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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녀가 계약 맺고 성매매? 램지어, 위안부 피해자 모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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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가 성노예였다고 적시한 유엔 인권소위원회 맥두걸 보고서(1998년) 등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마크 램지어 교수와 역사수정주의를 앞세운 일본 우익 세력은 제도화된 성노예 체제와 일본 정부의 역할을 부정하고 있다. 학자는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지만 잔혹한 군사적 성노예 피해자를 모욕할 권리는 없다.
4일 영상 통화로 만난 민병갑(79) 미국 뉴욕시립대 퀸스칼리지 사회학과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자발적 매춘부'라고 주장한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논문에 대해 이같이 비판했다.
민 교수는 1990년대 초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위안부 피해자 인권 운동사를 연구해 온 재미 원로 사회학자다. 그는 연구를 집대성한 영문 서적 '한국 "위안부": 군 위안소, 잔혹성, 그리고 배상 운동(Korean "Comfort Women": Military Brothels, Brutality, and the Redress Movement)'을 미국에서 26일(현지시간) 출간한다.
영어권 독자를 위해 일본군 성노예 희생자에 관해 밝혀진 주요 사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103명의 증언을 담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위안부 증언집 8권과 민 교수가 한국을 방문해 직접 만난 피해 할머니 22명의 별도 증언을 토대로 피해 실태를 분석했다.
1월 말 학술지 '법경제학국제리뷰(IRLE)'에 출간될 것으로 알려져 파문을 일으킨 램지어 교수의 논문 '태평양전쟁 당시 성매매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은 예정된 이달 출간이 일시적으로 보류된 상태다.
특히 이 학술지 부편집인이었던 알렉스 리 노스웨스턴대 법대 교수는 논문 출간 결정에 반발해 부편집인직에서 사임하면서 한미일의 관련 분야 권위자들에게 의견서를 요청했다. 그 중 한 명이 민 교수다.
민 교수는 "램지어 교수뿐 아니라 일본 우익 세력은 위안부 피해자 증언 중 입맛에 맞는 부분만 발췌해 곡해하곤 한다"며 "따라서 100명 넘는 피해자 증언을 그대로 인용하고 통계적으로도 분석해 영문으로 기록한 이번 책 출간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주된 연구 분야인 미주 한인사회와 이민사 연구에 몰두하느라 한때 이 책의 집필을 중단하기도 했던 민 교수는 "영어권에 위안부 피해 사실을 널리 알리겠다는 피해자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스러웠던 마음의 짐을 이제야 덜게 됐다"고 말했다.
-1993년부터 준비한 책이라고 서문에 적었다.
"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황금주 할머니가 그해 1월 뉴욕 한인회에서 미국 언론을 상대로 피해 사실을 증언할 때 통역을 맡았던 게 이 책의 시발점이었다. 성노예 피해 역사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때 황 할머니의 불행과 괴로움을 들으면서 참혹한 위안부의 역사를 내 문제로 체감하게 됐다. 양심적 지식인으로서 피해자 명예 회복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미국 등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국가들이 위안부 문제를 꾸준히 제기할 수 있도록 영어로 책을 쓰는 게 일본 정부 압박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결심 이후 출간까지 30년 가까이 걸렸는데.
"1995~2001년 다섯 차례 한국을 방문해 위안부 피해자 지원 시설인 '나눔의 집'에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고 몇 장(章)을 완성했다. 그러다 이민사 연구에 집중하게 되면서 위안부 서적 출간은 미뤄 두게 됐다. 하지만 2015년 말 피해 당사자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한일 위안부 합의를 보고 이 책을 끝내야겠다 생각했다. 결심한 지 27년, 본격적으로 집필한 이후 11년 만인 지난해에 탈고했다. 집필을 중단한 동안은 인터뷰에 응해 준 피해 할머니와 운동가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컸다."
