할 사람과 우선 협상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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