-증언 수집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위안부 문제를 소주제 중 하나로 다룬 영문 서적이 30권 정도 나와 있지만 피해자의 고통을 제대로 다룬 책은 없는 것으로 안다. 정대협 증언집은 매우 좋은 자료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피해 할머니마다 전담 채록자를 둬 대여섯 번 반복해 인터뷰했다. 더욱이 역사수정주의를 앞세운 일본 우익은 위안부 피해자의 일부 증언을 확대 해석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군 피해자 239명 중 세상 밖으로 나온 103명의 증언을 망라하기 위해 2,500쪽에 달하는 정대협 증언집을 읽고 또 읽었다."
-이를테면 램지어 교수가 논문에 예로 든 고 문옥주 할머니의 사례를 말하는 건가.
"램지어 교수는 문 할머니의 "나는 팁으로 상당히 많은 돈을 저축했다"는 회고록 일부를 언급하며 위안부를 보수를 잘 받은 매춘부로 묘사했다. 하지만 문 할머니는 같은 회고록에서 위안소 2층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기도하다 어깨를 다친 사실도 함께 거론하고 있다. 무엇보다 문 할머니가 모은 돈은 일본의 패전 이후 무용지물이 됐다. 일본 측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위안부 배상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위안소에서 번 돈을 일본 우체국에 예금으로 예치했던 문 할머니는 199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램지어 교수는 피해 여성이 강제로 끌려간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계약을 맺은 매춘부였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103명의 증언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납치·협박(46%)과 취업 사기(35%) 등 강제 동원이 81%였고, 부모에 의한 매매 사례가 15%였다. 하지만 이 같은 구분은 사실 의미가 없다. 어떤 동기로 나섰든 이들이 위안소로 들어선 과정은 모두 강압적이었다. 이들은 일본과 중국, 태평양 팔라우섬 등 일본군 주둔지로 향하는 기차와 배, 비행기 안에서부터 성폭행과 인권 유린을 당했다."
-램지어 교수는 조선인에 의한 취업 사기 부분도 강조했는데.
"당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배제하고 이같이 주장한 게 놀랍다. 조선인의 취업 사기로 벌어진 일이라서 강제 동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조선이 독립국이었다고 본다는 의미인가.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참고 문헌 목록과 각주를 빼면 5.5페이지 분량에 불과하다. 이미 1992년에 일본 위안부 연구 최고 권위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 교수가 일본군 기록물을 찾아냈고, 이를 계기로 이듬해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이를 뒤집으려면 적어도 좀 더 길고 진지한 논문을 내놨어야 한다. 램지어 교수는 정확한 자료나 증거 제시 없이 역사수정주의 학자들의 전형적인 논리를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램지어 교수는 계약서를 제시 못해 비난 받았다.
"증언한 피해자 103명 중 36%가 11~15세에, 57%는 16~20세에 일본군 위안소에 동원됐다. 일본법과 일본이 체결한 국제조약에 따라 당시 합법적으로 한국과 일본 여성이 성매매 여성으로 일할 수 있는 최소 연령은 21세였다. 한국의 11~20세 소녀들이 불법으로 강제 동원됐다는 이야기다. 피해자들이 일부 군인과 장교로부터 팁과 선물을 받은 사실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계약서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증언자 중 8명은 위안소 운영자로부터 군인이 지불한 수수료의 40% 이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피해 여성들이 여러 위안소를 전전해 위안소 운영 방식을 잘 알게 되면서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위안소에서나 가능했던 사례다."
-일본 우익 정치인이 램지어 교수를 옹호하고 나섰다.
"예상했던 일이다. 일본 측은 2000년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 변호사를 보내지 않았다. 법적 구속력은 없어도 국제 사회에 일본 정부를 향한 '도덕적 단죄'의 뜻을 표명하는 상징적 자리였는데도 변호에 나서지 않은 것은 할말이 없다는 뜻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우익 세력은 이를 꾸준히 부정해 왔고 일본 내에는 관련 출판물이 수도 없이 많다. 문제는 램지어 교수의 글은 그 동안 봐 온 일본 출판물이 아닌 저명한 국제 학술지에 영문으로 발표된 논문이라는 점이다. 대표적 전범 기업 미쓰비시의 후원을 받은 램지어 교수는 이해 상충을 경계해야 한다는 학자의 기본 윤리마저 저버린 점에서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책을 통해 처음 밝힌 내용도 있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지금은 존경 받지만 1990년 정대협 발족과 함께 위안부 운동이 본격화하기 전까지는 한국의 가부장적 성인식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오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1991년이 돼서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개적으로 처음 알렸다. 하지만 피해자 증언을 통해 이전에도 공개 발언을 시도했다 사회적 압박을 못 이겨 포기한 사례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황금주 할머니는 충북 옥천·보은 지역에 머물던 1972년 새마을운동 모임에 초대 받아 당시 영부인이던 육영수 여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황 할머니는 육 여사에게 일본군에게 성접대를 강요 받은 사실을 밝혔지만 육 여사는 '평화로운 때가 되면 해결될 테니 지금은 이 이야기를 절대로 공개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고 한다. 1995년 황 할머니와의 인터뷰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다."
-위안소 탈출을 시도하다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사례에 대한 증언도 비중 있게 다뤘는데.
"위안소 운영자들은 탈출하다 잡힌 피해자에게 있지도 않은 빚의 굴레를 씌웠다. 탈출을 시도했다가는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을 협박하기 위한 본보기로 끔찍한 집단 폭행을 당하거나 칼질을 당했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탈출은 시도조차 두려운 행위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103명 증언자 중 위안소 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이들이 25명이었던 반면 탈출하려 했던 이들이 15명으로 더 적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온 위안부 피해자도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위안소에 그대로 갇힌 채 사망하거나 스스로 세상을 등진 경우도 많았다. 램지어 교수는 자발적 성매매라고 주장했지만 이들은 자유 의지로 위안소를 빠져나올 수 없었던 성노예였다."
-피해자 증언과 함께 위안부 배상 운동 역사도 책의 중요한 축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여성 인권 문제로 바라본 정대협의 활동이 아니었다면 피해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전에 위안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문 서적으로 사라 소 샌프란시스코주립대 교수가 쓴 '위안부(The Comfort Women: Sexual Violence and Postcolonial Memory in Korea and Japan·2008)'가 있지만 소 교수는 정대협의 활동을 민족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그 부분을 반박하고 싶었다. 외교 관계에서 일본과 팽팽히 대립할 필요는 없지만 역사에 관해서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정대협 이사장을 지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회계 부실 논란으로 배상 운동의 성과가 퇴색된 느낌이다.
"위안부 운동을 30년 동안 이끌고 온 데 존경을 표한다. 다만 김복동 할머니를 기리는 미국 워싱턴 '김복동 센터' 건립 계획에는 반대한다. 아시아 지역 곳곳에 피해 여성이 있는데 특정인의 이름으로 기념관을 세우는 것은 피해자들을 갈라놓는 것이다. 당장 위안부 피해자인 동시에 적극적으로 운동하고 있는 이용수 할머니가 얼마나 서운하겠나."
-미국 내 위안부 기림비 설치에 대한 일본의 반발도 상세히 다뤘다.
"소녀상과 기림비 설치는 위안부라는 범죄 행위를 부정하는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기림비 설치는 주민들에 대한 역사 교육이자 시의회 동의가 전제되는 일이어서 단순한 상징물 이상인데 이미 미국 곳곳에 15개가 세워졌다. 국제적 신의를 중시하는 일본 정부를 압박하는 차원에서 앞으로 미국이 한국보다 중요한 위안부 운동 요충지가 될 수 있다. 내 책이 기림비 설립을 위한 타민족 주민 설득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기림비를 세우는 일과 더불어 미국 역사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기술되도록 하는 운동도 해야 한다."
-다음 목표는.
"미국 대학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가르쳐 널리 알릴 수 있는 교육자를 키우는 집중 양성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미국에서 꾸준히 위안부 문제를 이슈화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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